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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이스 May 10. 2019

쿨한 파리지앵들의 기막힌 이중생활

영화 <논픽션 Non-Fiction> 2018년

  파리지앵들의 쿨함은 세계적으로 알아준다. 파리엔 쿨한 평정심을 유지하기 힘들게 하는 결혼제도를 가장 적극적으로 무용지물로 만드는 커플들이 많이 살고 있다. 그럼에도 그들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으며 가정을 만든다. 물론 결혼을 안 해도 아이를 낳고 가정을 만들기도 한다. 파리 시민들에겐 유난히 사랑의 충동과 감정적 유혹에 약한 유전자가 면면히 전해져 온 것인지 모르겠지만, 다른 도시의 커플들보다 외도가 잦고 갈등이 빈번하다. 그런 것 치고 막장스러운 치정은 의외로 찾아보기 힘들다. 순전히 나의 선입견과 편협한 식견에서 비롯된 생각이지만, 아주 틀린 말이 아니라는 걸 이 영화를 보며 다시 한번 느꼈다.  



  영화「논-픽션(Non-Fiction)」은 출판사 편집자와 여배우, 작가와 국회의원 보좌관 커플이 친구들과 나누는 책과 미디어, 사랑과 정치에 관한 촘촘하고 지적인 담론으로 채워져 있다. 쿨내가 진동하는 인물들 입에선 논리적이고 명쾌한 대화가 산발적으로 쏟아진다. 뚜렷한 줄거리나 클라이맥스가 없지만 지루하지 않다. 오히려 어느새 인물들 중 하나를 붙잡고 영혼의 쌍둥이처럼 동조하는 자신을 발견할 수도 있다.


 

  알랭(기욤 까네 Guillaume Canet)은 오래된 출판사에서 일하는 성공한 편집자다. 종이책이 밀려나고 전자책(e북)이 대세로 떠오른 시대에 어떻게든 종이책의 건재와 번영을 꿈꾼다.
  그의 아내 셀레나(줄리엣 비노쉬 Juliette Binoche)는 배우다. 범죄 드라마 시리즈를 오래 연기한 탓에 배역에 소진되어 연기에 흥미를 잃어가고 있다.
  레오나르는 알랭이 담당하는 소설가다. 성공한 전작들이 있지만, 자신의 경험을 노골적으로 써서 주위 사람들을 곤란하게 한다.
  레오나르의 아내 발레리는 국회의원 보좌관인데, 상관에 대한 순수한 신념으로 일하지만 정치가를 삐딱하게 보는 친구들 때문에 속상해한다.
  젊은 여성 로르는 알랭이 일하는 출판사 디지털 사업 담당자다. 종이책의 물성과 정감에 익숙한 업자들 속에서 e북이 출판의 미래라며 모든 책의 전자화를 추진하고 있다.



스스로에게 질문해 봐.
실제 일어난 일과 일어날 법한 일을 구분 못하는 건 아닌지...


  레오나르가 쓴 소설의 초고를 읽고 알랭은 이렇게 말한다. 그의 작품에 묘사된 적나라한 에피소드는 (고유 명사만 몇 개 바꾼) 레오나르가 실제 경험한 일이다. 더구나 외설적이고 내밀한 장면에 함께 등장하는 여자는 다름 아닌 알랭의 아내 셀레나다. 알랭은 그 사실을 끝내 알지 못하지만(어쩌면 알면서도 모른 척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픽션과 논픽션을 구분하지 못하는 레오나르의 집필 행태를 못마땅하게 여긴다. 한편, 그는 전자책에 확신이 없다며 디지털 출판을 대세라 여기는 로르와 언쟁하지만, 종종 침대는 공유한다.


편집자 알랭



출판계는 전자화를 악마의 출현으로 보죠.


  로르는 양성애자다. 직장 상사 알랭의 외도 상대이지만 여자 애인도 있다. 판매가 늘었다며 종이책을 옹호하는 상사와의 입씨름에 지쳐있다. 편리한 킨들(아마존의 전자책 단말기)을 '인류가 축적해온 글로 된 지식 전체를 인질로 삼아 구글이 사용자들을 광고주에게 판다.'라고 말하는 알랭을 미련 없이 떠나려 한다. 전자책과 오디오북은 안타까울 순 있지만 되돌아갈 수는 없는 흐름으로 여긴다. 개인의 소비패턴을 파악한 알고리즘으로 매출을 증진시키는 마케터처럼 출판도 알고리즘을 이용해 수요와 공급을 예측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출판계의 새로운 미래를 개척해보고 싶어 하는 그녀에게 알랭은 한 발 앞서 이별 선물까지 주며 작별인사를 한다. 가만 보고 있으면, 쿨하다 못해 싸늘할 정도다.

 

디지털 사업 담당자 로르


경찰이 아니라 위기 대처 전문가예요.


  셀레나는 오랫동안 연기해온 범죄 드라마 시리즈에 지쳐있다. 배역을 언급하는 사람들에겐 한사코 경찰이 아닌 위기 대처 전문가라고 정정해준다. 남편의 외도를 눈치채고 심란해하지만, 정작 자신은 남편이 담당하는 작가 레오나르와 6년 동안 외도를 하고 있다. 그의 신작에 자신과 함께 한 은밀한 경험이 노골적으로 묘사되어 있어 당황하지만, 신랄하게 비판하는 남편 앞에선 정작 소설가 역성을 든다.   


배우 셀레나


내 인생은 타인과의 관계에 의해 형성됩니다.


  전처부터 현재 애인까지, 소설 속 실존 인물들에 대한 사실적 묘사 때문에 레오나르는 독자들에게 비판받는다. 그의 전처는 책에 악의적으로 표현된 자신에 대한 과장과 왜곡 때문에 정신적으로 강간당한 기분이라고까지 했다. 작가가 타인의 삶을 함부로 이용하고 왜곡할 권리가 있느냐는 비판에, 레오나르는 자신의 인생을 표현한 것뿐이라고 항변한다. 자신의 인생은 곧 타인과의 관계 속에 형성되기에 자전적 픽션은 가능하다는 논리다.  


작가 레오나르


(할 말이 있다는 남편에게) 꼭 안 해도 돼!


  국회의원 보좌관은 바쁘고 피곤하며 까다로운 업무를 수행한다. 게다 냉소적인 친구들은 정치가에 대해 안 좋은 선입견들만 갖고 있다. 노동자 편에 서는 순수한 신념을 가진 정치가에게 선거 때 이기려는 목적밖에 없는 믿을 수 없는 사람이라며 비아냥거린다. 발레리는 정치가라면 싸잡아 비판하는 친구들에게 분노하지만, 상관이 길거리에서 성매매로 적발되자 맥이 풀린다. 남편의 외도를 알고 있지만 진실을 들을 용의도 없고, 딱히 남편을 사랑하는 것 같지도 않으면서 이혼할 마음은 더더욱 없어 보인다.


의원 보좌관 발레리


  시시각각 느껴지는 변화와 아직 다가오지 않은 미래는 가뜩이나 쿨한 사람들을 더욱더 냉소적이고 불안하게 만든다. 책에 헌신한 사람들은 그 책이 이미 그들을 추월했다는 것을 느끼며 망연자실해한다. 머리를 맞대고 해결책을 찾고 싶지만 피할 수 없는 질문들만 늘어난다.


  프랑스 원제 「이중생활 doubles vies」은 이 영화의 인물들이 처한 상황과 그들이 사는 세상을 관통한다. 디지털과 아날로그가 혼재된 세상에 각자의 감성에 부합하는 편에 서야만 하는 사람들은 혼란스러워한다. 눈이 팽팽 돌 정도로 빠르게 변하는 세상이 개탄스럽지만, 외면할 수도 없다. 신념대로 살고 싶지만 그 신념의 정체마저 의심스럽다. 픽션과 논픽션의 모호한 경계와 예술과 현실의 불협화음은 삶을 불편하게 한다. 안정적인 가정의 부부는 각자 외도를 하고, 정치가의 신념과 부도덕한 사생활은 어떤 식으로 잣대를 적용해야 할지 난감하다. 남편의 외도를 안 여자는 외도 상대 부부와 화기애애하게 식사하고 남편에게 임신 사실까지 고백한다. 도대체 얼마큼 쿨해야 이런 마인드를 가질 수 있는지 기차 찰 지경이다. 이들이 막장스러운 치정극 없이 안정적으로(?) '이중생활'을 하는 게 프랑스인의 냉소가 낳은 산물인지, 외도와 유혹이 비교적 다반사라 서로 단련이 되어 그런 것인지 모르겠다.


               

알랭과 로르


  인물들이 시시때때로 내뱉는 담론의 감성과 논리는 그다지 새롭거나 어렵진 않은데, 내가 따라가기 버거운 건 그들이 인용하는 작품들이다. 가령 프랑스 작가 말라르메부터 영화 「하얀 리본」, 로맨스 소설가 노라 로버츠나 힐링을 위해 어른들도 자주 한다는 색칠공부책까지, 근현대를 아우르는 전방위적 콘텐츠들은 내가 잘 모르는 것들이 태반이다. 그들이 일상적으로 인용하고 비유하는 콘텐츠들을 다 안다면 대사에 흥미진진하게 몰입했을 테지만 난 그러지 못했다. 제아무리 쿨한 그들도 삶이 불안하고 미래를 확신할 수 없기에 냉소적으로 격하게 논쟁하고, 아슬아슬한 이중생활에 몸을 맡기며, 아이러니로 점철된 삶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닐까 짐작할 뿐이다.


셀레나


  누군가 셀레나(줄리엣 비노쉬)에게 오디오 북 녹음에 영화배우 '줄리엣 비노쉬'를 쓰는 게 어떠냐고 해서 빵 터졌다. 셀레나는 아주 진지하게 그녀가 쉽게 할지 모르겠다며 소속사에 먼저 알아봐야겠다고 받아친다. 그러고 보니 셀레나의 직업이 배우인 것도 왠지 의미심장하다. 셀레나는 영화 말미에 드라마 속 자신의 배역이 (여태껏 주장했던 것과는 반대로) 위기 대처 전문가가 아니라 경찰이라고 정정한다. 진짜 그녀의 배역은 경찰도 위기 대처 전문가도 아닌 '셀레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잠깐 들었다. 이 영화 ‘논픽션’이 능숙한 배우들이 기막히게 연기한 '픽션'인 것은 사실이니까.


  알랭이 어느 책에서 보았다며 인용한 '아무것도 안 변하려면 모든 게 변해야 한다'라는 말은 조금 복잡해진 내 머리를 말끔히 비워줬다. '아무것도 아닌 것은 곧 전부 다'일 수밖에 없다. 세상은 변화를 논쟁하기 전부터 이미 변하고 있었고 단 한순간도 정체되어 있었던 적이 없다. 내가 제일 먼저 알아야 할 것은 내가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이다. 논쟁은 그다음에 시작해도 늦지 않다. 내가 지금 본 ‘논-픽션’이야말로 가장 그럴듯하고 리얼하게 세상을 투영한 실감 나는 픽션(허구)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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