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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이스 Jul 25. 2018

절망 속 행복한 왕자

책 <옥중기 De Profundis> Oscar Wilde  


  이 책을 집어든 건, 어느 유명 작가가 가방 속에 넣고 다니며 수시로 본다고 했기 때문이다. 그는 작품뿐 아니라 개인사와 사회적 행보도 잘 알려져 있다. 그의 사적인 번뇌와 고통은 짐작할 수 없고 알고 싶지도 않지만, 그 작가가 수시로 찾는다는 글의 정체를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해야겠다는 투지가 생기자 참을 수가 없었다. 신체의 부자유와 절망 속에서 또 다른 작가가 쓴 『옥중기』는 가방에 넣고 다녀도 부담되지 않을 만큼 가볍지만, 유려한 문장은 참회와 원망, 수치와 달관 사이에서 더 숨을 곳이 없는 한 남자의 영혼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오스카 와일드는 뛰어난 재기와 화려한 언변으로 19세기 영국 사교계를 주름잡은 유명인사다. 타고난 천재성을 감추는 겸양 대신, 아름답고 가치 있는 예술을 탐닉하고 드러내는데 일생을 바친 진정한 유미주의자다. 예술적 가치가 뛰어난 그의 작품보다 40대에 동성애적 풍기문란으로 감옥에 간 사생활이 더 유명해진 것은, 그가 너무 일찍 태어난 시대의 사생아이기 때문이라는 설명으로는 부족하다.


오스카 와일드


  그는 산업혁명으로 격변하는 영국 빅토리아 시대를 살며 길지 않은 생 자체를 아름다움에 헌신한 걸어다니는 예술 그 자체였다. 사실, 그의 작품을 많이 접하지 못하고(동화로 읽은 「행복한 왕자」가 그나마 선명하게 기억하는 그의 작품이다) 그에 대해 얘기한다는 게 좀 민망하다.


나는 앞에서 나의 시대의 예술과 문화에 대해서 상징적인 관계에 서 있던 사람이었노라고 말했다. 그러나 나와 같이 이 비참한 감옥 속에 있었던 사람 치고 그처럼 인생의 비밀 그 자체에 대해 상징적인 관계 속에 서 있지 않았던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생의 비밀이라는 것은 고난을 받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모든 것을 그 속에 감출 수가 있는 것이다.


  내가 아는 건, 이 『옥중기』는 그의 생애나 성향과는 좀 동떨어진 글이라는 것이다. 반도덕적이고 비종교적인 그가 기독교적인 참회로 쓴 이 글은, 자신을 추락시킨 세상을 원망하고 질타하기 보다는(이런 감정이 간간이 드러나긴 한다), 슬픔 속에서 자신의 영혼을 달래고 다독이는 자전적 위로문 같다. 더 솔직히 말하면, 보통 사람들은 외면하는 게 도덕적으로 편리하다고 생각한 아름다움과 쾌락을 추구한 대가를 치르면서, 다시 세상으로 돌아와야 하는 입장에서 마음을 다잡고 쓴 참회록 같다. 이 글이야 말로 '삶의 고통이 주는 아름다움'이 아닐까 싶다. 정말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그가 세상 눈치를 보며 동성애라는 사생활을 숨기거나 단념했다면, 풍기문란으로 감옥에 수감되지 않았다면, 모든 부와 명예를 잃고 자유를 침해당하지 않았다면, 인류는 몇 백개나 될지 모르는 그의 수려한 문장들을 잃었을 것이다. 한 비범한 인간의 개인적 사회적 고통이 낳은 유산을 즐기는 듯한 이 말투가 너무 잔인할지도 모르겠다.


이 사회는 나를 받아들일 여지가 없으며 무엇을 나에게 제공해 줄 것도 찾고 있지 않으나, 올바른 자에게나 그렇지 않은 자에게나 똑같은 단비를 내려주는 이 대자연은 나를 숨겨 줄 수 있는 바위의 틈을 지니고 있을 것이며, 정적 속에서 홀로 조용히 눈물을 흘릴 만한 깊숙한 골짜기도 지니고 있을 것이다. 대자연은 내가 어둠 속에서 헤매지 않도록 밤하늘에 별을 매달아 줄 것이고, 그 누구도 나를 쫓아와 상처를 주지 못하도록 바람을 보내 나의 발자국을 지워 줄 것이다.




  1900년에 세상을 떠난 작가는 오직 그가 남긴 글과 그를 알던 사람이 전한 이야기로만 존재한다. 그의 내면을 알아내고 개인적인 궁금증을 푸는 덴 한계가 있다. 그는 그저 영원히 늙지 않는 도리언 그레이고, 고통받는 이들을 위해 자신을 헌신하는 제비의 친구고, 동성애자로 한때 절망 속에 살았던 행복한 왕자다.


  개인적으로 아는 것이 거의 없는 (이미 오래전에 세상을 떠난) 작가에게 이렇게 짠한 연민이 생기면 할 수 있는 일은 딱 한 가지뿐이다. 그가 남긴 글을 읽고 상상하는 것! 그 다음에 결정할 것이다. 나도 그가 잠들어 있는 파리의 페르라세즈 묘지에 가서 뭐라도 남기고 올 것인지 아닌지. 전 세계에 그를 흠모하는 다른 수많은 여인들처럼 말이다.


  이 책을 수시로 들춰본다는 작가가 왜 그러는지, 살짝 이해된다. 그도 종종 세상이란 감옥에서 옥중기를 쓰는 기분으로 글을 쓰는 게 아닐까. 동성애는 아니지만 그에 못지않은 억압적인 금기의 잣대와 선입견으로 비난과 눈총을 받으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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