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로이스 Jun 21. 2018

영국에 앉아 세계를 보는 남자

책 <런던 통신 1931-1935> Bertrand Russell

  시립 도서관에서 예쁜 표지에 끌려 골라든 책은 꽤 두꺼웠다. 저자는 버트런드 러셀. 많이 들어본 이름이지만, 노벨 문학상을 탄 문필가라는 정도로만 알고 있는 작가다. 약속 시간이 한 시간 남짓 남아 시간 때우러 들어간 도서관에서, 책을 읽다 약속에 늦고 말았다. 혹시 절판됐을까 두려워하며, 이 예쁜 표지를 지닌 두꺼운 책을 서둘러 주문해서 완전히 내 것으로 만든 후 다시 읽었다.




  이 책은 러셀이 1931년부터 1935년까지 신문에 기고했던 칼럼을 모은 에세이다. 원 제목은 Mortals and Others. 100년 가까이 살았던 이 석학이 60대 초반에 쓴 글이다. 그는 펜 하나로 광범위한 자신의 지식과 신념을 논리적으로, 위트 있게, 때로는 냉소적으로 펼쳐 보인다. 이 칼럼은 인간과 인간을 둘러싼 세상 거의 모든 것을 다루고 있다. 질투, 섹스와 행복, 노인, 경험, 돈, 전쟁과 평화, 교육, 결혼, 투표, 위대한 국가, 자살, 낙관주의, 채식주의자, 체벌, 점성가들, 범죄 등등. 신기한 건 80년도 더 전에 쓰인 글이 지금 읽어도 위트가 넘치고 수긍이 간다는 것이다. 신문에 기고한 칼럼이어서 당시 시대상을 민감하게 반영한 시사적인 내용이 많지만, 전혀 어색하지 않다. 러셀은 세태를 비판하는 글을 쓰면서, 인간의 속성을 간파하고 세상을  예리한 시선으로 관찰했기에, 세월의 흔적이 방해되지 않은 글을 남길 수 있었을 것이다.


버트런드 러셀


  그의 다른 저서는 읽어보지 못했지만 이 책에서 감지한 버트런드 러셀은 합리적이고 위트 넘치는 냉소주의자다. 글에서 짐작되는 그는 젠틀하지만 까칠하고, 날카롭지만 유머러스하며, 예의 바르지만 비꼬는 걸 멈추지 않는 노신사다. 신문에 기고한 짧은 에세이라서 그런지, 통렬한 세태 비판과 유머러스한 위트가 샴쌍둥이처럼 붙어서 모든 글의 적재적소에 배치되어 있다.

  이 분과 마주 앉아 얘기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내가 비판과 관찰의 대상이 되지 않길 간절히 기도할 것이다. 나 이외에 모든 세상사를 들려주길 간절히 소망하면서 말이다. 그가 백발의 머리를 갸웃하며 주름진 눈으로 나를 뚫어지게 본다면, 내 뇌와 내장이 투명하게 비칠 것 같은 기분으로 내내 안절부절못할지도 모른다. 글이 쓰는 사람의 말투를 반드시 반영하는 건 아니지만 대체로 저자의 사고와 논리를 반영한다면, 그의 글에서 베어 나오는 전방위적 박학다식과 그걸 뿜어내는 스킬은 훔치고 싶을 만큼 매력적이다. 가령 이런 것이다.


 ▷ 학창 시절에 회초리나 채찍으로 매를 맞았던 이들은 거의 한결같이 그 덕에 자신이 더 나은 사람이 되었다고 믿고 있다. 내가 볼 때는 이렇게 믿는 것 자체가 체벌이 끼치는 악영향 중 하나다.


 ▷ 존 록펠러 씨는 재산이 얼마 없는 가정에서 자란 것을 자신에게 내려진 축복 중 하나로 꼽는다고 회고록에서 말하고 있다. 그렇지만 그는 자기 자녀들은 이런 축복을 누리지 못하게 하느라 애써왔다.


 ▷ 자신이 속한 집단에서 사회적인 명성을 확보할 수 있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자신의 가치를 높이는 것이고 두 번째는 나머지 모두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것이다. 한 이웃의, 특히 저명한 이웃의 신용을 떨어뜨리면 자신의 기회는 증가한다. 아무리 신앙이나 박애를 내세운 문구로 덮을 수 있다고 하더라도 이 모두는 분명한 본능이다. 민주주의는 이런 보편적 질투를 사회적 평등이라는 수단으로 다루려는 시도의 하나다.


  이 책에는 이렇게 왠지 시원하고 가끔 피식 웃게 만드는 구절이 끊임없이 나온다. 그의 모든 주장에 동의한다기보다, 이런 식으로 표현하는 방식에 경의를 표하고 싶다. 그는 내가 가장 선호하는 글쓰기 방식인 '위트 있는 냉소'를 여태껏 읽은 그 어떤 작가보다 직접적으로 다양하게 보여준다. 번역한 글이 이 정도니 원문은 장난 아닐 것이다.


  같은 시대를 살지 않은 일면식도 없는 작가의 영혼에 반할 때가 있는데, 버트런드 러셀도 그중 하나다. 다 읽은 이 책을 아무 곳이나 펼쳐 또 읽는 것도 아마 그래서일 것이다. 영국에 앉아 세계를 보았던 작가는 나에게 숙제를 한 아름 안겨주었다. 그의 밝은 눈과 예리한 혀, 날카로운 손이 남긴 글들을 찾아 읽으라는 무언의 압박이 그것이다. 짧은 에세이가 수 백개 담긴 이 책은 한동안 내 책꽂이에 꽂히지 못할 것이다. 책상 한 귀퉁이 아니면 방바닥 어딘가에서 예쁜 표지가 너덜거릴 때까지 내 손때를 묻히며 들춰질 것이기 때문이다. 마르고 닳도록 읽는다 해도 러셀의 뇌를 스캔하지는 못하겠지만, 그의 냉소와 위트에 담긴 지혜는 내 손이 뻗치는 곳에 오래도록 두고 싶다.

매거진의 이전글 축복받은 도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