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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이스 Jul 06. 2018

메리에겐 뭔가 특별한 ‘사랑스러움’이 있다!

영화 <어메이징 메리 Gifted> (2017)


  아직 어린 조카들이 지금보다 더 어렸을 때, 그 애들은 제 아빠 양손을 맞잡고 발로 아빠 몸통을 타고 올라가 공중에서 한 바퀴 구르는 재주를 부렸다. 별 거 아니지만 내 눈엔 그게 너무 재밌고 신기해 보였다. 아기 원숭이나 새끼곰이 재주부리는 걸 보는 기분이었다. 그런데 영화에서 그런 짓을 똑같이 하는 아이를 봤다. 그 아이는 일곱 살짜리 여자애다. 아빠가 아니라 아빠 같은 삼촌 몸통을 올라타고 논다. 나는 어릴 때 그런 짓을 안 해봐서 모르겠는데, 남자애 여자애 할 거 없이 고만한 애들은 어른 남자와 있으면 다 그러고 노는가 보다. 바닷가 석양을 배경으로 역광으로 찍은 그 장면은 검은 실루엣으로만 보이는데, 몇 년 전 봤던 조카들 모습과 겹치면서 가뜩이나 깜찍하고 사랑스러운 여주인공을 더 흐뭇하게 바라보게 했다.



사랑스러운 메리 & 삼촌 프랭크


  메리는 천재다. 엄마를 닮아 수학에 재능이 뛰어나다. 그냥 뛰어난 정도가 아니라, 들어도 도무지 알 수 없는 기이한 방정식을 풀 정도다. 게다 일곱 살 치고는 드물게 통찰력이 뛰어나고 친구를 배려할 줄도 안다. 좀 시크한 이 꼬마 숙녀는 한적한 바닷가 마을에서 일용직으로 배를 고치는 삼촌 프랭크와 외눈박이 고양이 프레드와 함께 산다. (참고로 메리의 삼촌은 캡틴 아메리카-크리스 에반스-다. 진짜 이 영화가 어메이징 할 수밖에 없는 또 하나의 이유다.) 학교에 들어간 메리는 곧 천재성이 발각(?)된다. 영재학교에 보내야 한다는 담임의 권유에도 프랭크는 메리를 평범하게 키우려 한다.


  메리의 엄마는 미혼모로 메리를 낳고 자살했다. 그녀 역시 수학 천재로 평생, 풀리지 않은 미스터리로 세상에 남아있는 난해한 방정식을 풀다가 떠났다. 프랭크는 메리가 누이처럼 사는 걸 원치 않는다. 그래서 아이를 자신에게 맡기고 죽은 그녀 대신, 메리를 마음껏 뛰어놀게 하며 평범하게 키운다.


천재 소녀 메리


  연락을 끊고 지낸 아이의 외할머니가 나타나면서 이 평화는 깨진다. 그녀 역시 수학계 유명한 인사다. 메리가 엄마를 닮아 천재라는 소문을 듣고, 딸이 풀지 못한 수학적 난제를 메리가 풀 수 있게 교육시키려 한다. 프랭크는 격렬히 반대하고, 이는 곧 양육권 분쟁으로 이어진다.


외할머니와 메리

  

  사실, 이 특별한 아이를 위해서 무엇이 최선인지는 명확히 말하기 어렵다. 천재를 평범하게 키우는 건 재능 낭비고 아이가 진정 원하는 삶인지 알 수 없다. 그렇다고 난제를 풀기 위한 특수 교육에 매진하는 삶 또한 자살한 또 다른 천재의 전철을 밟을 가능성이 있어 위험하다. 이 두 가지를 병행하면 좋겠지만, 세상 일은 그렇게 평화롭게 돌아가지 않는다.


  결국 프랭크는 메리를 위탁 가정으로 보낸다. 그게 아이에게 최선이라고 애써 마음을 다잡지만, 헤어질 때 울며 원망하는 아이의 눈빛을 잊을 수가 없다. 메리가 천재성을 발휘하며 살되, 제 엄마처럼 불행한 삶을 살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그러나 외눈박이 고양이 프레드가 메리와 헤어져 안락사당할 처지에 놓인 걸 안 순간, 아이에게 무슨 일이 있다는 것을 직감한다. 프레드를 구해서 메리를 찾아간 프랭크는 그동안 메리가 외할머니 주도 하에 특별 수업을 받으며 지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난해한 수학 문제를 푸는 메리


  메리는 당연히 삼촌과 지내야 한다. 맥북을 사줄 형편이 안 되고, 금요일 밤엔 집에 여자를 데려와 못 볼 꼴도 보이지만, 누구보다 메리를 아끼고 사랑하기 때문이다. 외할머니는 돈으로 할 수 있는 건 뭐든 해주지만, 메리가 천재가 아니었다면 영영 찾지 않았을 것이다. 삼촌은 메리가 천재든 아니든, 투정을 부리든 말든 한결같이 그녀를 지키고 돌본다. '누가 아이를 키워야 하는가'는 사실 답이 뻔한 문제다. 너무 당연하고 간단한 문젠데, 아이가 천재라는 특수한 상황이 지난한 법정 투쟁과 위탁 가정까지 얽힌 복잡한 해법을 만들어 낸다. 그냥 메리에게 물어보면 간단했을 것이다. 넌 누구와 살고 싶니? 아마 메리는 삼촌과 살면서 할머니한테 선물과 지원을 받고 싶다고 할 것이다. 아이가 원하는 대로 해주면 간단하다. 그런데 이기적인 어른들은 자신의 취향과 목적에 맞지 않으면 절대 가진 것을 내놓으려 하지 않는다. 그리고 아이가 어리다는 이유로(이건 천재인 아이에게도 변함없이 적용된다) 자기 양육권자를 결정하는 일에서 배제시킨다.


프레드와 메리와 프랭크


  마지막에 메리가 흘린 눈물은 삼촌과 외할머니, 법원과 학교, 그리고 세상에 메리를 내보내고 죽은 엄마의 합작품이다. 이제 메리의 눈물을 닦아줄 사람은 아이 스스로 정하게 해야 한다. 메리는 충분히 그럴 능력이 있는 아이다. 남들과 다른 자신의 재능을 어떻게 쓰면서 살아갈지, 성장하면서 스스로 결정하게 기다려주고 존중해 줘야 한다.


  이미 다 커버린 어른들이 자신들은 어린 시절이 없었던 듯 행동하지만 않아도, 사랑스러운 아이들 눈에 흐르는 눈물은 훨씬 줄어들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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