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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이스 Apr 23. 2018

그의 쏘뇨(Sogno 꿈)가 나의 쏘뇨가 되는 마법

테너 김현수 단독 콘서트, 롯데콘서트홀, 2018 0422


  너무 아름다워서 슬프고, 너무 황홀해서 절망적인 무대를 보았다.


  몇 시간 전, 테너 김현수가 조심스럽지만 찬란하게 펼쳐 보인 쏘뇨(꿈)가 아직도 생생하다. 행복이 절정에 달했을 때 나오는 나의 나쁜 버릇이, 그를 보며 또 도졌다. 저 아름다운 존재도 언젠가 소멸할 거란 생각이 나를 끝없이 추락시켰지만, 그의 노래는 날개가 되어 나를 다시 날아오르게 했다.


  그가 도니제티의 아리아 '남몰래 흐르는 눈물(Una Furtiva Lagrima)'을 부를 때 호흡을 멈춘 후 찾아온 정적, 그 1초 아니면 2초 동안의 묵음에 심장이 내려앉는 것 같았다. 감미롭지만 위험했다.

 '꽃이 핀다'를 부르면서 그는 또 한 번 침묵했다. 악기 소리마저 멈춰버린, 그의 호흡이 잠시 사라지는 순간이 영원처럼 아득했다. 그가 숨을 토해 내고서야 나도 숨을 쉴 수 있었다.



  노래 사이사이 혀가 짧다고 수줍게 고백하는 그에게, 그래서 한 번 더 미소 지을 수 있었다고, 혀가 짧아 차근차근 꺼내 보이는 고백이 더 진실했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성대를 보호하기 위해, 말할 때 힘을 안 주고 미끄러지듯 흘려보내는 버릇이 있는 듯하다. 그래도 그가 빚어내는 음은 맑고 깊게 오래 퍼진다. 뇌를 울리며 공명하는 당신의 목소리를 평생 잊지 못할 거라고 속삭여 주고 싶었다.


  독일어와 이탈리아어, 프랑스어로 부르는 노래는 가사를 못 알아들어도 꿈같고, 꽃 같고, 하늘 같았다. 늘 네 명이 함께 하다 홀로 서있으면 외로워 보이지 않을까 염려했는데, 그는 결코 쓸쓸하지 않았다. 눈부시게 빛나는 젊은 영혼은 한 사람만으로도 벅찼다. 오케스트라가 없어도 피아노와 기타, 드럼과 더블 베이스가 그의 목소리를 감싸고 채워줬다. 벌써부터 그의 다음 무대를 기다리는 조바심을 어찌 달래야 할지 모르겠다.


  [포르테 디 콰트로 Forte di Quattro]의 의리로 빛난 게스트 무대도 더없이 좋았다. 잠시 김현수가 빠진 포르테 디 트레(Forte di Tre)가 부르는 'Love of My Life'는 또다시 내 맥박을 요동치게 했다. 중간에 마이크를 내려놓고 성악 화음으로 콘서트홀을 꽉 채운 'Panis Angelicus(생명의 양식)’ 다시 '네 명의 힘(포르테 디 콰트로)'으로 돌아와 고막을 때린 'Ave Maria'까지. 그동안 이들에게 바친 내 사랑과 열정이 무색하지 않아서 기뻤다.

  나의 매력적인 테너는 팀과 함께 있으니 좀 더 편안해 보였다. 긴장을 풀며 팀의 귀여움 담당으로 돌아와 농담도 했다. 천팔백 석의 콘서트홀을 밝힌 건 조명이 아니라 그의 눈웃음과 몸짓, 휘파람이었다.   


  두 시간 동안, 그는 악기 연주에만 의지해 그 넓은 콘서트홀에 홀로 있었다. 같은 팀 외에는 게스트도 부르지 않고, 별다른 기교도 없이 담백하게 무대를 이끌었다. 그래서 더 좋았고 끌렸다. 설레었다.

  곡이 끝날 때마다, 무대 정면과 좌우를 향해 90도로 인사하는 그를 보며, 그 모습 변치 말길 소망했다. 당신이 변하지 않으면 나도 절대 변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그가 부른 '쏘뇨(Sogno 꿈)'는 슬픈 가사지만, 그가 오늘 밤 꾸는 꿈은 달콤하고 포근할 것이다. 그는 자신이 사는 곳 옥상에서 세상을 내려다보며, 이 세상 사람들이 자신의 노래를 듣길 오랫동안 열망해 왔다고 했다. 그리고 그 꿈을 이룬 심정을 떨리는 목소리로 고백했다. 이 무대가 어찌 그만의 꿈이고, 나만의 신기루일까. 재능 있는 한 사람의 아름다운 꿈이 이루어지는 순간, 그를 열망하는 나의 꿈도 이루어졌다. 이 황홀한 마법이 사라지지 않는 한, 그의 생과 나의 생이 겹치는 내내,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걸 다해 그를 찾아 헤매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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