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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이스 May 22. 2018

10년의 내공이 빚은 찬란함

뮤지컬 <The Three Musketeers> (2017. 5. 20)

  지난 일요일, 나의 어린 친구와 뮤지컬을 보러 갔다. 살짝 들뜬 친구와 서둘러 공연장에 가니 한 시간 넘게 일찍 왔다. 친구와 나는 주스와 커피를 산 후, 여유만만하게 포토존에서 사진을 찍고 근처를 돌아다녔다. 한전아트센터 근처에서 보드 타는 형들을 보는 친구의 눈이 반짝였다. 형들을 구경하고 들어오겠다 해서, 난 통유리 창으로 밖에 있는 어린 친구가 잘 있는지 종종 확인하며 혼자 커피를 마셨다. 친구는 보드 타는 형들과 얘기하면서 즐겁게 웃기도 했다. 처음 보는 사람들과 어떻게 저렇게 금방 친해지는지 모르겠다. 어린 친구는 로비로 들어와 화장실에 가더니 한참이 지나도 안 돌아왔다. 불안해서 찾으러 가려는데, 친구가 의기양양한 모습으로 와서 속삭였다.

  "배우들 보고 왔어요. 남자 화장실에 진한 화장을 한 남자가 있기에 쫓아가 봤더니, 다른 배우들도 있었어요."

  헉! 이 아이가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온 거지? 집에 TV가 없어서 그 친구는 배우들을 잘 모른다. 내가 포스터를 가리키며 누굴 봤냐고 물었더니 짚어내는 사람이 대박, 엄기준과 신성우다.


  친구가 배우들을 따라갔다는 동선을 우린 다시 되짚어 가봤다. 지하 1층의 남자 화장실에서 나오면 지하 주차장과 연결된 통로가 있고, 주차장 입구 가까이에 배우들 분장실이 있었다. 그 근처까지 가서 배우들을 본 모양이다. 배우들도 널 봤냐고 물었더니, 보더니 씩 웃고 분장실로 들어가더란다. 이런 소소한 에피소드를 만들어가며 기다리는 동안, 드디어 여섯 시가 되었고 우리는 공연을 봤다.


  삼총사 10주년 공연은 십 년의 내공이 빚어낸 찬란함 그 자체였다. 엄유민법(엄기준, 유준상, 민영기, 김법래)이 아닌 엄신민법(엄기준, 신성우, 민영기, 김법래) 버전의 캐스트였는데 꽤 훌륭했다. 십 년 동안 합을 맞춘 배우들은, 청년이 아닌 장년의 나이가 느껴지긴 했지만 노련하게 무대를 장악했다. 너무 능숙해 오히려 능글맞을 정도로 깨알 같은 애드리브를 쏟아내며 관객을 들었다 놨다 했다. 나의 작은 친구도 그들의 농담과 애드리브를 알아듣고 웃었다. 특히 이 극은 깜짝 놀랄만한 와우 팩터(WOW FACTOR)가 넘쳐난다.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서사도 효과적으로 표현해 인상적이었다. 보는 사람은 쉽지만, 그걸 만들고 구현해내는 사람들의 노고와 지혜가 느껴졌다.



  배우들 얼굴이 잘 보인다며, 어린이용 방석을 깔고 앉은 친구는 내내 좋아했다. 칼싸움 씬이나 마차 추격씬 등 자기가 좋아하는 장면에선 감탄하고 흥분하며 깔깔댔다. 옆에서 그 모습을 보는 나는 더 크게 웃었다. 물론 속으로. 커튼콜에서 조금 장황하다 싶을 정도로 지난 십 년을 자축하는 배우들을 보며, 난 그들의 찬란한 십 년과 겹쳐지는 나의 잃어버린 십 년을 떠올렸다. 공연이 끝났다는 아쉬움이 이런 식으로 나타나서 살짝 당황스러웠다. 그들은 각자 다른 작품과 활동으로 커리어를 쌓았겠지만, 어김없이 일 년에 한 번쯤은 <삼총사>를 위해 뭉쳤을 것이다. '우리는 하나! 정의는 살아있다!'라는 순진한 구호를 나이 먹어서도 저렇게 해맑고 당당하게 외칠 수 있는 그들의 특권(?)이 남 다르게 보였다. 10년이란 시간은 그들에게 선물 같은 시간이었을 것이다. 물론 그들을 찾는 관객들에게도.  


  새벽에 잠깐 잠들었다 깼는데 꿈에 달타냥이 나왔다. 더 정확히 말하면 엄기준이 나왔다. 공연이 기대 이상 재밌었지만, 너무 피곤해서 살짝 잊고 있었다. 그런데 이런 식으로 달타냥이 나의 무의식 속에 나타나 그렇게 빨리 잊지 말라고 하는 것 같다. 안 잊을 것이다. 어떻게 잊을 수 있겠는가.


  집에 오는 길에, 오늘 함께 한 어린 친구에게 불쑥 물어보았다. 삼총사 이름이 뭐지? 삼총사가 촌뜨기라고 부르며 친해진 정의로운 남자 이름은? 작은 친구는 외국어 고유 명사 외우는 걸 몹시 힘들어한다. 내가 주저 없이 아토스, 아라미스, 포르토스, 달타냥 이러니까 그걸 어떻게 외웠냐며 깜짝 놀란다. 리슐리외 추기경, 밀라디, 콘스탄스, 쥬샤크. 다른 등장인물 이름도 다 외웠다고 하니 소스라치게 놀란다. 이러니 내가 이 친구랑 있으면 안 웃을 수가 없다. 그들의 11주년 공연도 이 친구와 함께 볼 수 있을까? 어린 친구는 이해할 수 있을까? 왜 전에 봤던 걸 또 보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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