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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이스 Apr 23. 2019

지구를 대신해 고마워요, 노래해 줘서!

김현수 손태진 듀오 콘서트. 마포아트센터, 2019. 04. 21.

"지구를 대신해 감사합니다."  


  지구의 날(4월 22일)을 기념해 환경운동연합에서 주최한 김현수 손태진 듀오 콘서트 중, 환경 이벤트 시간에 지구 환경을 위한 관객들의 메시지를 읽을 때마다 태진 군이 한 멘트다.


  공연 전 로비에서, 지구환경을 살리기 위해 실천하는 습관을 적어달라고 해서 나도 적었다. 관객들이 적은 메시지를 뽑아 공연 중간에 태진 군과 현수 군이 읽어주는 이벤트가 있었다. 뽑히면 두 사람이 사인한 포스터를 준다. 난 질문을 잘못 이해해 엉뚱한 걸 적었다. 지구 환경을 살리기 위해 지금 실천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했으면 하는 일을 적었다. '모든 1회 용기를 파기하고 개인 컵이나 수저와 젓가락을 휴대해야 하는 법을 제정, 메이크업도 마스크처럼 탈부착 가능한 반영구 제품을 쓰고, 대기 오염 개선을 위해 모든 대중교통을 전기로 운행하는 트램으로 바꿔야 한다'라고 썼다. (전기 에너지를 생산하느라 자원이 고갈되고 환경이 오염되는 건 쉽게 간과했다. ㅠㅠ) 너무 미래 지향적인 메시지를 써서 친환경 소재로 만들었다는 현수막(?) 같은 포스터는 받지 못했지만, 그들이 (마치 아무 말을 하듯) 어수선하게 이벤트를 진행하며 보여준 깨알 같은 재미와 웃음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아름다운 테너 김현수


  아름다운 테너 김현수와 포근한 베이스 손태진의 듀오 콘서트는 ♬Il Libro Dell'Amore로 문을 열었다. 재즈풍으로 편곡한 듯한 '사랑의 책'은 네 사람의 화음과는 또 다른 아름다움으로 다가왔다. 두 남자는 모래 빛깔(?)의 세미 정장을 입었는데, 발랄하면서도 댄디해 보였다. 둘 다 우월한 기럭지라 뭘 입어도 빛나지만, 이번엔 특히 더 아름다웠다. '지구의 날' 기념 콘서트라 생수도 일회용 병이 아닌 텀블러에 담아 로고가 잘 보이게 마셨다. 주최 측에서 꼭 그렇게 마시라고 시켰는지, 말 잘 듣는 아이처럼 (평소처럼 뒤 돌아 마시지 않고) 정면을 보고 대놓고 마신다.


  지난번 언플러그드 공연 때는 악기가 여덟 개였는데, 이번엔 피아노, 기타, 드럼, 베이스 네 개로 줄었다. 공연 때마다 꼬박꼬박 악기를 소개해주는 덕에 악기 연주에도 몰두할 수 있었다.


   ♬꽃이 핀다는 현수군 솔로 곡으로 천 번 넘게 듣고, 방송에서 태진 군과 부른 것도 백번 넘게 본 것 같다. 정작 원곡 가수 케이윌이 부른 건 한 번도 못 봤다. (사실 현수 군과 태진 군이 부르기 전에 이런 노래가 있는 줄도 몰랐다.) 이렇게 무대에서 다시 보니 또 심장이 두근거린다. 부르는 두 사람도 감회가 새로운지 방송에서 불렀을 때 얘기를 했다.


  태진 군이 ♬오래된 노래를 부르는 걸 보니, 방송에서 이 노랠 부르신 '부장님'이 지금 무대 위 태진 군 옆에 홀로그램처럼 떠오른다. 그때와 목소리는 똑같은데, 지금 무대엔 부장님 아들처럼 보이는 잘 생긴 청년이 부르고 있다. 그 부장님도 나름 정겨웠지만, 지금 아드님이 조금 더 멋있다. (ㅎㅎ)


포근한 베이스 손태진


  '사랑이 왜 이리 고된가요~ 이게 맞는가요~ 나만 이런가요~ 고운 얼굴 한번 못 보고서 이리 보낼 순 없는데~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그 험한 길 위에 어찌하다 오르셨소. 내가 가야만 했던 그 험한 길 위에 그대가 왜 오르셨소~'

  심장을 쥐어짜는 듯한 이 노래는 현수 군이 솔로로 부른 ♬상사화 (드라마 '역적' OST)다. 드라마를 안 봐서 몰랐다. 이런 노래가 있었다는 것을. 원곡을 부른 사람이 있겠지만, 내게 이 노랜 영원히 심장을 두드리는 현수 군의 음성으로 기억될 것이다. 그의 다음번 솔로 음반에 보너스 트랙으로 이 노래가 꼭 들어갔으면 좋겠다.

(음악 선생님처럼 내게 세상의 아름다운 노래를 끊임없이 알려주는 현수군~ ♥)


  관객들의 심장을 쥐어짜느라 힘들었는지 현수 군이 땀을 흘리자 태진 군이 닦아준다. 무대 위 의자 위치와 간격을 놓고 살짝 투닥거리긴 했지만, 이 비즈니스 브라더스는 언제 봐도 정겹다. 둘이 싸우지 말고 오래오래 사이좋게 지내길 바란다. 넷이 뭉쳐 다니는 것도 아름답지만, 이렇게 둘이 함께 해도 어찌나 흐뭇한지 (내가 그럴 나이는 아닌데) 엄마 미소가 절로 나온다.


  태진 군은, 포디콰가 함께 하면 아무 말을 해도 세 명중 한 명은 정신 차리고 받아주는데 둘만 있으니 정신이 혼미하다고 한다. 실은 너님들은 넷이 있을 때도 혼미하긴 마찬가지였다고 말해주고 싶다. (ㅋㅋ) 그런 혼미한 아무 말이 속속 튀어나와야 아, 내가 지금 포르테 디 콰트로 콘서트에 와 있구나~ 싶다. 넷이 있으나 둘이 있으나 그들의 아무 말은 변함없는데, (여태껏 그런 적은 별로 없지만) 이들이 정돈된 멘트만 하면 무척 서운할 것 같다. 노래할 때와 말할 때의 극심한 간극은 메워지지 않았으면 한다. 포디콰의 매력은 신처럼 아름답고 장엄하게 노래하고, 인간처럼 아무 말이나 거리낌 없이 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각자 솔로에 이어 두 남자가 함께 한 노래는 ♬신기루♬단 한 사람이다. 훈정이 형의 음성으로 시작되는 신기루의 처음 파트는 태진 군이 열었다. 이 노래는 포디콰 노래 중 (아주 어렵게 선정한) 나의 최애곡이다. 사실 이 곡이 연주될 거란 기대를 안 해서 살짝 놀랐다. 무대에서 이 노래를 들을 때마다 특별한 선물을 받는 기분이다. 테너와 베이스에 맞게 편곡된 듀엣은 익숙하면서도 낯설었다. 노래하는 두 남자의 모습은 홀로그램을 보는 듯, 말 그대로  '신기루' 그 자체였다. '단 한 사람'도 익숙한 현수 군의 음성 대신 태진 군의 목소리로 시작됐다. 훈정이 형 파트는 현수 군이, 벼리 군 파트는 태진 군이 커버한다. 내가 포디콰 노래를 많이 듣긴 들었나 보다. 네 사람 각각의 파트가 각인된 포디콰 노래는, 부르는 사람이 바뀌면 익숙하면서도 낯설게 분위기가 전환된다.


  이 시점에서 조심스럽게 현수 군과 태진 군이 듀엣 음반을 내줬으면 하는 바람을 꺼내 본다. 훈정이 형과 벼리 군도 각자 솔로 음반을 내고, 현수 군과 태진 군이 듀엣 음반까지 내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보다 먼저 포디콰 3집이 어서 나오길 매일 기다리고 있지만.


  미세먼지도 날려버릴 듯한 미성을 뿜어내며 두 남자가 부른 다음 노래는 ♬Caruso다. 태진 군이 키를 낮춰 시작했다가 현수군 음성과 어우러져 폭발하듯 쏟아내는 화음은 내가 들었던 그 어떤 카루소보다 감미롭고 웅장했다. 자기들끼리 정한 1부가 끝났다며 둘이 손 잡고 인사하더니 들어간다.


  송영주 쌤의 6집 앨범 타이틀 BETWEEN의 시원하고 아름다운 4중주가 이어지고, 몇 번을 감탄하는 사이에 연주가 끝나자 다시 두 남자의 무대가 시작됐다.



  쌍둥이처럼 똑같이, 줄무늬 있는 블랙 슈트로 갈아입고 나온 두 사람은 ♬Moon River를 감미롭게 부르며 2부를 시작했다. 이어 영화 「여인의 향기」의 그 유명한 탱고 곡에 가사를 붙인  ♬Por Una Cabeza를 열창했다. 태진 군은 안 하길 잘했다고 하지만, 현수 군은 학원을 다녀서라도 탱고를 추겠다는 의지를 보인다. 그의 말대로 다음번엔 춤을 추며 이 노래를 부르는 두 남자를 보고 싶다.

  듀오 콘서트라서 그런지 부드럽고 달달하게 시작했다가 폭발하는 듯한 이중창으로 마무리하는 패턴은 아무리 들어도 질리지 않는다. 질리기는커녕, 고막을 안 거치고 바로 심장을 폭격하는 듯하다. 벼리 군과 훈정이 형이 들으면 섭섭할지 모르겠지만, 두 남자 음성은 네 남자 못지않게 아름답고 격정적이다. 지난번 언플러그드 콘서트 때 마이크가 없어서 너무 힘들고 고통스럽다고 하소연하다가 마이크에 대고 시원하게 쏟아내는 모습을 보니 내 심장이 옷을 찢고 튀어나올 것만 같다.


  ♬Je crois entendre encore (오페라 진주조개잡이 중 '귀에 남은 그대의 음성')은 현수 군 솔로, ♬Smile은 태진 군 솔로로 들었다. 늘 느끼는 것이지만, 태진 군이 곡을 씹어서 소화하는 솜씨는 탁월하다 못해 경이롭다. 다른 사람이 불렀다면 무심코 지나쳤을 텐데, (내가 아는 노래든 모르는 노래든) 태진 군이 무대에서 부르는 노래는 꼭 다시 한번 찾아보게 된다. 스마일 역시 오래전에 자주 들었다가 한동안 잊고 있었는데, 태진 군 때문에 다시 새롭게 다가왔다.


  토이의 ♬내가 너의 곁에 잠시 살았다는 걸 이 노래는 누가 먼저 하자고 했을지 궁금하다. 관객의 심장을 저격하는 선곡 요원이 따로 있는 건가? 아니면 둘이 머리 맞대고 사이좋게 우리 이번엔 뭐 할까? 넌 무슨 노래 하고 싶어? 하며 정하는 걸까.  


피켓팅때문에 눈물을 머금고 2층에 앉았다.


  환경운동연합에서 준비한 이벤트는 두 남자의 어수선하지만 재치 있는 진행 덕분에 인상적이었다. 환경 보호를 위해 현수 군은 (수줍게 고백하길) 변기 물을 한 번에 안 내린다고 하고, 태진 군은 음식을 남기지 않는다고 한다. 앞으로 그들의 콘서트 땐 1회용 생수병이 아닌 개인 텀블러를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설마 오늘만 실천하고 마는 것은 아니겠지. 지구의 날을 기념해 콘서트까지 하신 분들이.


  마지막 곡은 안드레아 보첼리와 마테오 보첼리가 부른 ♬Fall On Me다. 컬러스 투어 콘서트 때 줄기차게 들었는데, 다시 들으니 새삼 좋다. 아들 마테오가 영어로 부르는 파트는 태진 군이 커버하고, 안드레아 보첼리가 부르는 이탈리아어 부분은 현수 군이 불렀다. 이중창인 원곡이 자연스럽게 그대로 재현되는 듯했다. 부자(父子)가 부른 노래도 좋지만, 개인적으론 이 비즈니스 형제가 부른 노래에 더 기대고 싶다.

  앙코르곡으로 들려준 칸초네는 웅장하면서도 신이 났는데 제목을 모르겠다. 태진 군이 말해줬는데 못 알아들었다. (ㅠㅠ) 마지막으로 두 남자가 들려준 노래는 ♬Comes True다. 포르테 디 콰트로 3집 앨범에 수록될 곡인데, 네 번째 들으니 거의 외웠다. 빨리 보고 싶고, 듣고 싶고, 손에 넣고 싶다, 포디콰 3집!


  오늘도 현수 군과 태진 군 정수리와 가마를 많이 봤다. 노래 한 곡이 끝날 때마다 허리를 90도로 숙여 인사하고, 1부와 2부가 끝날 땐 깜찍하게 손까지 잡고 더 오래 인사했다.

  내가 가끔 하는 망상이 있다. 사는 동안 공룡이나 외계인과 마주치면 소스라치게 놀라는 대신 (언젠가 한 번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의연하고 담담하게 대면하는 상상을 한다. 공룡보다는 외계인 쪽이 가능성이 높아 보이는데, 만일  창백한 푸른 점 지구에 외계인이 온다면 (뇌파를 이용하든 손짓 발짓을 하든) 물어볼 것이다. '너네 별에 포디콰 같은 팀 있냐? 김현수 손태진 있냐? 들어는 봤냐, 그들의 노래를?' 

  태진 군은 관객들이 쓴 환경 보호 메시지를 읽어주며 몇 번이나 지구를 대신해 감사하다고 했는데, 나야말로 지구를 대신해 두 남자에게 이렇게 아름다운 무대를 만들어줘서 고맙다고 말하고 싶다. 그들의 음성이야 말로 소중하게 지켜야 할 지구의 공공재 중 하나가 아닐까. (ㅎㅎ) 너무 부담 주고 싶진 않지만, 환경 못지않게 그들의 목소리 또한 망가지지 않게 지켜야 하는 소중한 자원이라고 생각하는 건 나만이 아닐 것이다.


지구에서 노래하는 가장 아름다운 테너 김현수

 
2018. 04. 22. 테너 김현수 단독 콘서트

2019. 04. 21. 김현수 손태진 듀오 콘서트

2020. 04.      ???


  4월은 잔인하고 가슴 아픈 달이지만, 아름다운 기억도 함께 간직할 수 있게 됐다. 지구에서 노래하는 이 아름다운 남자들 덕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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