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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이스 Jul 03. 2018

이토록 멋진 죽음

책 <Everyman> (2009) Philip Roth


의존, 무력감, 고립, 두려움... 그게 다 아주 무섭고 창피해요. 통증이 있으면 자신을 겁내게 돼요. 그 완전한 이질감이 정말 끔찍해요.


  척추가 병든 노인이 하는 이 말은, 우리에게 서서히 다가오고 있는 혹은 이미 닥친 노년에 대한 적나라한 공포를 드러낸다.

  이 이야기는 노인에 의한, 노인을 위한, 노인의 이야기다. 얼마 전 영면에 든 작가 필립 로스가 70대에 쓴 이 소설은, 어디에나 있을 법한 보통 사람(everyman)이지만, 누구와도 같지 않은 한 남자의 일생을 파노라마처럼 보여준다.



  뉴어크 유대인 집안에서 태어난 주인공은 'Everyman'이라는 보석 가게를 하는 아버지와 어머니, 형과 더불어 평온한 어린 시절을 보낸다. 광고회사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승승장구하며 세 번 결혼하고 세 번 이혼한다. 말년엔 은퇴자 타운의 콘도에서 여유롭게 생활하지만, 그곳 특유의 빈번한 장례식은 늙고 병든 몸을 더욱 지치게 한다. 그는 장례식장에 모인 사람들을 둘러보며 다음에는 그들 가운데 누가 죽어 사라질지 추측해본다. 모두들 한 번쯤은 백 년이 지나면 지금 지구 상에 살아 있는 사람은 한 명도 남아 있지 않을 거라 생각하지만, 그는 이것이 백 년이 아니라 며칠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암살의 표적이 된 사람처럼.


  적나라한 노년의 심리와 질병에 대한 디테일한 묘사는 그 나이에 도달하지 않았더라도 충분히 짐작하고 공감할 수 있게 그려져 있다. 수술대 위에서 심장이 멈춰 무덤에 묻히는 한 남자의 죽음은, 우주 하나를 삼키고 소멸하는 영면인 동시에, 특별할 것 없는 일상적 일과에 불과하다.

  그는 부모님의 보호 아래 지낸 어린 시절을 거쳐, 직장에 들어가고, 결혼과 이혼을 반복하며, 자식들과 반목하고, 외도로 일탈하고, 사회적으로 성공한다. 잘 살았든 못살았든 회한을 가질 수밖에 없는 인생을 돌아보는 노인의 시선은, 의외로 격정적이고 뜨겁다. 예순다섯부터 7년 동안, 그는 매년 병원에 입원한다. 여섯 번의 스텐스 시술과 가슴에 삽입한 심장제세동기는 그의 생명을 꺼지지 않게 지켜주는데, 이 모든 과정은 생을 수시로 전시 체제로 전환시킬 만큼 예고 없이 급박하게 닥친다. 작가는 말한다.


노년은 전투가 아니다. 노년은 대학살이다.



  로스는 일상을 대학살처럼 견디는 노년의 삶을 메스로 자른 듯 예리하게 보여준다. 책에 담긴 노인의 삶은 유머러스하면서도 공포스럽다. 그런데 읽고 있으면 묘하게 안심도 된다. 막연히 상상한 미래의 지옥을 구체적으로 보는 건, 어쩌면 일종의 예방주사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막연한 불행보다 구체적 고통을, 예상못한 서프라이즈보다 반전을 알고 보는 영화를 선호하는 나로서는, 이 예언서가 무척 흥미로웠다. 평균 수명을 누리는 행운은 많은 불행과 고통을 친구처럼 동반한다는, 간과하기 쉬운 평범한 진리를 일깨워주기 때문이다.


  노년을 다룬 영화나 책은 무수히 많다. 대부분 상실과 고통, 후회와 두려움을 얘기한다. 이 소설 또한 예외는 아니다. 그러나 생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작가와 주인공이 서로 격려하고 때론 반목하며, 치열한 노년의 삶을 그려낸 것 같은 느낌은 조금 특별하다. 왠지 작가가 주인공과 격렬하게 싸우다, 기가 죽은 그를 살살 달래 가며 쓴 듯 보인다. 물론 매우 주관적인 나의 시선이다. 심장에 문제가 있는 주인공이 작가의 페르소나처럼 보이진 않는다. 오히려 주인공이 선망하고 질투하지만 이내 그리워하는 그의 형(하위)이 작가의 모습에 가깝다는 (근거는 없는) 생각이 든다. 건강한 체력으로 성공적으로 가정을 꾸리고 왕성한 활동을 하는 노년의 신사 하위는 동생의 죽음을 애통해한다. 작가는 주인공을 묻으며 애통해했을까 아니면 시원해했을까. 작가가 끝내 이름을 지어주지 않은 주인공은 그의 친구였을까 적이었을까. 친구였다면 미운 정 고운 정이 다 든 60년 지기 원수 같은 친구였을 듯 싶다.


필립 로스


  주인공의 이름이 없는 건 그가 에브리맨이기 때문이다. 대단히 성공했지만 딸 뻘인 모델과 외도 후 거짓말을 했고, 아들들에게 평생 인정받지 못했으며, 형을 질투한 보통 인간이다. 심장을 비롯한 모든 게 약해지고 부서지기 쉬운 한 명의 인류를 필립 로스는 참 기가 막히고 서늘하게 소멸시켰다. 그다운 적나라한, 소름끼치게 생생한 엔딩이다.

  온갖 환희와 스산한 고통을 안겨준 후 무덤에 밀어 넣은 주인공과 하늘에서 만나면, 작가가 무슨 얘길 할지 궁금하다. 그의 칼날 같은 소설이 한정되어 있다는 게, 더 이상 새로운 칼날은 나올 수 없다는 사실이, 비범하지 못한 이 에브리맨은 몹시 아쉽고 서글프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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