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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이스 Jan 14. 2019

익숙해지지 않는 아름다움

포르테 디 콰트로 콘서트 COLORS, 경기도문화의전당 대극장

2019년은 아름답게 시작됐다.

인천에 이어 수원으로, 한 달 만에 포르테 디 콰트로「FORTE DI QUATTRO」 공연장을 찾았다. 내 발로 찾아갈 수 있는 한계는 서울과 수도권이다. 마음 같아선 그들이 출몰하는 데는 어디라도 가고 싶지만, 나약한 인간에겐 물리적 한계가 존재할 수밖에 없다. 그들은 해가 바뀔 동안 다른 곳에서 공연하고 방송 출연도 했지만, 난 그날 이후 처음 보는 거라 한없이 반가웠다. 나만큼 기뻐할 할 친구와 함께 미세먼지 따윈 패기 있게 헤치며 공연장에 도착했다.   



▶ 공연장에 나타난 해리포터


'복사+붙이기'를 한 듯, 콘서트 레퍼토리는 중간에 변주가 있긴 하지만 지난 공연과 거의 흡사했다. 같은 콘셉으로 하는 콘서트 투어이니 당연하지만, 그 당연함 속에서도 그들의 깨알 같은 매력은 예상치 못한 곳에서 터졌다. 공연장 오른쪽 벽에 현수 군의 그림자가 간간이 울렁거렸다. 다른 사람의 그림자도 있었지만, 혼자만 안경 쓴 현수 군의 그림자는 얼핏 보면 해리포터 같았다. 무대를 숨죽이고 보는 와중에도 해리포터에게 눈길이 갔다. 해리는 가만히 눈을 내리깔고 있다가 어느 순간 마이크를 들더니 열창한다. 조명의 장난이겠지만, 공연장 객석 벽에 커다랗게 울렁이는 해리포터의 동그란 머리와 안경테가 너무 귀여웠다. 무대 볼 시간도 아까운데 그림자까지 귀여우면 어쩌라는 것인지.


아름다운 테너 ‘얼굴의 신’ 김현수


해가 바뀌어도 이들의 '아무 말'은 변함이 없다. (그들은 나름 준비했을지 모르지만) 콘셉없이 내뱉는 것처럼 보이는 아무 말은 언제 들어도 썰렁하면서 신선하다. 히터를 세게 틀어놓은 실내에 스며드는 선선한 바람 같다고 할까.

포디콰의 '얼굴의 신'은 오늘도 얼굴 천재의 본분을 잊지 않고 '프라이드'를 유감없이 드러냈다. 이렇게 편안하게 얘기하며 클래식 공연하는 게 꿈이었는데, 그 꿈을 이뤘다고 할 때는 내 꿈이 이루어진 것처럼 가슴이 뜨거워졌다. 훈정이 형은 다른 공연으로 피곤해 보였는데도 목에 솟은 핏줄이 가실 새 없이 열창했다. 벼리 군은 여전히 목이 타들어가 슬픈 테너였고, 태진 군의 매끄러운 토크는 날로 일취월장하는 것 같다. 이번엔 훈정이 형 보다 진행 멘트를 더 많이 한 듯하다. 이러다 몇 년 후엔 태진 군이 MC인 오디션 프로그램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거 예언하는 건 처음인데, 왠지 태진 군이라면 가능할 것 같다.



▶ ♬언제나에 대한 오해와 진실


♬언제나를 부를 때, 그동안 몇 번 해서 확실히 몸이 풀렸는지 그 짧은 몸짓에도 (일부러 짠 것처럼) 네 사람은 따로 노는 신공을 발휘한다. (ㅎㅎ) 넷이 각 맞춰 깔끔하게 턴했다면 와우~했을 텐데, 그렇게 자유분방한 턴엔 할 말이 사라지고 웃음만 나온다. 노래로 감동을 줬다 말로 단박에 깨부수더니 이젠 몸으로 웃긴다. 이런 극과 극을 오가는 치명적인 매력은 아무나 발휘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이들은 정말 무대 위의 고수들(?) 임에 틀림없다.


포디콰는 ♬언제나 전주에서 박수를 유도하지만, 노래가 시작되면 객석의 박수소리가 급격히 잦아든다. 태진 군이 오해한 게 있는데, 손뼉 치기 힘들어서 그런 게 아니다. 포디콰의 음성을 듣기 위해서 자연스럽게 손을 내려놓는 것이다. 네 사람의 음성이 박수소리에 묻히는 게 싫어서, 포디콰의 숨소리도 놓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아마 다른 관객들도 나와 같은 마음일 거라 생각한다.) 솔직히 그들이 빠른 템포의 노래를 해도, 박수를 치고 싶지 않다. 그들의 음성을 온전히 듣는데 방해되는 건 그 어떤 것도 하고 싶지 않다. 그래도 네 사람이 원한다면 서울 콘서트에서는 열심히 박수 칠 의향은 있다. 그게 뭐 어려운 일이라고. 포디콰가 원하면 뭔 짓을 못할까.



▶ 포르테 디 콰트로가 넘기는 '추억의 책장'


1부 끝에 추가된 ♬추억의 책장을 넘기면은 <불후의 명곡>을 보지 못해서 그들의 음성으로는 처음 들었다. ('다시 보기' 하려고 일부러 동영상도 보지 않았다.) 고즈넉하게 시작했다가 점점 화음을 쌓더니 웅장하게 내뿜는 사중창의 힘에 또 울컥할 뻔했다. 이런 말은 좀 그렇지만, 포디콰는 원곡의 아우라를 사라지게 하고 새로운 아우라를 만드는 '원곡 지우개'같다. 무슨 노래든 일단 손에 들어오면 곡을 분해해 포디콰에 맞게 최적화시킨 후, 화음으로 초토화시키며 듣는 이의 가슴을 헤집어놓는다. 이런 마법을 수시로 부리는 이들은 어떻게 보면 참 지독한 남자들이다.

 

포르테 디 콰트로


▶ 목이 말라 슬픈 테너


2부는, 이제 막 녹음을 끝냈다는 3집에 수록될 신곡으로 포문을 열었다. 지난 공연 땐 녹음 중이라 했는데, 그새 녹음을 했나 보다. 아직 수정할 여지가 남았다고 하지만, 그냥 지금 이대로 딱 좋으니 하루빨리 두 눈에 펼쳐진 그 길을 바라보고 싶고, 저 넓은 들판을 온몸으로 감싸 안아 한번 더 뭐라도 하고 싶다. 3집을 너무 오래 기다리고 싶지 않은 건 나만이 아닐 것이다.  


♬ARIEL ♬LA PREGHIERA ♬WISH까지. 마지막 소절을 잘라내 세 곡을 이어 붙여 휘리릭 불러버리니 박수 칠 시간이 없었다. 한곡 하고 인사하고 물 마시고 노래하던 패턴을 바꾼 건 좋은데, 목이 말라 슬픈 테너에겐 가혹한 처사가 아닌가 싶다. 벼리 군은 참 일관되게 목이 타들어가고 있다. 지난번 공연에도 그랬는데, 이번 공연장은 인천보다 덜 건조했는데도 물을 많이 마신다. 목이 쉽게 타들어가는 벼리 군에겐 물 마실 시간을 충분히 줘야 한다. 그의 폭포수 같은 고음은 다량의 수분으로 만들어지는 게 틀림없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렇게 물을 애타게 찾을 수가 없다.   



▶ 성악가의 음이탈


각자 하는 솔로곡의 레퍼토리는 전부 바뀌어서 좋았다. 전에 들었던 곡도 좋지만, 세상의 모든 노래를 포디콰 음성으로 듣고 싶은 관객으로선, 그들이 새로운 노래를 부를 때마다 새삼 설렌다. 현수 군은 쇼팽 선생님의 곡에 가사를 붙인 노래를 서정적이면서도 힘차게 불렀다. 사실 그의 미세한 음이탈을 감지했지만, 거슬리진 않았다. 음이탈이 날 만한 곳이 아닌 평온한 곳에서 나 오히려 감동적이었다는 훈정이 형의 말은 현수 군의 삑사리 고백을 아름답게 묻어버렸다. (현수 군의 음이탈을 처음 본 것은 아니다. 「카사노바 길들이기」에서 '여자의 마음' 부를 때 난 음이탈이 문득 떠오른다. ㅋㅋ 뭐, 그래도 당신은 최고의 테너입니다!!!!) 태진 군은 학창 시절 실기 시험 볼 때 삑사리 낸 아름다운(?) 추억담을 얘기했는데, 신기한 건 음이탈을 자유자재로 재연한다는 것이다. 어떻게 저런 것도 할 수 있을까. 성악가들의 신비로운 재주는 끝이 없다.



▶ 고배우 목에 솟구친 핏줄


드디어!!!! 동영상으로만 영접했던 이 분의 이 노래를 들었다. 고배우의 ♬Bohemian Rhapsody. 정말 목에 솟은 핏줄이 사라지지 않을 정도로 열창하는 모습에 가슴이 찡했다. 어쩜 저 단아한 체구에서 저런 아우라가 폭발하는지. 노래를 듣고 있으면 내가 그의 성대에 빨대를 꽂고 피를 빠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고배우의 음성에선 비릿한 피맛이 느껴질 때가 있다. 참, 여러 가지로 의미로 이 분은 존재 자체가 아름다우신 분이다. 포디콰의 맏형일 땐 단아한데, 뮤지컬 무대에선 은근 섹시하다. 깨방정 떠는 연기를 할 때조차 매력이 뚝뚝 떨어지니, 이 분이야 말로 다 가진 분이란 생각이 든다. 색다른 모습으로 종종 보는 건 좋지만, 무리해서 건강을 해치는 건 아닐까 좀 걱정되기도 한다.   


리치 베이스 태진 군은 ♬You'll never walk alone을 불렀다. 태진 군이 솔로로 감미롭고 힘차게 부른 것도 좋지만, 그의 말대로 포디콰 네 사람이 함께 부르는 모습도 꼭 보고 싶다.



▶ 만약에, 벼리 군이 솔로 음반을 낸다면 


마지막으로, 목이 타들어가 슬픈 테너 벼리 군의 솔로 무대는 그 어떤 무대보다 역대급이었다. (그의 다른 솔로 무대도 한결같이 좋았지만 이번엔 정말... 후들후들했다.) 태연의 ♬만약에.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가요를 많이 듣지 않는 나도 이 노래만큼은 한때 천 번 정도 연달아 들었을 정도로 좋아하던 노래다. (이 노랠 싫어하는 사람도 있을까?) 이 노래를 열창하는 벼리 군을 보는 내내 새 해 선물을 받은 기분이었다. 이 폭포수 같은 테너는 모든 노래를 폭포로 만들어 버리는 고요하고 신비로운 재주꾼이다. 이 분이 자신이 연습한 곡을 모아 솔로 음반을 낸다면 20개쯤 구입할 것이다. (진심!) 연말에 최고의 음반으로 투표도 할 것이다. (한 사람이 여러 번 할 수 있으니, 포디콰 3집과 벼리군 솔로 앨범을 번갈아 가며 투표할 것이다, 반드시!) 벼리 군의 솔로 음반을 손에 쥐는 것이 내 소원 목록에 추가되었으니, 이벼리 군이 제발 솔로 음반 좀 내줬으면 좋겠다.

  
네 남자의 솔로곡을 들을 때마다 드는 생각인데, 저렇게 몇 번 부르는 걸로 끝내지 말고 제발 음원으로 냈으면 한다. 공연장에서만 듣고 지나가기에는 너무 아쉽다. 현수 군이 여러 무대에서 부른 ♬마중 ♬첫사랑 ♬바람이 분다 등의 노래와 벼리 군과 태진 군이 포르테 디 콰트로 콘서트에서 부른 솔로곡만이라도 음원으로 내달라고 누군가에게 애원하고 싶다. 훈정이 형이 싱글로 발표한 곡들은 앨범으로 나오길 기다리는데, 대체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는지 이제 슬슬 조바심까지 난다.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이들에게 너무 많은 것을 바라는 건가 싶기도 하지만, 그래도 이 욕망은 멈출 수가 없다. 물론 좋아하니까 기다리는 인내도 발휘해야겠지만.

 


▶ 영원히 익숙해지지 않는 아름다움


이번 시즌 공식 유니폼인 듯한 버건디 컬러 슈트를 장착한 네 남자는 변함없이 훈훈했다. 말 그대로 '멋짐이란 것이 폭발'하는 순간이 끊임없이 이어진 세 시간은, 언제 오나 싶었는데 순식간에 지나갔다.

♬아베마리아까지 열창한 후 들어간 네 남자는, 재킷을 입고 나와 앵콜곡까지 충만하게 부르고 사라진다. 또 한 번의 아름다운 무대가 끝났다. 수없이 들은 노래와 수십 번 본 그들인데, 한 곡 한 곡이 매번 새롭고, 한 무대 한 무대가 여전히 신기하다. 이들이 뿜어내는 아름다움은 몇 번을 보고 들어도 익숙해지지 않는다. 늘 낯설고, 끝나면 아쉽다. 익숙해지고 길들여지면 편안하겠지만 설레지 않을 것이다. 포르테 디 콰트로는 영원히 익숙해지지 않는 아름다움으로 남아있어야 한다. 같은 노래를 수백 번 들어도, 같은 슈트를 수십 번 봐도 질릴 수 없는 존재로 말이다.  

 

 다음 공연은 서울에서 내 생일에, 좋은 친구와 함께 선물처럼 즐겁게 보고 올 것이다. 그들은 전혀 의도하지 않았겠지만, 내겐 가장 아름답고 설레는 선물이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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