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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이스 Mar 17. 2019

포르테디콰트로 두 손에 자유를!

포르테 디 콰트로 콘서트 <언플러그드> 롯데콘서트홀, 2019.3.16.

  앞으로 포르테 디 콰트로(Forte Di Quattro)는 노래할 때 개인 마이크 사용을 금지했으면 좋겠다. 가능하다면 국민 청원을 해서라도 꼭 그렇게 했으면 좋겠다. 그들이 들으면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개소리냐며 아우성칠 것이다. (그들이 성토하는 모습이 상상된다. ㅎㅎ) 그럴만하다. 한 곡 한 곡 부를 때마다 숨쉬기 힘들었다는 현수군 말이 빈말이 아니라는 거 안다. 다 보이고 들리고 느껴졌으니까. 그래도 그들의 언플러그드(unplugged) 무대를 경험한 나는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넌 기분이다. 이 기분을 어떻게 말로 다 할 수 있을까. 이 사태(?)의 시발점이 된 개인 콘서트를 했던 현수군 음반 중 '♪걱정마요' 가사로 대신할 수밖에.  


지금 너무 아름다운 그대 뒷모습마저, 오, 난 가슴 벅차오르지만
잘 참아내고 있죠.


  언플러그드(UNPIUGGED) 콘서트는 훈정이 형 말대로, 약 1년 전  '파니스 안젤리쿠스(Panis Angelicus)가 쏘아 올린 작은 공'에서 시작됐다. 작년 4월, 테너 김현수 단독 콘서트가 있었다. 물론 나도 친구와 함께 그 자리에 있었다. 그때 게스트로 나온 포디콰 세 남자는 ♪Panis Angelicus를 부르는 도중에 마이크를 내려놓고 오로지 성대로만 불렀다. 이들의 깜짝 행동에 객석은 술렁거렸다. 잊을 수 없는 아름다운 순간은 그렇게 시작됐다. 그때 훈정이 형이 기회가 되면 마이크 없이 노래하는 콘서트를 했으면 좋겠다고 했는데, 설마 진짜 이렇게 할 줄 몰랐다. (무한도전도 아닌데, 한 번 말한 걸 정말 해내는 이들의 실천력은 정말 대단하다!)


2018년 단독콘서트를 한 테너 김현수


  여덟 개의 악기가 세팅되어 있는 무대에 전주가 흐르더니 부드러운 저음이 들리며 태진 군이 등장한다. ♬Odissea의 자신의 파트를 부르며 차례로 현수 군과 훈정이 형, 그리고 벼리 군이 등장한다. 늘 넷이 함께 단정히 서서 시작하는 무대만 봤는데, 이런 오프닝은 처음이다. 도입부엔 화음을 넣지 않고 각자 파트를 솔로로 불렀다. 이 무대를 위해 편곡했다고 한다.


  사실 개인 마이크 없이 부르면 조금이라도 티가 날 줄 알았는데, 오히려 마이크 하울링 없이 또렷하게 잘 들려 깜짝 놀랐다. 클래식 음악 전용 콘서트홀이고 공연장 자체에 마이크가 장착되어 있긴 하지만, 네 남자의 음성은 그 넓은 콘서트홀 구석구석에 부족함 없이 울려 퍼졌다. 두 손이 자유로워진 그들은 더 자연스럽고 풍부한 제스처를 하며 열창한다. 새삼 이들이 (너무 당연하지만) 성악가로 보였다. 네 사람 다, 숨소리조차 내지 않고 소리에 집중하는 모습은 소름 끼칠 정도였다.    


  어제는 고뇌하는 중세의 군주였던 훈정이 형은 시간과 공간을 넘어 순간 이동한 것처럼 말끔한 블랙 슈트 차림으로 열창한다. 이 형은 성대가 여섯 개쯤 되나. (두 개의 심장을 가진) 박지성 선수가 전성기 때 그라운드를 누비는 것처럼, 이렇게 종횡무진해도 괜찮은 건가 싶다. 자주 볼 수 있는 나 같은 관객이야 좋지만, 이렇게 많은 일을 해내도 건강과 컨디션에 이상 없는지, 볼 때마다 그가 아무 탈 없길 기도하게 된다.


뮤지컬 배우 고훈정


  ♬Notte Stellata는 그동안 아카펠라로 많이 들었는데, 오늘은 방송 경연 때 부르는 모습이 연상될 정도로 공들여 부르는 게 느껴진다. 공연장의 음향 시설은 객석 위주로 되어있어 무대에서는 (의외로) 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다고 한다. 훈정이 형은 인이어 없이 불러 자신이 어떻게 노래했는지 모르겠다며, 중간중간에 객석에서 소리가 잘 들리는지 계속 확인한다. 엄청 잘 들린다고, 단언컨대 지금까지 본 무대 중 최고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재즈 피아노, 기타, 드럼, 색소폰, 바이올린, 베이스, 첼로, 비올라로 구성된 연주팀을 소개할 때, 현수 군과 훈정이 형은 함춘호 선생님 기타에 달린 마이크에 딱 달라붙어 있었다. 마이크가 몹시 그리웠나 보다. 저런 모습을 보니, 연주자들에게 마이크란 우는 아기의 공갈젖꼭지 같은 게 아닐까 싶다. 굳이 없어도 되지만, 왠지 손에 쥐고만 있어도 심신이 안정되고 자꾸 입으로 가져가게 되는 필수 아이템이지 싶다.


  이 공연에서 연주되는 모든 곡들은 언플러그드에 맞게 새롭게 편곡되었고, 네 남자는 오로지 악기 소리에만 의지해 열창한다. ♬단 한 사람 전주가 나오자, 처음 시작하는 현수 군이 한 발짝 앞으로 나와 부른다. 뒤이어 다른 멤버들도 자연스럽게 자기 파트를 부를 때 앞으로 나와 노래한다. 두 손의 자유는 두 발의 자유로 이어졌고, 네 남자의 몸짓은 노래 못지않게 유연하고 부드럽게 흐른다. (오페라 무대에 여러 번 선 멤버에게 할 말은 아니지만) 진짜 다들 오페라 가수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소에도 그랬지만, 유난히 위층과 사이드 쪽 객석에 시선을 주며 노래하는 태진 군은 변치 않는 다정한 객석 성애자다웠다.


열창하는 네 남자


  ♬Stella Lontana는 콘서트에서 자주 들을 수 있는 노래가 아니라 더 반가웠다. 연주가 끝나자 역시 훈정이 형은 잘 들렸냐고 객석에 재차 확인한다. 이보다 더 잘할 수 없다고, 발끝에서부터 기를 모아 부르게 느껴진다고 장문의 톡을 보내고 싶을 정도다.


  네 남자가 함 선생님 주위에 옹기종기 모여 앉더니 은은한 기타 반주에 맞춰 ♬Love of My Life를 부른다. 프레디 머큐리가 이렇게 화제 될 줄 알았다면 퀸 노래를 좀 더 음반에 넣을 걸 하며, 또 아무 말을 한다. 참, 한결같은 남자들이다. (ㅎㅎ) 오늘은 유독 현수 군이 말을 아낀다. 마이크 없이 노래하느라 목을 조심스럽게 쓰는 듯하다. 이어지는 노래는 ♬신기루. 아~ 결국, 난 이 노래를 듣다 참았던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공공장소에선 하품할 때 외엔 눈물을 흘린 적 없는데, 이렇게 되고 말았다. 그동안 포르테 디 콰트로 공연을 보면서 너무 아름답고 감동적이어서 울컥한 적은 수없이 많지만, 눈물이 밖으로 나온 건 처음이다. 처음 갔던 포디콰 클라시카 콘서트(2017년 12월 31일 성남 콘서트)에서 첫 곡 ♪좋은날을 들었을 때, 너무 놀랍고 설레어서 살짝 눈물이 맺히긴 했다. 그런데 이렇게 티슈가 필요할 정도로 흘린 적은 처음이다. (나의 최애 곡인) 신기루 때문인지, 포디콰 때문인지, 언플러그드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이 지독한 남자들은 결국 내 눈에서 눈물을 뽑아내고 말았다.


  오늘을 위해 편곡했다는, 전주를 클래식 곡으로 시작했다가 내가 아는 음으로 변환되는 ♬Senza Parole는 특히 훈정이 형의 벨칸토 창법이 두드러지게 느껴진다. 이어서 넷이 다정하게 모여 서서 우~하는 화음으로 시작하는 ♬Il Libro Dell'Amore. 이 노래에 무슨 설명이 더 필요할까.     


포르테 디 콰트로


  어마어마한 감동으로 1부가 끝났는데, 2부는 정말 생각지도 못한 깜찍한 놀라움으로 시작됐다. 객석에서 들려오는 태진 군 노랫소리, 뒤이어 들리는 벼리 군, 현수 군, 훈정이 형까지. 옅은 파스텔 톤 슈트로 갈아입은 네 남자가 객석 곳곳에 흩어져 서서 ♬좋은 날을 부르자 또 한 번 술렁였다. 포디콰를 보기 위해 온몸을 들썩이며 동요하는 관객들의 심정을 이들은 알까? 노래가 끝나고, 좀 더 여러분 가까이에서 노래를 들려드리고자 했다는 훈정이 형의 멘트가 아니더라도, 이렇게 깜찍하게 노력하는 포디콰를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포디콰 1집 수록곡 ♬Bred Dina Vida Vingar는 콘서트에서 처음 들었다. 오늘 안 왔으면 영원히 무대에서 못 들었을지도 모른다 생각하니, 가슴이 또 심쿵했다. 이어진 곡은 작은 공을 쏘아 올려 거대한 산을 만든 문제의 그 곡 ♬Panis Angelicus(생명의 양식)다. 잊지 않고 반짝이는 핑거 라이트 속에서 네 남자가 곱지만 웅장한 음성으로 만들어낸 생명의 양식은 넓은 홀에 아름답게 퍼졌다.


  송영주 선생님이 부담스러워하실 거라면서도 피아노 주위로 꾸역꾸역 모여서는 네 남자. 선생님이 다가오지 말라고 했다는데도 굳이 다가가 옹기종기 모여서 부른 노래는 ♬베틀노래다. 무대나 방송에서 들을 때마다 어째서 이 노래는 포디콰 음반에 실리지 않은 건지 궁금했다. 이렇게 콘서트에서 줄기차게 부를 거면 음반에도 넣어주지. 언젠가 콘서트에서 현수 군이 말했던 것처럼, 포디콰가 우리 가곡을 알리는데 약간의 책임감을 갖고 동참했으면 한다. 이탈리아 노래나 오페라 아리아 못지않게 아름다운 우리 가곡을 포디콰의 음성으로 전해주면 좀 더 자연스럽고 친숙하게 접할 수 있을 듯싶다. 그리고 현수 군의 예언대로 국악을 접목한 크로스오버 음악의 부흥도 기대하고 있다.  

 

아름다운 크로스오버 그룹 포르테 디 콰트로


  벼리 군과 현수 군의 듀엣곡인 1집 수록곡 ♬La Vita e Bella 역시 무대에서 처음 듣는다. 편곡해서 네 남자가 함께 부르는 노래를 듣고 있자니, 뜬금없지만 '인생은 아름답다'는 생각이 든다. 의자에 걸터앉아 이 노래를 부르는 그들은 그 어느 때보다 아름다웠고, 듣는 관객들은 무척 행복했다. ♬러브 발라드도 방송에선 들었지만, 무대에선 아카펠라를 제외하곤 처음 듣는다. 콘서트에선 잘 안 불렀던 레퍼토리를 쏟아내는 건 이들의 계획된 선물일까, 아니면 언플러그드에 적합한 선곡을 하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일까. 어쨌든 익숙한 곡을 듣는데도 낯설고 새롭다. 감동받은 관객들이 너무 행복해 눈물을 줄줄 흘리는 꼴을 보고야 말겠다는 이들의 강렬한 의지가 아니고선, 선곡이 이렇게 예상 밖일 수 없다.


  태진 군은 마이크 없이 하다 보니 다른 때보다 말을 적게 했다고 하는데, 훈정이 형은 꼭 그렇게 (토크를) 안 한 건 아니라고 한다. (ㅋㅋ) 맞다. 이들은 조심스럽지만 나름 열심히 (마이크 없이) 얘기했다. 말을 몹시 아끼는 벼리 군을 위해 애쓰는 태진 군과 형아 덕분에 벼리 군도 토크의 입을 뗐다. 현수 군은 다른 때보다 말이 확 줄었는데, 마이크 없이 하는 노래에 집중하느라 조심하는 듯 보였다.


  ♬Fantasma D'Amore♬WISH를 마지막으로 콘서트의 공식적인 레퍼토리는 끝났지만, 늘 그렇듯 그들은 객석의 환호에 이끌려 다시 나왔다. 태진 군이 이제 포디콰는 앙코르 곡은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지만, 관객들은 귓등으로도 안 듣는다. 네 남자가 콘서트 끝날 때마다 하는 관객과의 밀당이 어디 한두 번인가. 새삼 무슨 씨도 안 먹힐 선언까지. (ㅎㅎ)


  공식적인 앙코르 첫 곡 ♬Ave Maria 부를 때, 또 심장이 멎는 줄 알았다. 네 남자가 악기들 뒤로 걸어가더니 무대 뒤쪽 단에 올라가 반원형으로 흩어져 노래하는데, 정말 사진으로 찍어두고 싶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두 손이 자유로워서 그런지 그들의 두 발 또한 자유롭게 움직인다. 노래 끝나고 단에서 내려올 때, 현수 군이 훈정이 형에게 자연스럽게 손을 내밀자 형아는 망설임 없이 잡고 내려온다. (왜 그런지 모르겠는데, 이 장면이 참 귀엽고 인상적이었다 ㅎㅎ)


  이어진 곡은 ♬Destino. 아니다, 우리가 그동안 들었던 흥겨운 그 노래가 절대 아니다. 편곡을 심하게(?)한 듯, 우아하고 서정적인 발라드가 된 테스티노는 색다른 감동으로 관객의 귀를 후려친다. 이 무슨 뜻밖의 선물인가 싶을 정도로 이 노래 역시 운명처럼 들린다. 이제 정말 마지막 곡인 포디콰 콘서트 공식 라스트 송 Adagio. 백화점이나 마트 폐점 때 들리는 공식 이별곡처럼, 포디콰 멤버들을 무대 뒤로 사라지게 하고 관객들은 자리를 털고 일어나게 하는 이 노래는 가장 야속하지만 가장 멋진 곡이기도 하다.


  개인 마이크와 인이어 없이 한 언플러그드 콘서트는 크로스오버를 지향하는 성악 돌 포르테 디 콰트로에게도 쉽지 않은 프로젝트였을 것이다. 생생히 목격하고 동참한 관객의 한 사람으로 말하는데, 이들의 시도는 단순히 성공적이었다는 말로는 부족할 정도로 압도적으로 고무적인 무대였다. 단언컨대, 지금까지 본 포디콰 무대 중 최고였다. (그렇다고 지금까지의 무대가 별로였다는 것은 절대 아니다!) 어떤 무대건 네 남자는 최선을 다해, 영혼을 끌어모아 한 곡 한 곡 수놓듯 무대를 채운다. 하지만 이번 언플러그드 무대는 상상 그 이상으로, (정말 새삼스럽지만) 아, 이 남자들이 성악가구나~ 싶을 정도로 깊이 있고 아름다운 연주를 들려줬다.


  훈정이 형은 자신의 노래를 모니터 하지 못해 불안한지 자꾸 객석에 잘 들리냐고 체크했다. "모니터가 왜 필요해요? 당신 자신을 믿고, 함께 무대에 선 동료들을 믿고, 객석을 믿으세요. 정말 지금까지 본 것 중 최고였어요."라고 말해주고 싶다. 벼리 군은 심장이 터질 것 같다고 하는데, 보는 나도 너무 아름다워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현수 군은 한 곡 한 곡 부를 때마다 숨쉬기 힘들었다고 하는데, 마음 같아선 전용 산소호흡기라도 대주고 싶었다. 태진 군의 부드럽지만 힘찬 베이스 음성이 얼마나 든든하고 유려한 지 새삼 깨달았다.


  개인 마이크 없이 노래해서 포디콰 멤버들은 너무 힘들었고 고통스러울 정도로 심혈을 기울였다고 하는데, 아이러니하게도 관객은 그들의 고통에 비례해 더 황홀하고 행복했다고 하면 너무 잔인한가? 대신 객석은 (내가 느끼기에도) 그 어떤 콘서트보다 열광적으로 손뼉 치고 환호했다. '내일이 없을 것처럼 노래한' 이들에겐 박수나 함성으로 한참 부족하지만. 다시 못할 아름다운 경험을 한 사람으로서, 그들의 고통이 나의 기쁨이 되는 게 너무 미안하지만, 이미 봐버린 눈과 들어버린 귀는 되돌릴 수 없다. 너무 힘들면 자주 못하더라도 1년에 한 번씩이라도 언플러그드 콘서트 해달라고 매달리고 싶은 심정이다. 정말 할 수만 있다면, 포르테 디 콰트로의 두 손에 영원한 자유를 주고 싶다. 그들이 거부하지만 않는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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