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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이스 Jun 27. 2018

소멸되지 않는 울분

책 <울분 INDIGNATION> by Philip Roth (2008)

  이 책의 첫 장을 펼치고 첫 문장을 읽자마자 깨달았다. 이 책은 내가 예전에 읽은 책이다! 그리 먼 과거도 아니다. 2년 혹은 3년 전, 시립 도서관에서 빌려 읽었고 이번에도 같은 곳에서 빌렸다. 물론 읽은 책인 줄 모르고 빌린 것이다. 첫 장의 타이틀 '모르핀을 맞고'는 기억나지 않지만, 본문의 첫 문장을 본 순간 드는 아련하지만 선명한 기시감은, 예전엔 이 책이 사람 손이 닿은 게 처음인 듯 빠닥빠닥한 새 책이었다는 것이다. 얇은 책장은 잘못 건드리면 손이 베일 것처럼 도도하고 냉정했다. 지금은 나긋나긋하게 잘 넘어가는 걸로 봐서 사람 손을 제법 탄 것 같다. 당연하다, 필립 로스니까.
  희한한 게 책장을 넘긴 감촉은 선명하지만 내용은 전혀 생각이 안 난다. 읽은 책이라는 건 분명히 알겠는데, 장편 소설 치고는 얄팍한 책의 내용이나 결말이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모르핀'이란 글자에는, 보기만 해도 모르핀을 맞은 듯한 환각에 사로잡히게 하는 뭔가가 있는 게 아닐까. 그렇지 않고서야 이 기이한 기억의 실체를 설명할 길이 없다.


  

  마커스는 뉴저지에서 대대로 코셔 정육점(유대인 율법에 맞는 정결한 고기를 파는 곳)을 하는 집의 외아들로, 대학 입학을 앞두고 있는 성실한 모범생이다.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를 도와 정육점에서 일하며 동물의 피와 살점을 다루고, 까다로운 단골들을 상대하는 동안 아버지와 다른 삶을 살겠다는 일념에 불타오른다. 그리고 한국전쟁으로 목숨을 잃은 사촌들의 전철을 밟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1950년에 발발한 한국전쟁은 미국 청년들을 징집했고, 많은 젊은 목숨이 전장에서 사그라졌다.

  스포일러스러운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이야기는 1950년부터 1952년까지 스무 살 언저리를 살다 간 마커스 매스너의 인생으로, 그가 한반도 전장의 포화 속에서 죽어가며 모르핀을 맞고 회상하는 대학 시절의 일화다.


  마커스는 집에서 가까운 대학으로 진학하지만, 아들이 허망하게 죽을까 봐 강박적으로 집착하고 불안해하는 아버지를 피해 머나먼 오하이오의 와인스버그 대학으로 편입한다. 기독교 전통이 강한 이 대학에서 무신론자이자 유대인인 마커스는 위대한 석학들의 지성과 이론에 빠져드는 한편, 숨 막히는 전통과 종교적 권위에 대항한다. 그는 순진하고 고지식한 젊은이답게 불합리를 참지 못하고 극단적인 개인주의를 고집한다. 결국 고통스러운 룸메이트를 피해 기숙사 방을 두 번이나 옮겼다는 이유로 학과장과 면담한다. 학과장의 점잖지만 권위적인 태도에 발끈한 마커스는 격하게 불만을 토로하며 충돌한다. 그가 학과장과의 입씨름에서 이론적 방패로 내세운 건 버트런드 러셀이다. 러셀의 「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의 구절을 장황하게 인용하며, 학생들에게 졸업의 조건으로 40시간의 의무적인 채플(기독교식 예배)을 강요하는 건 부당한 탄압이라고 거세게 반발한다.


  잠시  얘기를 하면,  부분을 읽을  나의 중학생 시절이 떠올랐다. 내가 다닌 학교는 미션스쿨이었는데, 학생 개인의 종교와 관계없이 전교생이 1주일에 한번 예배를 보고 성경 수업을 들어야 했다. 심지어 기말고사까지 봤다. 어린 마음에, 예배와 성경 수업이야 그렇다 쳐도 정식 교과목도 아닌데 시험까지 봐서 성적에 포함시키는 것은 너무 한다 싶었다. 학급회의 시간에 교회에 다니지 않는 학생에게까지 억지로 성경 수업을 강요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건의했다. 독실한 신자인 담임에게 찍혀 눈총을 받았지만, 나의 건의는 슬그머니 유야무야 됐다. 누가 봐도 말이  되는 커리큘럼이었지만, 철옹성 같은 관례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필립 로스 (1933. 3. 19 ~ 2018. 5. 22)


  마커스는 확고한 신념과 이론으로 학과장에게 대항하지만, 권위적인 학과장은 채플에 참여하기 싫으면 학교에서 나가라는 말로 일축한다. 전형적인 꼰대 스타일이다. 다소 미숙하지만 패기와 근성을 지닌 젊은이를 능숙하게 다루는 조련사 같은 학과장의 대응에 마커스는 구토를 쏟아내며 울분을 터뜨린다. 어쩌려고 저러나 싶을 정도로, 지칠  모르는  고지식한 청년은 자신의 신념과 주장을 조금도 굽히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한국 전쟁) 전장에 끌려 나가는 대신, 1등으로 졸업해 정보 장교로 빠져 후방에서 목숨을 보전할 생각에 여념 없다. 마커스는 순수하지만 영악하고, 세상을 논리와 지성에 기대어 보면서도 세속적인 출세에도 집착한다. 그는 자유주의가 넘실대지만 전쟁의 그늘에 사는 1950년대 미국 청년의 혼돈과 신경질적인 불안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아들에 대한 강박으로 정신 이상이 되어가는 아버지를 마커스는 묘하게 닮아간다. 거침없는 성행위를 하던 여자 친구는 자살을 시도하고, 마커스 때문에 이혼을 포기한 엄마는  대가로 아들의 이성교제를 단속하려 든다. 게다가 기상천외한  룸메이트의 보복까지. 마커스가 울분을 터뜨리지 않는  이상할 정도로 그의 열아홉 살은 격정적이고 숨 가쁘며 아슬아슬하다.


  눈이 오는 어느 ,  엄격한 대학의 남학생들은 집단으로 흥분해 여학생 기숙사를 습격하여 통제 불능인 에너지와 성적 호르몬을 폭발시킨다. 그들이 겁에 질려 도망가는 여학생들을 향해 외친 구호는 '팬티! 팬티! 팬티!'였다. 기껏 여학생들 속옷이나 훔쳐 집어던지며 난동을 부리는 수준이지만, 50년대 기독교계 대학에서는 있을  없는 엄청난 사고다. 청춘은 쉽게 쥐여주니까 함부로 쓴다는 말을 여지없이 증명하는 듯한  일로 인해, 학장을 비롯한 기성세대는 권위적인 명분을 더욱 공고히 했고, 마커스도 이런 학내 분위기에 자유로울  없다. 그의 빛나지만 애처로운 젊음은 결국 낯선 아시아의 전장에서, 스무  생일을   남겨두고 소멸된다. 그는 짧은 생애 내내 전장에서 죽지 않겠다는 일념으로 발버둥 쳤지만, 대학 동기 가운데 유일하게 한반도에서 전사한 불운한 학생이 되었다.


  작가가 맨 마지막에 쓴 문장을 인용해 보면, 매우 평범하고 우연적인, 심지어 희극적인 선택이 끔찍하고 불가해한 경로를 거쳐 생각지도 못했던 엄청난 결과를 초래한 것이다. 순수하게 이기적이고, 굽힐 줄 모르는 신념을 지녔으며, 사랑에 솔직한 만큼 이중적이었던 젊은이가 모르핀에 취해 죽어가며 되돌아본 생은, 순간적으로 빛나는 행복과 기막히게 끔찍한 불운의 연속이었다.



   미숙하지만 가련한 청춘을 그동안 까맣게 잊고 있었다는  신기하다. 어떻게  이야기를 잊을  있었을까. 마커스의 조바심과 울분은 지금  시대의, 그가 사수하기 위해 목숨을 바친 한반도의 청춘과 비교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 그는 한반도라는 구체적인 전장을 떠올리며 살기 위해 몸부림쳤지만,  시대의 청춘들은 일상 자체가 전장인 , 전투하듯 생존하기 때문이다. 어디 청춘만 그런가. 아들이 죽고  , 마커스의 아버지가 무시무시한 상실감 죽음으로 치닿는  보면,  이야기의 울분은 단지 청춘의 울분만은 아닌 듯싶다. 울분 없이 살아가기 힘든 지금의 세상에 마커스가 환생하면 무슨 생각을 할지 궁금하다. 자신이 전사한 한반도에서 남북정상회담이 열린  보면 그는  어떤 말을 할까. 왠지 그가 소설  인물이 아니라, 1952 한반도의 '학살의 '- 산은 미국의 전쟁 역사에 그렇게 알려지게 되었다- 에서 이등병으로 전사한 실존 인물로 느껴진다.    


  얼마 전에 영면한 작가 필립 로스는 극적인 상황에 놓인 청년을 통해, 거대한 역사의 흐름에 휘말리는 개인의 피할 수 없는 생을 거침없이 그려냈다. 그가 창조한 미숙하고 신경질적이며 불운한 청년은 오래전에 죽었지만, 그의 후예들은 어김없이 부활해 실수와 열정을 토해내고 미지의 역사를 기다리며 세상 어딘가에서 조바심 내며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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