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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이스 Jun 10. 2018

누군들 틈만 나면 살고 싶지 않겠어요..

책  <틈만 나면 살고 싶다>  김경주의 인간극장, 신준익 그림

  원래 균열이 많은 생이다. 빈틈이 숭숭 뚫린 헐렁한 삶을 원한 건 아니었다. 내 생이 이럴 줄 나도 몰랐다. 내 일상의 균열을 자주 의식하는 요즘, 이 책의 '틈만 나면 살고 싶다'라는 제목은 무척 도발적이었다. 단숨에 읽게 되는 짧지만 묵직한 글은, 내 삶의 균열과 다른 듯하면서도 비슷한 틈을 이야기한다.


  김경주 작가가 르포 문학이라 결정한 장르에 담은 '보통 사람들이 사는 이야기'는 그림과 더불어 에세이와 시가 어느 지점에서 합의한 듯한 묘한 리듬으로 읽힌다. 산문도 운문처럼 쓰는 이 작가를 추적한 건 꽤 오래전이다. 하지만 그의 시집이나 에세이, 인터뷰를 찾아 읽을수록 그는 더 오리무중의 사람이 되어 간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렇다. 이 책 역시 그가 쓰는 또 하나의 변주곡으로 나에게 다가왔다.   

김경주 작가


'『틈만 나면 살고 싶다』는 틈이라도 있다면 그 틈을 찾아 열심히 살고 싶은, 틈 밖에 존재하는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다.'라는 게 이 책의 공식 설명이다.

  작가에게 자신의 삶을 기꺼이 들려준 사람들은 직업적으로 보면 약간의 특이함을 동반한 평범한 이웃이다. 슈트 액터(탈 인형을 쓰고 연기하는 배우), 중국집 배달원, 바텐더, 벨보이, DJ, 연극배우, 야설 작가, 청원 경비, 대리운전기사, 택시 기사, 이동 조사원, 경마장 신문팔이, 동물원 사육사, 엘리베이터 걸, 달력 모델, 헬리콥터 조종사, 환경운동가, 가짜 환자 아르바이트생, 우편집배원, 소리 채집가, 중장비 기사, 응급실 의사, 대출 상담사, 나초 레슬러 등. 응급실 의사를 제외하고 비정규직이나 일용직이 많다. 대부분 좀 위험하고 순탄치 않은 일을 하는 사람들이다. 시인의 정체성이 강한 작가는, 이들의 평범한 듯 평범하지 않은 삶을 재구성해 서늘한 우화처럼 들려준다.



  이 글은 작가가 <한겨레 21>에 「분투」라는 제목으로 연재한 원고라고 한다. 말 그대로인 이 삶의 분투기에는 단조롭게 산 어느 독자의 허를 찌를 만한, 상식은 아니지만 얼핏 상식처럼 보이는 잡다한 지식이 종종 나온다.

  쥐약에 눈을 멀게 하는 성분이 있다는 걸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아는지 모르겠다. 쥐가 약 먹고 어두운 구석에서 죽어 썩으면 안 되니까 나와서 죽으라는 합리적인 이유에서다. 자살하려는 사람이 먹으면 목숨은 건져도 눈이 멀 수 있다.

  아이엠에프 때 우리나라 젊은 남자들이 프랑스 외인부대에 용병으로 많이 지원했다는 것도 이 책을 통해 알았다. 아니, 프랑스에 국적 따윈 묻지 않는 외인부대(자국 군인 대신 전투에 참가하는 것이 목적인 부대)라는 게 있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디제이에게 불륜 조장 음원은 없냐고 묻는 성인 나이트 사장이 실존하고, 회사 이사님의 아들이 엘리베이터에서 여자와 '그 짓'하는 걸 목격한 경비가 해고되는 일이 발생한 것도, 앞가슴에 심폐소생술을 거부한다는 표시로 DNR(Do Not Resuscitate)이라고 문신을 한 노인이 많다는 것도 이제야 알았다.


  우리는 다른 이의 생을 궁금해하고 종종 참견하고 싶어 한다. 나보다 우월한 타인은 부러움과 희망으로 여길 수 있고, 나보다 못한 타인에겐 동정심을 가지며 (난 적어도 저 정도는 아니라는) 묘한 안도감을 얻는다. 이 책의 타인들은 어떤가. 나와 결이 다른 삶을 사는데 묘하게 나와 닮은 이웃들은 연민과 슬픔, 색다른 부러움과 한탄을 자아낸다. 누군가 내 삶을 묘사한 르포를 봐도 이런 감정을 느끼지 않을까 싶다. 이들이 틈 밖에 존재하는 보통 사람들이라면, 나 역시 그렇다. 타인의 삶에서 내 삶의 정체를 깨닫게 될 때가 있는데, 이 책을 덮는 순간이 그랬다. 내 일상과 정체성은, 곳곳이 틈으로 균열된 이 세상에서 조화롭게 버티는지 여부에 따라 틈 안과 틈 밖을 들락거린다. 작가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우리는 모두 틈만 나면 (잘) 살고 싶어한다. 우리 대부분 삶을 투쟁하듯 쟁취하며 매일매일 분투하는 소시민이다. 삶을 꼭 혁명처럼 대할 필요는 없지만, 종종 주위를 돌아보며 연대할 필요는 있다. 이 책에 나온 이웃들이 나와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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