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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이스 Jul 08. 2018

'갑질'의 비굴함

책 <알바생 자르기> 장강명 단편 소설 (2015)


  부끄러운 고백을 하자면, 의식하지 못한 채 은연중에 하는 갑질이 있다. 상담원과의 통화에서 별 것 아닌 일에 언성을 높이거나, 택배가 예정보다 늦어지면 기사에게 한 마디 하고 넘어간다. 그분들께 개인적인 유감은 없지만, 업무 처리에 약간의 유감이 있어도 감추려 하지 않는다. 내 돈이 들어간 서비스는 그에 따른 값어치(이를테면 나의 정신적 만족)가 충족돼야 한다고 여긴다. 친구가 회사의 거지 같은 인간들 때문에 힘들다 하면, 네가 받는 월급에 그들을 견뎌내는 값도 포함되어 있다는 말을 충고랍시고 한다. 어쭙잖고 시건방진 조언이다. 그래도 할 말이 그것뿐이다. 당장 그만둬, 보다는 덜 무책임한 말이니까.




  외국계 회사 영업소의 알바생 성혜미는 뚱한 태도와 근무 태만, 잦은 지각과 병치레로 사무실에서 밉상으로 찍혔다. 최은영 과장은 그녀를 자르라는 사장의 압력을 받는다. 은영 또한 그녀가 못마땅하지만 막상 자르려 하니 내키지 않는다. 소녀가장이고, 수도권인 집에서 힘들게 출퇴근하는 혜미가 안 됐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잘 좀 하라고 충고 하지만, 혜미는 오히려 자기 불만을 얘기하고 개선시켜 줄 것을 요구한다. 능력도 없고 존재감도 없으면서 나아지지 않는 혜미의 근무 태도에 은영은 점점 열 받는다. 결국 사장의 압박에 그녀에게 해고 통보를 한다. 막상 월말이 되자 혜미는 정식으로 해고 통지서를 못 받았다며 오히려 따진다. 30일 전에 해고 통지서를 보내야 하는 규정을 지키지 않은 것이다. 이때부터 은영과 혜미의 대립은 각을 세운다.



  혜미는 자신의 경력 증명서를 수정해 줄 것과 퇴직금까지 요구한다. 알바생이 조목조목 따지며 당차게 요구하는 모습에 은영은 점점 질린다. 결정적으로 혜미는 자신이 회사에 다니는 동안 4대 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건 불법행위라며, 고소하지 않을 테니 그 액수만큼 달라고 한다. 그런 돈은 근거가 남는 회삿돈으로 처리하기 좀 그렇다. 은영은 500만 원까진 자신의 돈으로 처리하고, 그 이상 요구하면 사장에게 말하기로 결심한다. 그녀는 혜미가 대체 얼마를 요구할까, 혹시 1000만 원 이상 부르는 거 아닐까 노심초사하는데, 혜미가 요구한 돈은 고작 150만 원이다. 여기까지 보면, 평범하고 소심한 회사원 은영을 엿 먹이는 알바생의 횡포로 보인다. 은영은 인간적으로 혜미를 딱하게 여기고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동정하고 이해하다 자르는 임무를 맡은 선의의 피해자처럼 보인다. 그녀가 마지막으로 혜미에게 영문 경력증명서를 뽑아주면서 '이게 처음부터 다 계획돼 있었던 거니?' 할 때까진.


  혜미는 그동안 숱하게 취업에 도전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은, 생계를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온갖 불이익과 갑질에 이골이 난 20대다. 떼인 아르바이트비를 받아내고 불의에 저항하는 동안 저절로 회사 사규와 노동법, 아르바이트의 권리에 대해 통달하게 된 고단하고 닳아빠진 청춘이다. 그런 그녀가 정당한 권리를 주장하고 요구하는 것이 보통 사람들 눈엔 을의 반란, 갑을 관계의 전복, 심지어 을의 횡포로 보이는 희한한 매직이 된 것이다. 혜미가 그다지 능력이 없고 사근사근하지 못한 비사교적 인간이라는 것은 어느 정도 객관적 사실이다. 그러나 아파서 근무 시간 중 병원에 다니는 것은 근로자의 정당한 권리다. 원래 하는 일 자체가 직원들 업무 보조라 크게 바쁘고 중요한 것이 없어 능력을 발휘할 여지도 없었다. 잘 웃고 상사의 비위를 맞추는 건 엄밀히 따지면 업무의 일환이 아니다. 해고 이후에 따지는 권리도 법과 규정에 근거한 정당한 요구다. 그녀는 당연한 권리를 당연하게 요구했다는 이유로, 힘은 없지만 교활하고 악의에 찬 을이 된 것이다.


  혜미는 얼마 안 되는 퇴직금으로 인대 수술을 했지만 여전히 발목은 아프고, 주위엔 아무도 없는 막막한 인생이다. 또 어디에서 어떤 갑질을 당할지 가늠조차 못 하는 시한부 근로자인 그녀가 1년 넘게 다닌 회사에서 잘리며 좀 야무진 모습을 보였다고 횡포 운운한다면, 정규직으로 과장까지 오르며 수많은 갑질을 이겨내고 이젠 갑질 하는 위치에 있는 최은영 과장은 대체 어떤 횡포를 하는 것인가. 이 모든 게 계획돼 있었던 거냐는 물음엔, 을 주제에 감히 갑을 엿 먹이냐는 괘씸한 심정과 경멸이 노골적으로 담겨 있다. 을은 자기 권리를 모르거나, 알아도 주장하지 않아야 한다는 전제가 아니라면 결코 할 수 없는 질문이다.



  혜미는 당분간 을의 인생을 살 것이다. 할 수 있는 모든 권리를 주장하고 요구하면서. 은영은 당분간 갑의 인생을 살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위계질서에 의하면 그다지 높지 않은 하위 레벨의 갑으로, 자신도 언제 갑질 당할지 모르는 시한부 갑, 즉 잠재적 을이다. 결국 그들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다 같은 '을'이다. 자기가 갑질하는 줄도 모르고 갑질하는 을과, 노골적인 갑질에 대항하는 데 최적화된 을이라는 차이가 있을 뿐.




 이 소설을 읽고 서글픈 마음이 드는 건, 을의 정점에 있는 혜미의 입장에 동조하면서도 그녀의 대응이 은연중에 영악스럽다고 느꼈다는 것이다. 이런 마음 자체가, 갑도 아니면서 갑질을 야기시키는 잠재적 폭력이 되는 건 아닌지 조심스럽고 두렵다. 보통 사람이라면 잘리는 공포 못지않게,  은영처럼 누굴 잘라야 하는 상황을 괴로워하는 게 인지상정이다. 피할 수 있으면 피하고 싶은데, 본인의 의지와 관계없이 결국 누군가에게 폭력을 휘두를 수밖에 없는 구조적 갑질도 사회적 공포가 된다.


  살면서 피하고 싶은 게 점점 늘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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