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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이스 Jun 12. 2018

말랑말랑한 뉴스의 시대

책  <뉴스의 시대>  Alain de Botton

  오늘만큼 뉴스를 많이, 집중적으로 본 날이 있을까. 말 많고 탈 많았던 북미 정상회담이 드디어 성사됐다. 싱가포르 센토사 섬 주변엔 며칠 전부터 세계 각국에서 온 3000여 명의 기자와 취재진이 몰렸다. 삼엄한 경비와 보안 속에 만난 두 정상은 회담을 한 후 공동 성명에 서명했고, 트럼프 대통령은 단독 기자회견까지 했다. 이들이 주인공인 라이브 뉴스는 대부분 예상 가능한 장면이었지만 간간이 깜짝 이벤트성 클립을 양산하기도 했다. 솔직히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된 방송 뉴스의 화면 구성은 흥미롭지도 않고 서스펜스도 없었다. 찔끔 제공되는 한정된 장면을 반복해 보여주니 지루하기까지 했는데, 이 멋대가리 없는 콘텐츠는 역사적 의의와 정치적 함의를 품고 세계사의 중요한 동영상으로 남을 것이다.  




  우리는 세상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사건 사고와 가치를 뉴스라는 렌즈를 통해 접하고 판단한다. 한반도에서 핵전쟁 위험이 영구히 사라지고 종전 선언까지 갈 수 있다는 엄청난 팩트는, 트럼프와 김정은이 아닌 뉴스가 제시한다. 두 정상이 내 삶과 생명을 좌우할 중요한 결정과 행동을 하지만, 뉴스 속의 그들은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는 상징일 뿐이다. 혹시 모르겠다. 뉴스를 통해서가 아니라 그들을 내 눈으로 직접 보면, 내 삶에 미치는 영향력이 남다르게 느껴질지. 뉴스는 세상의 적나라한 모습을 가장 신속하고 비교적 정확하게 보여주지만, 그럴수록 내가 느끼는 현실감은 점점 희박해진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걸까.


작가 알랭 드 보통


  ‘일상의 철학자’ 알랭 드 보통은 우리가 (종교를 대신해 일상의 가이드가 된) 뉴스의 시대에 살며 그것을 익숙하게 소비하지만, 현명하고 분별력 있게 다루어야 한다고 말한다. 사실 나도 틈만 나면 스마트폰으로 포털을 검색하며 뉴스를 본다. 분별력은 고사하고 엄청난 편식을 하며 마구잡이로 포식한다. 중독까진 아니지만 뉴스를 안 보면 심심하고 가끔 초초해지기도 한다.

 

  현대 사회에서는 공식적인 교육 과정이 끝나면 뉴스가 선생님이 된다. 뉴스는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현상을 만드는 창조자 역할을 한다. 우리는 뉴스가 있는 사실을 그대로 보여준다고 생각하지만, 뉴스는 은연중에 가치 판단을 담고 있다. 뉴스의 1차 생산자인 기자들은 가치중립을 직업윤리로 삼지만, 그들이 제공하는 기사는 취재 허가를 받고 지면과 방송과 포털에 선택받는 과정에서 이미 뉴스 편집자와 발행인, 혹은 방송사 사주와 기업가의 취향 가치를 반영한다.


  해외 뉴스에 나오는 테러 현장이나 전쟁 지역의 참상은 인간의 폐부를 건드리며 공분을 자아내지만, 그 이면은 거의 보여주지 않는다. 자살 테러를 하는 사람들은 다 미치광이고 그들의 종교는 무조건 이단인가. 민족들끼리 내전을 하는 나라에선 인종 청소를 할 수밖에 없는 피맺힌 한이 분명 있을 것이다. 난민의 떼죽음을 묵살하는 유럽엔 비정한 인간들만 사는 게 아닐 것이다. 해외 뉴스의 자극적인 화면은, 현상만 뚝 떼어 보여주고 맥락은 무시하기 일쑤다. 그래서 우리는 단말마적인 화면에 충격받지만 또 금세 잊는다. 그렇다고 뉴스가 르포나 서사문학처럼 한 사건의 맥락을 짚어가며 장대한 해설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전후 사정을 모르는 단편적인 현실은 결코 오래 남지 않는다. 화면이 끔찍할수록 뉴스 현장에 속하지 않은 나의 처지에 안심하며 더 빨리 잊는다. 작가는 이것이 뉴스의 역설이라고 한다. 해외의 재앙 뉴스가 사람들에게 묘한 안도감과 희망을 주는 것은 어느 정도 사실이다.


  오늘 같은 대대적인 정치 이벤트 역시 뜨겁게 소비되다 머지않아 잊힐 것이다. 한반도에 사는 사람들은 간헐적으로 주시할 수 있겠지만, 두 정상이 합의한 내용은 금방 일상에 묻히고, 어렵고 복잡한 비핵화 과정은 전문가들이 알아서 할 거라 여기며 뉴스가 일방적으로 제시하는 로드맵을 따라갈 것이다.

 

  알렝 드 보통은 정치 뉴스를 비판하며 지루하고 당혹스럽다고 한다. 북미 정상회담의 주요 안건인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는 내 목숨이 달린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쉽지 않은 개념에,  실현 과정은 상상이 안 될 정도로 와 닿지 않는다. 말 그대로 지루하고 당혹스럽다. 작가는 '뉴스는 우리를 겁주지 않을 때는 분노하게 하느라 분주하다'라고  했는데, 공감한다. 나 역시 북미 정상회담 뉴스를 쫓으며 회담이 결렬되면 핵전쟁 가능성이 높아질까 걱정하고, 독재자와 독불장군의 기싸움에 분노했다. 물론 내가 단편적이고 무지해서 그럴 수도 있다.




  오늘 한 방송사의 저녁 뉴스에 인상적인 장면이 나왔다. 김정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이 만나기 직전의 모습을 뮤직 비디오처럼 교차 편집한 화면인데, 마치 운명의 연인들이 서로 만나는 분위기로 연출했다. 이 영상의 백미는 자막이다. 두 정상이 탄 전용차가 슬로 모션으로 들어와 각각 멈추고 차 문이 열린다. 그리고 자막 in.  

'문이 열리네요. 그대가 들어오죠.' 배경 음악은 따로 말하지 않겠다. 바로 그 음악이니까.


  알랭 드 보통은 정치 뉴스가 지루하고 당혹스럽다 했지만, 가끔 이렇게 (약 먹고 하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엉뚱하게 말랑말랑하기도 한다. 보도국 누구의 아이디어인지 모르겠지만, 오늘 본 뉴스 화면 중 가장 신선하고 인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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