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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이스 Aug 20. 2018

명품에서 명작으로-포르테 디 콰트로

[L클래식 페스티벌] 포르테 디 콰트로 & 지용 (롯데 콘서트홀)

  나의 본진 Forte di Quattro를 만나러 가는 길엔 폭염이 좀 누그러져 제법 선선한 바람이 불었다. 낮엔 태양이 작열하지만 공연 전 야외에서 석촌 호수를 바라보는 일이 그리 고통스럽진 않았다. 그러고 보니 이곳은 4개월 만이다. 지난봄, 테너 김현수 군의 단독 콘서트 이후 처음이다. 커다란 무대에서 CD를 씹어 삼킨 듯 노래하며 홀로 아름다움을 뿜어내던 그를 봤던 게 엊그제 같은데 그새 계절이 또 바뀌려 한다.  


  1부와 2부로 나뉜 공연은 오케스트라만 공유할 뿐, 두 팀의 아티스트들 사이엔 어떤 교류도 없었다. 뭐, 별다른 걸 기대했던 건 아니라 서로 안 친한가 보다 하며 그러려니 했다.   


노다메 오케스트라 라이브 CD


  코리아 쿱 오케스트라(Korea Coop Orchestra)와 협연한 피아니스트 지용의 무대는 매우 아름다웠다. 클래식 문외한인 내가 듣기에도 흥미를 가질만한 대중적인(?) 선곡 덕분에 긴 연주를 즐길 수 있었다. 거슈윈(Gershwin)의 랩소디 인 블루(Rhapsody in Blue)는 12년 전에 사서 한때 열심히 들었던 CD「노다메 오케스트라 라이브」의 삽입곡이라 귀에 익었다. 워낙 유명한 곡이라 클래식을 즐기지 않는 사람에게도 낯설지 않은 곡일 테지만. 난 클래식 무식자이지만 (거의 유일하게) 멜로디를 외우고 있는 곡이라 오히려 집중이 덜 됐다. 그래서 곡이 흐르는 동안 무대 위 오케스트라 단원들을 셌다. 예매를 늦게 해 2층에 있어서 개미처럼 작게 보이는 단원들을 세는 게 쉽지 않았다. 열 번 정도 센 것 같은데, 셀 때마다 조금씩 차이가 나지만 지휘자 빼고 66명이 가장 많이 나왔다. 진짜 66명이 맞는지 확인하고 싶어 미치겠다.


  솔직히 피아니스트 공연을 콘서트 홀에서 보는 건 처음이다. 아마 포디콰 아니었으면 이런 아름다운 피아니스트의 연주를 들을 기회가 없었을 것이다. 종종 이 연주자의 공연 동영상을 찾아볼 것 같다. 왠지 그의 공연장도 찾을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오늘은 너무 짧아서 아쉬웠다. 아름다운 것은 늘 그렇듯 순식간에 사라진다.    


  지난달 토크 콘서트 이후 한 달 만에 본 네 남자는 일단 별 탈 없이 여름을 잘 보낸 듯 건강해 보였다. 태진 군 말마따나 음악으로 감동을 주지 않는 팀(?), 말로 감동을 주는 팀답게 오늘도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과 이하를 넘나드는 토크 신공을 선보였다. 대기실에서 이번 달 전기세 얼마 나올 거 같냐고 걱정하다 무대로 나온 그들은 미친 화음으로 '오디세아'를 들려주며 포문을 열었다. 왜 이 노래는 아무리 들어도 질리지 않을까. 370번쯤 들은 것 같은데 들을수록 더 황홀해진다. 뭐 그들의 다른 노래도 마찬가지지만.  


  파마를 해 컬이 살아있는 남자가 된 현수 군은 컬을 보존하기 위해 컨디셔너도 안 쓰고 비누로 머리를 감는다고 한다. 마음 같아선 비누 300개 사주고 싶다. 돈 좀 벌어서 드디어 반지하에서 탈출한다는 벼리 군에겐 진심으로 축하의 박수를 쳐줬다. 기특한 젊은이 같으니라고.  


  '단 한 사람'은 내가 간 포디콰 공연에서 한 번도 라이브로 들을 수 없었는데 드디어 오늘 들었다. 전체적으로 오케스트라 반주 소리가 좀 크다고 느껴졌고, 상대적으로 노랫소리가 울리게 들렸다. 음향에 문제가 있었던 게 아닌가 싶다. 포디콰 화음의 웅장함을 더 깊게 느끼고 싶었던 사람들은 살짝 실망했을 수도 있다. 오늘도 그들의 음성은 폐부를 찔렀지만 내 몸은 더 극한의 화음을 원한다. 그들이 무대에서 노래하는 모습을 볼 때 내 뇌의 MRI를 찍어보면 굉장히 광범위한 부위가 활성화되지 않을까 싶다.


  포디콰의 맏형은 9월에 하는 콘서트 홍보를 깨알같이 했다. 부산도 그리 멀지 않다며 수도권과 서울 팬들을 독려한다. 마음 같아선 이 형아가 더 이상 신경 쓰지 않게 부산이건 서울이건 남은 좌석 싹쓸이해서 누군가에게 나눠주고 싶다. (물론 나는 16일 콘서트 티켓을 예매했다. ㅎㅎ) 자신이 출연하는 뮤지컬 홍보도 빠뜨리지 않고 집요하게 하는 이 남자. (당근 두 편 다 볼 예정이다.) 다른 남자가 이런 식으로 질척댔으면 주먹 날리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형아는 이렇게 질척대는데도 상큼하다. 정말 이런 남잔 처음이다!



  태진 군 말처럼, 노래와 그 사이 멘트의 갭이 큰 이들은 진정한 '크로스오버'를 몸소 실천하는 팀이다. 만일 이들의 멘트를 활자화해서 본다면, 텍스트의 맥락 없음과 엉뚱함에 혀를 내두를 것이다. 예를 들어 '아베마리아'를 부르기 전에 이들이 하는 토크의 문장 당 키워드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아베마리아→ 천국의 계단→ 박효신→ 9월 8일 포디콰 부산 공연. 긴 대화도 아니다. 아주 짧은 시간에 이런 식으로 극단적으로 화제를 바꾸면서 대화를 이어간다. 맥락이 사라지고 예측 불가능한 의식의 흐름만 도드라지는 토크를 시전 하는 이들은 어쩌면 상식과 편견에 개의치 않는 언어의 귀재들인지도 모른다. (난 왜 이 글을 쓰면서 혼자 피식피식 웃고 있는 것일까.)


  앙코르곡으로 'Il Libro Dell'Amore'를 부르며 이들이 양쪽 사이드 객석을 향해 한 행동은.... 심장 어택하기에 충분했다. 공연을 함께 한 사람들은 느꼈을 것이다. 이 멋진 남자들의 깜찍한 재롱(?)에 마음이 환해지는 것을. 이건 글로 쓸 수 없다. 그냥 내 눈을 통해 뇌에 각인된 장면을 되새기며 흘러나오는 미소를 감추지 못해 질질 흘리는 수밖에.


  늘 그렇지만 네 남자와의 만남은 너무 짧고 아쉽다. 특히 오늘은 다른 아티스트와 나누어 가진 무대라 더욱 짧게 느껴졌다. 9월 콘서트에서 색다른 모습을 보여주려 일부러 뭔가를 숨겨놓은 듯한데, 미처 숨겨지지 않고 삐져나온 네 남자의 매력은 익숙하면서도 유쾌하다. 형아는 간간이 뮤지컬로 보겠지만, 포디콰 완전체는 9월이 돼야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때까지 현수 군의 컬이 살아있길 바란다. 개인적으로 그가 '아베마리아'를 부를 때 몸을 살짝 흔드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그도 자기가 몸을 흔든다는 걸 느꼈는지 모르겠지만.)


  서늘한 가을 저녁, 그들이 멋진 슈트발을 뽐내며 무대 위에 우뚝 서서 뿜어낼 화음이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숨 쉬고 걸어다니는 명품들, 그들이 빚어내는 명작은 또 어떤 보물일지..


2층이라 사정없이 줌인해서 ‘지못미’가 된 포디콰. 조명때문에 스머프처럼 보이지만 그들의 수트는 그레이 계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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