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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이스 Apr 14. 2019

아이보다 어른에게 더 절실한 유모

영화 <메리포핀스 리턴즈 Mary Poppins Returns> 2018

  법적으로 성인이 된 지 꽤 오래됐다. 이젠 미성년 시절이 가물거릴 정도로 처음부터 어른으로 태어나 산 것처럼, 스스로 노회하고 낡았다고 생각하는데 철은 또 없다. 유치하고 세상 물정을 잘 모르며, 점점 더 겁이 많아지고 행동반경은 좁아진다. 아직 그럴 때가 아닌 것 같은데 본의 아니게 그렇게 살고 있다.


  나에게 '메리 포핀스(Mary Poppins)'는 어린 시절 추억이나 향수를 지닌 판타지가 아니다. 내가 그녀를 처음 본 것은 20대 후반이 되어서였다. 영화를 본 후 일부러 찾아 읽은 책은 짜릿한 재미보다는 까칠하다는 인상이 강했다. (원작자 트래비스 부인은 이 책을 어린이를 위한 동화로 쓴 것은 아니라고 한다) 어린 조카에게 책을 선물하면서도 그 친구가 분명 재밌게 읽진 않을 것이라 예상했다. 그래도 어쩌다 우산 타고 날아다니는 여자의 그림을 보면 마음이 조금 포근해지긴 한다. 큰 재미는 못 느꼈지만, 겉은 도도하면서도 마음은 따뜻한 메리 포핀스(더 정확히 말하면 그녀를 연기한 '줄리 앤드류스')는 어른의 눈으로 봐도 꽤 아름답고 매력적이다.


  「메리 포핀스 리턴즈 Mary Poppins Returns」는 1964년 제작된 뮤지컬 영화 「메리 포핀스」의 리메이크가 아니라 속편이다. 원작의 추억을 되새기려 본 나는 그때 들었던 'Chim Chim Cher-ee'나 'Spoonful of Sugar', 줄리 앤드류스가 속사포로 내뱉었던 마법이 이루어지는 주문 'SUPERCALIFRAGILISTICEXPIALIDOCIOUS'를 기대했다가 전혀 다른 전개에 살짝 식겁했다.


  1935년 대공황 시절, 런던 체리트리가엔 얼마 전에 엄마를 잃은 어린 세 남매가 살고 있다. 그들의 아빠 마이클 뱅크스(벤 위쇼 Ben Whishaw)와 고모 제인 뱅크스(에밀리 모티머 Emily Mortimer)는 어릴 때 메리 포핀스의 돌봄을 받은 바로 그 아이들이다.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은행원이 된 마이클은 아내를 잃고 방황하는데, 설상가상으로 아내와의 추억이 깃든 집마저 (자신이 근무하는) 은행에 넘어가게 생겼다.
 
  바람이 몹시 불던 어느 날, 막내가 갖고 놀던 연을 타고 하늘에서 내려온 메리 포핀스(에밀리 브런트 Emily Blunt)는 추억 돋는 뱅크스가에 다시 입성한다. 마이클과 제인은 그녀를 알아보지만, 어린 시절의 마법은 잊은 지 오래다. 메리는 과거 마이클과 제인에게 했던 것처럼 점등원 잭(린 마누엘 미란다 Lin-Manuel Miranda)과 함께 어린 세 남매를 환상과 모험의 세계로 이끈다. 또한 엄마 잃은 아이들의 슬픔을 잠재우고, 어려움에 처한 집 문제도 해결해준다.


바람의 방향이 바뀐 날, 연을 타고 오는 메리 포핀스


  메리 포핀스는 결혼도 하지 않고 거처도 없이 어느 날 바람을 타고 왔다가 홀연히 바람을 타고 사라진다. 필요한 건 뭐든 (마법의) 가방에서 꺼내 쓰며 자기 할 일만 하는데, 휴일은 칼같이 따지지만 평소에도 그다지 열 일하는 걸로 보이진 않는다. 고용주인 아이 부모에게 친절하지 않고 아이들에겐 더욱 불친절하다. 당연히 아이들의 응석을 받아주진 않지만, 그녀의 힘이자 재산인 판타지 세계로 그들을 이끌어 굴복(?)시키고 명령에 복종하게 하는 신박한 스킬을 구사한다. 물론 마음속으론 아이들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사랑하지만 결코 티 내지 않는다. 요즘 말로 츤데레다.


어른이 된 제인과 마이클을 만난 메리 포핀스


  겉은 까칠하지만 통찰력과 이해력이 남다른 메리는 21세기형 보모다. 아이들을 쫓아다니며 보살피는 건 그녀가 할 일이 아니다. 마법을 쓰는 그녀는 아이들 스스로 목욕을 비롯한 해야 할 일을 자발적으로 즐겁게 하게 만들고, 그들의 부모가 (본의 아니게) 사라지게 하려 애쓰는 어린이의 상상력을 되살린다. 자기 일을 스스로 하는 바람직한 습관과 독특한 상상력. 어린이가 새로 만들고 결코 잃지 않아야 할 것 중에 이것보다 더 소중한 것이 있을까. 평생을 지배하는 좋은 습관은 좋은 인생을 만드는 바탕이다. 또한 어른이 되면 저절로 사라지는 상상력은 소중한 정도가 아니라 남다른 삶을 살 수 있게 하는 만능 키 같은 것이다.


메리가 이끄는 모험과 환상의 세상


  메리가 제인과 마이클에게 만들어 주고 지켜준 것은 부모가 주지 못한 (오히려 부모는 지나친 잔소리와 훈육으로 아이들의 게으름과 반항에 불을 지피고 상상력의 씨를 말릴 소지가 다분하다) 매우 소중한 인생의 선물이다. 물론 메리와 같은 일을 척척해내는 부모도 세상 어딘가엔 존재할 것이다. 그러나 내가 목격한 부모 중에 그런 부모는 없었다. 물론 현실에선 메리 같은 보모도 없긴 마찬가지지만.


메리 포핀스와 마법의 세계에서 모험을 하는 세 어린이


  세상의 부모는 누구나 아이를 사랑하지만, 사랑하는 만큼 바람직하게 양육하는 가는 또 다른 문제다. 아이의 요구를 받아줄 것인가 내칠 것인가는 부모가 늘 겪는 딜레마다. 아이의 성향과 상황, 부모의 가치관과 형편에 따라 다르기 때문이다. 아이를 비교적 객관적으로 볼 수 있으면서 양육의 책임을 지닌 보모의 현명한 판단이 부모의 편협하고 기울어진 애정보다 나을 때가 있다. 그런 면에서 메리 포핀스는 자유로우면서도 이상적인 보모다. 얼핏 보면 아이들을 데리고 놀러 다니거나 허황된 마법 세상을 꿈꾸게 하는 것 같지만, 어린이들은 자라면서 환상과 모험을 대부분 잊고 현실에 안착한다. 마이클과 제인만 보더라도 선한 어른으로 자랐지만 마법사 유모와 함께 했던 모험은 까맣게 잊고 살고 있다.


점등원 잭과 메리 그리고 아이들


  50여 년이 지나 이 세상에 다시 나타난 메리 포핀스는 자신이 돌봤던 아이가 순진하고 심약한 가장이 되어 풀지 못하는 집 문제를 해결해 준다. 그녀가 뱅크스가에 나타난 것은 어린 삼 남매를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어른이 된 예전의 아이 마이클을 위해서 아닐까 싶다. 메리가 삼신할머니는 아니지만, 자신이 돌봤던 아이는 끝까지 책임지고 싶어 할지도 모른다는 엉뚱한 생각이 잠깐 들었다.


더 아름답고 강력해진 메리 포핀스


  이 환상적이고 신박한 유모가 정말 필요한 사람은 아이들이 아니라 부모들이다. 아이들은 의외로 강인하며 힘이 세다. 순수하고 믿음이 강하며 상처 받아도 금방 회복한다. 크게 노력하지 않아도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불가능한 것조차 가능하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어른들은 다르다. 그들은 의심 많고 겁은 더 많으며 상상력은 쥐꼬리보다 빈약하다.


  무능한 가장이 되어 집에서 쫓겨날지도 모른다는 불안과 두려움, 막막함과 고통을 온몸에 짊어진 건 어른이다. 아이들도 어른들의 불안에 영향받지만, 상상력이 고갈되고 현실에 치여 사는 어른의 구체적인 두려움엔 비할 바가 못된다. 메리 포핀스가 다시 돌아온 것은, 엄마 잃은 어린 세 남매 앞에서 제대로 슬퍼하지도 못하는 자신의 옛 아이 마이클을 위해서이기도 하다.


1964년 <메리 포핀스>에서 점등원으로 나왔던 '딕 반 다이크'. 속편에서는 전 은행장 미스터 도스 주니어로 나온다.


  메리 포핀스가 하는 '모든 것은 가능하다, 불가능한 것조차(Everything is possible, even the impossible)'라는 말은, 이미 어른이 됐지만 (아직도) 유모가 필요한 가장 마이클에게 해주고 싶은 말일 것이다. 불가능한 것조차 가능하다는 거짓말 같은 믿음은 아이보다 어른에게 더 필요하고 절실한 것이기 때문이다. 필요가 발명의 어머니라면, 유모는 아이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부모들을 위해 누군가가 발명한 신통한 발명품이라 생각한다. 그중 「메리 포핀스」는 원작자와 디즈니사를 먹여 살리면서 전 세계 아이들과 부모들에게 판타지를 제공하는 아름답고 신통한 발명품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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