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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이스 Aug 02. 2018

웃는 남자 VS 웃는 남자

뮤지컬 <웃는 남자> 예술의 전당 오페라 극장 (8월 1일 3시 공연)

드디어 보았다! 무더위를 뚫고 평일 오후 3시에 찾아간 예술의 전당 오페라 극장. 찢어진 입을 형상화한 무대는 장엄하고 깊고 어두웠다. 이미 책으로 읽어 알고 있는 이 무겁고 아름다운 비극을 그래도 조바심 내며 기다렸다.


일단 원작 소설 스토리를 80% 이상 살려서 각색한 것에 경이를 표한다. 방대한 분량과 묵중한 메시지를 온전히 담아내기 쉽지 않았을 텐데, (어쩔 수 없는 비약과 생략이 있긴 하지만) 무대에서 소설이 다른 형태로 재현되는 것을 목격할 수 있어서 기뻤다. 그윈플레인으로 빙의한 박효신 배우와 조시언을 연기한 정선아 배우, 데아를 보여준 민경아 배우와 그 밖의 모든 배우들이 내가 글자로 읽은 인물들에 생명을 불어넣는 열연으로 원작의 감동을 훼손시키지 않았을 뿐 아니라, 뮤지컬에서만 맛볼 수 있는 색다른 기쁨과 감동을 만끽할 수 있어서 좋았다.  


공연을 보기 직전에 책을 읽은 터라, 아무래도 비교할 수밖에 없다. 어느 한쪽이 좋다 나쁘다를 떠나 장르의 특성을 고려한 차이점을 이야기하는 게 그나마 내가 할 수 일인 듯 싶다.


2018. 08. 01. pm 3:00  공연 캐스트


소설 웃는 남자 vs 뮤지컬 웃는 남자


① 늑대 '호모'의 부재

이럴 줄 알았다. 짐작하고 있었지만, 막상 확인하니 섭섭하다. 소설에 나온 호모(늑대)는 무대에서 볼 수 없다. 이 말 없는 짐승은 그윈플레인과 데아 커플 못지않은, 철학자 우르수스의 단짝이자 영혼의 동반자다. 그윈플레인과 데아와 더불어 우르수스의 그린박스(간이 오두막집)의 식구다. 소설에서 그는 적재적소에 중요한 임무를 수행한다. 마지막에 그윈플레인을 데아에게 인도한 것도 호모다. 늑대한테 이런 감정을 느낄 줄 몰랐는데, 그가 없어서 무척 아쉬웠다.  


② 데이비드 더리모어 경의 변신

조시언의 정혼자이자 귀족의 사생아인 더리모어 경은 '톰짐잭'이란 가명으로 그윈플레인 일행에게 접근하는 변장한 귀족이다. 「정복된 카오스」 공연을 조시언에게 소개한 것도 그다. 그는 한량이고 바람둥이인 전형적인 날라리 귀족이지만, (다른 귀족들에 비해) 그다지 사악하진 않다. 나중에 그윈플레인이 퍼메인 클랜찰리 경으로 밝혀진 후, 같은 어머니를 가진 형제로 커밍아웃하기도 한다.

 

뮤지컬에서 데이비드는 귀족의 적자 그윈플레인을 어릴 때 납치해 콤프라치코스(인신매매단)에 팔아넘긴 사악한 비밀을 가진 인물로 나온다. 그것도 모자라 데아를 범하려 한다. 그의 캐릭터를 굳이 이렇게 변형시켜야 했을까 싶다. 등장인물 간의 긴밀한 갈등 구조를 위해 원작에도 없는 설정을 끼워 넣은 것 같은데, 그런 악인이 벌을 받거나 대가를 치르는 게 없어서인지 별로 큰 효과는 없는 듯싶다. 그윈플레인과 대척점에서 갈등을 증폭시키는 인물이긴 하지만, 어차피 그윈플레인 상대는 잉글랜드 여왕과 귀족 전체이기 때문에 그의 악행은 살짝 김이 빠져 보인다. 원작을 알고 있어서 그런 것일 수도 있다. 그가 그윈플레인과 맞짱뜰만 한 크고 매력적인 캐릭터로 보이지 않는 것은 배우의 문제가 아니라, 구축해 놓은 캐릭터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가 왜 '톰짐잭'이란 이름으로 그윈플레인 무리를 알고 있는지도 설명이 생략되어 있다.


③ 원숙해진(?) 조시언

소설 속 조시언은 스물세 살의 육감적인 몸을 가진 처녀로 묘사되어 있다. 앤 여왕의 이복동생으로, 늙은 여왕은 조시언의 젊음을 질투하며 '사생아년'이란 비아냥을 감추지 않는다. 조시언은 자신의 처녀성과 젊은 육체를 어떻게 써먹어야 할지 공들여 모색하는 팜므파탈이자, 그윈플레인을 유혹할 땐 자기 입으로 '미친 여자'라고 할 정도로 적극적인 여자다.


뮤지컬에서의 조시아나 공작부인은 조시언 보다 나이가 많고 좀 더 노련한 느낌이다. 따분한 귀족 생활의 활력소로 그윈플레인을 유혹하고 정복하려는 건 소설과 같다. 그녀가 귀족이 된 그윈플레인이 상원 의회에서 하는 연설을 듣고 뭔가 회개하는 듯한 제스처를 하는데, 원작에선 이런 개과천선(?)은 꿈도 꿀 수 없는 일이다. 아예 귀족회의에 참석하지도 않는다. 참고로 소설 속에선 앤 여왕도 상원 의회에 참석하지 않는다. 하지만 무대에서 의회에 참석한 여왕의 자태는 굉장한 비주얼과 반대급부로 희화된 캐릭터가 매우 인상적이다.


④ 와펀테이크의 정체와 역할

뮤지컬만 보면, 그윈플레인을 감옥으로 끌고 가는 검은 옷의 사제 무리 같은 와펀테이크를 정확히 인지하기가 쉽지 않다. 그들은 잉글랜드 경찰로 아이언웨폰이라는 무기를 들고 다닌다. 그 무기에 닿은 사람들은 그들의 명령에 무조건 복종하고, 법의 준엄한 손길을 기다려야 한다. 당시 귀족들이 서민들을 다스리고 군림하는 방편으로 와펀테이크의 무시무시한 이미지와 무력을 이용하는데, 이런 점이 무대에서 충분히 보이지 않아 아쉬웠다. 와펀테이크에 대한 설명이 약간 있었지만 너무 순식간에 지나가 정신이 없었다.  

 

⑤ 그윈플레인과 조시언의 접촉

소설에선 그윈플레인이 조시언의 (몰래 만나자는) 쪽지를 받고 갈등하다 태워버린다. 그는 데아를 제외하고 처음 보는 성숙한 여자이자 찬란하게 꾸민 아름다운 귀족 여인, 자신의 얼굴을 빤히 보고도 사랑한다고 고백한 그녀에게 잠시 흔들리지만 이내 놓았던 정신줄을 바로 잡는다.


뮤지컬에선 그윈플레인이 조시언을 찾아간다. 작정한 여인의 무지막지한 유혹에 혼이 쏙 빠졌다가 간신히 뿌리친다. 원작보다 조시언은 욕정이 넘치고, 그윈플레인은 어리바리하게 보인다. 그래서인지 웃음이 터져 나오기도 했다.


뮤지컬 '웃는 남자'


⑥ 데아의 캐릭터

데아는 매우 희귀한 천성을 가지고 있다. 몸은 부서지기 쉬웠으나, 가슴은 그렇지 않았다. 그녀의 존재 저변에 있는 것은 사랑의 신성한 확고부동함이다. 그윈플레인은 그녀에게 구원자이자 안내자이고, 오빠이자 미래의 남편이다. 여공작 조시언이 그들의 공연에 다녀가자 데아는 흔들리는 그윈플레인의 마음을 감지하고 불안해한다. 하지만 노골적으로 내색하지 않는다. 데아는 세상을 볼 수 없지만, 영혼의 빛을 볼 수 있는 심미안을 가지고 있다. 데아는 질투 하거나 투정하는 여자가 아니다. 발랄하고 명랑한 십 대 소녀는 더군다나 아니다.

   

무대 위 데아는 좀 더 명랑하고 발랄하다. 십 대 소녀 같고 좀 더 인간적이라고 할까. 여공작이 공연을 보고 간 것을 듣고, 이제 화려한 궁전에서 공연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며 좋아한다. 무도회, 드레스를 꿈꾸며. 곧이어 조시언에게 흔들리는 그윈플레인을 느끼면서 불안해하지만, 앞서 궁전과 무도회와 드레스를 들먹이며 발랄하게 노래하는 모습에선 왠지 데아가 아닌 평범함 동네 처녀 같았다.


⑦ 선량해진(?) 페드로

소설 속 바킬페드로는 무대에서 페드로라는 이름으로 바뀌어 등장한다. 원작에서 그는 기회를 엿보는 간교한 인물이다. 조시언을 이용해 해군성의 직책(바다에서 떠밀려온 병을 주워 봉인된 메시지를 취합하는 일)을 맡은 것도 미래를 도모하기 위한 계략의 일부다. 그는 누구보다 유연한 척추로 굽실대며 귀족과 여왕의 비위를 맞추지만, 속으론 그들을 몰락시킬 꿍꿍이에 찬 뼛속까지 냉혹한 인물이다. 특히 자신을 거두어준 조시언에 대한 적의는 사무칠 정도다. 그는 그녀의 값싼 동정에 모멸감을 느끼며 '증오와 노기와 침묵과 원한으로 벽을 바른, 조시언이라는 연료를 기다리는 도가니였다'라고 묘사되어 있다. 심지어 그가 조시언을 연모해서 저주한다는 뉘앙스마저 풍긴다.  


이 끔찍한 인물이 개명(?)하더니 무대에서는 악의 기운을 죽 뺀 채 등장한다. 그의 역할과 비중이 축소되는 대신, 그가 본래 지니고 있던 계략의 일부를 데이비드 더리모어 경이 조금 나누어 가진 듯하다.

소설에서 바킬페드로는, 그윈플레인이 여왕에게 하사 받은 돈 2000기니 중 10기니만 우르수스에게 전한다. 나머지는 자신이 꿀꺽한다. 무대 위 페드로는 정직하게, 그윈플레인을 대신해 2000 금화를 모두 우르수스에게 넘긴다. 이 분, 원작보다 선량해지셨고 심지어 코믹하기까지 하시다.


⑧ 명랑 발랄해진(?) 그윈플레인

'반은 괴물이야. 그러나 반은 신이야.' 소설 속 우르수스가 그윈플레인을 보고 한 말이다.

'그는 구원자가 개입해 복잡해진 숙명의 산물이다. 불운이 그에게 손가락을 올려놓았는데, 행운도 그렇게 했다. 그에게는 저주가 내렸고, 또한 축복이 내렸다. 그는 저주받았으되 선택된 자였다.'


내가 읽은 그윈플레인은 정의롭지만 어둡고, 잔혹하지만 아름답다. 우르수스의 아들로 살 때나 귀족이 되어서나 한껏 즐거워하고 생을 즐긴다는 느낌은 한 번도 없었다. 심지어 데아를 대할 때도, 그녀의 사랑에 압도될 망정 기쁨에 마냥 들뜨지 않는다.


무대 위 그윈플레인은 좀 더 당차고 반항적이다. 아버지에게 할 말을 하고 자신의 처지에 울분을 갖는다. 귀족이 되어 아침에 윈저성에서 깨어날 때, 침대에서 뛰며 흥분하는 건 책에서 만난 웃는 남자와는 사뭇 다른 느낌이었다. 비천한 신분에서 세상을 다 가진 귀족이 된 그가 그러는 것이 어색하진 않다. 하지만 원작 속 웃는 남자의 다크한 매력이 사라진 것 같아 조금 아쉽긴 했다.


⑨ 그윈플레인과 데아의 관계

'그윈플레인과 데아는 한 쌍이었고, 두 비장한 가슴은 서로를 열렬히 사랑했다. 둥지 하나와 새 두 마리, 그것이 바로 그들의 역사였다. 그들은, 서로에게 기쁨을 주고, 서로를 찾아 나서며, 서로 만나는, 범우주적 법칙 속으로, 자신들의 역할을 수행하려고 복귀했다. 결국 증오가 착각한 것이다. 그윈플레인을 박해하던 이들은, 그들이 어떠한 사람들이건, 그 불가사의한 악착스러움이 어디에서 왔건, 목표물을 명중시키지 못했다. 절망한 사람을 만들려 했지만, 황홀경에 들어간 사람을 만들고야 말았다. 치유 효능을 가진 상처가 그를 미리 약혼시켜 놓은 것이다.'


빅토르 위고가 묘사한 두 사람은 이런 관계다. 나 또한 작가가 반복해서 주입하는 이런 묘사와 분위기에 흠뻑 젖어 책을 읽었다. 무대 위 그들의 관계도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글자가 아니라 살아 숨 쉬고 노래하는 그들은 책 속에서보다 더 인간적이고 세속적인 연인의 모습을 보여준다. 책에선 둘의 스킨십이 거의 없다. 아기 때부터 한 침대에서 잤던(커서는 따로 잔다) 그들은 연인보다 남매에 가까운 모습을 보여준다. 마음속에선 서로를 이성으로 사랑하지만, 데아가 아직 어려서인지 그들의 관계는 거의 진도가 나가지 않는다. 기껏 한 찻잔으로 둘이 같이 차를 마시고, 공연할 때 데아가 그윈플레인 머리 위에 손을 얹는 게 애정표현의 전부다.


⑩ 숨 막히게 아름다운 엔딩

먼 길을 돌아 어렵게 데아를 찾아온 그윈플레인 앞에서 데아는 빛이 보인다고 한 후 숨을 거둔다. 그도 그녀를 따라 바다에 투신한다. 먹먹한 마지막 문장들은 너무 슬프고 잔인할 정도로 아름답다.


무대 위에선 죽은 데아를 안고 그윈플레인이 아름답게 명멸한다. 죽는 게 아니라 데아와 함께 하늘의 별이 되는 듯한 몽환적인 환상에 빠지게 하는 장면이다. 이 슬픈 장면은 숨이 막힐 정도로 아름답다. 잔인한 생을 마치고 그들의 영혼이 마침내 하나가 되는 장면을 눈 앞에서 볼 수 있어서 황홀했다.




찬란하고 잔인하고 아름다운 공연이었다. 압도적인 무대 장치는 파도에 휩쓸린 난파선과 눈보라를 헤매는 어린 영혼을 탁월하게 보여준다. 귀족 파티와 가난한 서민들의 길바닥 공연은 무리 없이 재연되었고, '찢어진 입'을 형상화한 상원 의회 세트는 정말 압권이다. 2막이 시작되는 여공작 조시언과 그윈플레인이 만나는 배경에 공작 깃털로 장식된 세트는,이건 무슨 농담이지 싶었다.


거침없고 유려한 넘버들은 좋았지만, 데이비드가 데아를 유혹하며 '맛을 보면 중독되게 되지~’ 하는 가사는 좀 아니지 싶다. 한정된 시간에 전달할 내용이 많다 보니 노골적이고 직선적인 대사와 가사가 많긴 하다. 박효신 배우가 열창하는 넘버들은 끝날 때마다 기립 박수를 치고 싶을 만큼 장엄하고 폐부를 찌르는 감동 그 자체다. 무대 한쪽을 묵묵히 지키면서 그윈플레인의 비극적인 인생 여정을 대변한 바이올린 연주도 잊을 수 없다.


가장 비극적인 생을 가장 찬란하고 아름답게 승화시킨 이 콘텐츠가 전하는 '부자들의 낙원은 가난한 자들의 지옥으로 만들어진다'는 궁극적 메시지는 너무 빈번하게 나와 오히려 그 진정성이 떨어지는 면이 있지만, 이 서사가 탄생된 계기이자 우리가 이 이야기를 소비하는 이유라 생각한다.


절대 잊을 수 없는 ‘생의 비극이 주는 아름다움’을 엿본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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