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로이스 Jun 11. 2019

사피엔스라면 꼭 읽어야 할 ‘사피엔스’

책 <사피엔스 Sapiens>  Yuval Harari, 2015년

  좋은 책은 의미심장한 질문을 던진다. 신선한 충격과 발칙한 놀라움은 덤으로 안겨주면서.


  유발 하라리(Yuval Noah Harari)의『사피엔스 Sapiens: A Brief History of Humankind』엔 많은 물음표가 등장한다. 변방의 유인원 호모 사피엔스는 어떻게 세상의 지배자가 되었는가? 수렵 채집을 하던 우리 조상들은 어떻게 한 곳에 모여 도시와 왕국을 건설하였는가? 어떻게 신과 국가와 인권, 돈과 책과 법을 신봉하게 되었는가? 물론 답을 독자들에게 구하진 않는다. 명민한 저자는 신박한 통찰력에 맛깔난 비유를 버무려 인류의 역사를 웬만한 대하소설 못지않게 흥미진진하게 들려준다. 태곳적부터 지금까지, 인간과 인간을 둘러싼 지구 환경의 변화를 생물학적으로, 혹은 사회학적으로 펼쳐 보인다.

100년도 못 사는 한 인간이 받아들이기엔 너무 장대한 빅 히스토리라 간혹 급하게 비약한 것 같다고 느껴지는 부분도 있지만, 한 명의 사피엔스가 다른 수많은 사피엔스에게 제시하는 통찰의 결과물은 무척 놀랍다.


  3만 년 전까지만 해도 생존했던 여섯 종의 호모(사람) 종 중에 동부 아프리카에 서식하던 우리 조상 호모 사피엔스만이 살아남은 이유는 무엇인지, 그 사실이 이후 지구 역사에 어떻게 작용했는지 알아보는 것은 매우 흥미롭지만 피상적이기도 하다. 내가 새삼 호모 사피엔스라는 것은, 어떤 존재들이 보기엔 내가 외계인일지도 모른다는 말처럼 생뚱맞게 느껴진다. 평소 내가 인간이라는 걸 특별히 자각하며 살지 않고, 내 신체를 구성하는 세포나 그 안에 새겨진 유전자를 의식하지 않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의 저자가 예리하게 지적한 사피엔스가 이르는 곳마다 대형동물들이 멸종했다는 사실을 접할 땐, 우리가 생물학 역사상 가장 치명적인 종이며 생태학적 연쇄살인범이라는 걸 수긍하지 않을 수 없다.


  저자는 사피엔스가 세상을 지배하게 된 것은 다수가 유연하게 협동할 수 있는 유일한 동물이며, 상상 속 존재를 믿는 능력 때문이라고 한다. 예컨대 국가, 신, 돈, 인권 등 실체 없는 시스템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 없었다면 사피엔스는 이토록 파괴적인 힘을 구사하지 못했을 것이라 한다. 우리 종은 인지 혁명, 농업혁명, 과학혁명을 통해 급격한 패러다임 전환을 체험했고, 이제 과학혁명 이후 생명공학 혁명의 목적지는 죽음을 정복하는 '길가메시 프로젝트'라고 주장한다. 그에 따르면 똑똑한(혹은 그렇다고 착각하는) 인류의 궁극의 목표는 영생인데, 그다지 똑똑하지 않은 인류도 다 아는 진리는 죽음이 없는 삶은 결코 행복하지 않다는 것이다.


  인간이 죽음을 두려워하고 되도록 늦추려 하는 것은 생명체의 본능에 가까운 욕망이지만, 영원한 삶은 그 누구도 원치 않을 것이다. 끝이 없다는 것은 언제가 다다를 끝보다 더 섬뜩하고 두렵지 않을까. (나만 그런가?)   



  유발 하라리의 예언 같은 통찰의 끝은 매우 서늘하다.


  호모 사피엔스는 스스로의 한계를 초월하는 중이다. 이제 호모 사피엔스는 자연의 법칙을 깨기 시작하면서, 그것을 지적설계의 법칙으로 대체하고 있다. 만일 사피엔스의 역사가 정말 막을 내릴 참이라면, 우리는 그 마지막 세대로서 마지막으로 남은 하나의 질문에 답하는 데 남은 시간의 일부를 바쳐야 할 것이다.


  "우리는 무엇이 되고 싶은가?" '인간 강화' 문제라고도 불리는 이 질문에 비하면 오늘날 정치인이나 철학자, 학자, 보통사람들이 몰두하고 있는 논쟁은 사소한 것이다. 어쨌든 오늘날의 종교, 이데올로기, 국가, 계급 사이에서 벌어지고 있는 논쟁은 호모 사피엔스의 종말과 함께 사라질 것이 너무나 분명하기 때문이다.


  어떻게 살며, 무엇을 추구하고,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 우리는 평생 이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며 괴로워하고 희망에 부풀었다 실망하길 반복한다. 이 책의 저자가 던진 '우리는 무엇이 되고 싶은가?'라는 질문은 얼핏 그동안 인류가 해왔던 질문과 비슷해 보이지만, 매우 다른 차원의 화두다. 신이 될 것인가 사이보그가 될 것인가. 생명력을 포기한 인공지능으로 영생을 누릴 것인가, 자멸하는 지구에 생존하는 몇 안 되는 생명체로 남을 것인가. 혹은 우리의 인지를 넘어선 또 다른 존재로 전환해 존재할 것인가.


  질문의 답은 알 수 없지만 확실한 건 하나 있다. 그동안 사피엔스가 진화해 온 20만 년의 시간보다 앞으로 닥칠 100여 년의 시간이 그 어느 때보다 다이내믹하고 충격적일 것이다. 나도 사피엔스지만, 사피엔스야말로 어디로 튈지 모르는 미지의 신이자 극단의 연쇄살인범이며 상상을 초월하는 그 무엇이 되길 갈망하는 모험가임에 틀림없다.    

매거진의 이전글 고슴도치의 우아함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