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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이스 Mar 19. 2019

아름답고 유니크한 왕의 귀환

뮤지컬 <King Arthur> 충무아트센터 대극장, 2019.03.15

  드디어 그분이 왕이 되셨다. 말끔한 슈트를 장착하고 무대에서 동생들과 멋지게 노래하는 형아가 대극장 뮤지컬 주인공이 됐다는 소식에 무척 기뻤다. 게다가 무려 '왕'이시다. 킹 아더(King Arthur)는 내게 단군 신화만큼 익숙하지만 왠지 피상적으로 느껴지는 유럽의 전설적인 이야기다. 아더왕, 원탁의 기사, 마법사 멀린, 엑스칼리버, 카멜롯의 전설 등 아더왕을 모티브로 만들어진 수많은 서사가 순식간에 떠올랐다 사라졌다. 뮤지컬로 다시 태어난 『킹 아더 King Arthur』는 대체 어떤 카리스마를 품고 있을지, 단아하고 곱디 고운 고훈정 배우가 어떤 왕이 되었을지 궁금해 견딜 수가 없었다.  


2019. 03. 15. 캐스트


  프리뷰 공연 두 번째 날, 고훈정 아더를 만나기 위해 친구와 아트센터에 갔다. 프랑스 뮤지컬을 각색한 한국 초연이라는데, 고전적인 다른 대극장 뮤지컬과 달리 전반적으로 모던하고 유니크했다.


  널리 알려진 판타지 '아더왕의 전설'은 자신의 운명을 모르는 순수한 청년 아더(고훈정)가 마법사 멀린(지혜근)의 도움으로 왕이 될 사람만이 뽑을 수 있다는 전설의 검 엑스칼리버를 뽑으면서 시작된다. 아더는 검을 뽑은 후 자신의 험난한 운명을 감지하며 브리튼 왕국의 군주가 된다. 검을 탐내던 멜레아강(이충주)은 아더가 결투에 참여하지 않고 엑스칼리버를 뽑은 것을 못마땅해 하지만, 어쩔 수 없이 아더에게 기사 작위를 내린다. 카멜론 공작의 딸 귀네비어(간미연)와 사랑에 빠진 아더는 그녀를 브리튼 왕궁에 데려와 혼인한다. 하지만 귀네비어는 아더와, 새롭게 사랑에 빠진 기사 렌슬롯(장지후) 사이에서 갈등한다. 게다가 아더의 이부 누이 모르간(박혜나)은 복수를 위해 음모를 꾸미고, 멜레아강은 모르간의 사주로 아더를 죽이기 위해 귀네비어를 납치한다. 그 와중에 색슨족이 침입하자 나라와 백성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아더는 모르간과 멜레아강의 음모에 맞서며 처절한 운명에 휘말린다.



  무대 전환 없이 그래픽과 조명, 움직이는 세트들로 신을 나눈 것은 미니멀하지만 다채롭게 느껴졌다. 세트가 계속 바뀌는 것보다 안정적이면서도 다이내믹하게 보였다. 다만 메인 세트인 계단의 폭이 넓어 배우들이 움직이는데 힘들지 않을까 걱정되긴 했다. 나만의 느낌일지 모르겠지만, 특히 여배우들이 (아장아장) 조심스럽게 계단을 내려오는 것 같아 살짝 조마조마했다. 간미연 배우가 중간에 미끄러져 아차 했는데, 고훈정 배우가 얼른 일으켜 세워 다독여줘서 흐뭇했다. (실수는 없는 게 좋지만 이런 실수는 왠지 인간적으로 느껴진다.) 모르간을 연기한 박혜나 배우와 멜레아강의 이충주 배우 등 모든 배우들이 열일했고, 앙상블들의 퍼포먼스는 눈을 뗄 수 없을 정도로 역동적이었다.



  넘버들은 한번 들어도 귀에 착착 달라붙을 정도로 대중적이다. 프렌치 팝에 락의 느낌이 가미된 곡들 중엔 고음으로 올라가는 것이 많다. 웅장하기보다는 감각적이면서 세련된 느낌이다. 중세를 배경으로 한 판타지 서사에 모던한 음악이 어우러지니 새롭게 환기된다. 가사를 전달하려 애쓰면서 가성까지 써가며 넘버를 소화하는 배우들 또한 매우 훌륭했다. 이번 회차에 공연한 배우들이 유독 출중한 것인지, 어느 배역 하나 크게 거슬리는 사람이 없었다. 모든 대사와 가사를 100% 다 들은 건 아니지만 극을 즐기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중세가 배경인 고전적 이야기를 현대적인 감각으로 재해석한 뮤지컬 『킹 아더(King Arthur)』는 취향을 저격한 나 같은 관객에겐 매우 참신하게 다가왔지만, 비판의 여지도 많은 공연이다. 앙상블들의 역동적인 군무와 아크로바틱, 2막을 시작하며 보여주는 난타 같은 퍼포먼스는 (개인적으로) 신선했지만, 약간의 빈틈이나 실수도 크게 부각되는 약점이 될 수 있다. (실제 난타 같은 퍼포먼스는 배우들의 팔에 힘이 빠졌는지, 뒤로 갈수록 살짝 음악의 박자와 어긋나기도 했다) 어쨌든 극의 전개와 인물들의 심리를 대사나 노래 못지않게 퍼포먼스로 표현한 것은 좋았다. 전쟁으로 인한 백성들의 핍진한 생활, 색슨족의 침략과 수탈, 격정적인 왕족의 사랑과 기사와의 로맨스까지 앙상블들과 함께 한 퍼포먼스는 다채롭고 유려했다.




  청년에서 성인으로 성장해가며 고뇌하는 왕, '내가 하는 모든 선택은 백성과 나라를 위해서만 할 것이다.'라고 선언하며 무대를 휘젓는 그를 쉽게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멀고 아득한 이국의 서사를 왜, 굳이 지금 봐야 하는지 뜬금없기도 했는데, 나라와 백성을 위해 한 (인간적인) 선택이 신의 뜻에 맞는 것인지 묻고 고뇌하는 아더를 보면서, (살짝 오글거리는 면도 없지 않지만 ㅎㅎ)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옹호하려는 그의 인간적인 고뇌에 공감할 수밖에 없었다.


  고훈정 배우는 다양한 음역의 넘버를 무리 없이 소화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발음도 또박또박하게 해 대사를 완벽하게 전달한다. 혼신의 힘을 다했는지 고뇌하는 왕은 극 후반으로 갈수록 수척해지는 게 보였다. 귀네비어와 랜슬롯의 배신, 모르간과 멜레아강의 음모와 괴롭힘 속에서 인간적으로 울부짖는 아더는 중세의 전설 속 왕이 아니라 내 앞에서 눈물을 글썽이는 강하지만 슬픈 인간이었다.    



  사실 난 프랑스 원작 뮤지컬은 보지 않았고, 꼭 원작과 같아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아서, 사전 지식도 없지만 선입견도 없이 봤는데, 고전적인 대극장 뮤지컬과는 다르게 유니크하고 모던한 분위기가 새로웠다. 많은 비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공연 끝에 관객들이 친 기립 박수는 이 모든 시도와 땀 흘린 배우들과 고생한 스태프들에 대한 관객의 진심이라 생각한다. 사심을 조금 담아 말해본다면, 머나먼 이국의 전설적인 왕은 이 땅에 성공적으로 귀환했고, 그의 무대는 매우 아름답고 신비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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