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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이스 Aug 29. 2018

편애는 나의 힘!

뮤지컬 <록키호러쇼> (2018.08 28. 홍익대학교 아트센터)

  억수같이 내리는 비도 우리를 막진 못했다. 그를 보겠다는 일념으로 폭우를 뚫고 공연장에 도착했는데, 공연 중 실내에서도 비가 내렸다. 객석 위로 내리는 비는 알아서 피하라고 나눠준 신문으로 살짝 막았다. 일명 「MAGAZIN ROCKY」. 안 막아도 그만일 정도로 간지럽게 내렸지만, 이미 밖에서 충분히 맞고 온 터라 옷이 젖으면 곤란할 것 같아서 막는 시늉만 했다. 사실 마구 뿌려대도 그러려니 하고 맞았을 것이다.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너무나 유명한 컬트 뮤지컬 <록키호러쇼 ROCKY HORROR SHOW>는 설명이 필요 없는, 안 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보는 사람은 없다는 마니아 취향저격 뮤지컬이다. 나와 친구는 처음 봤다. 그리고 왜 이 뮤지컬에 맛 들이면 자꾸 볼 수밖에 없는지, 그 명백한 이유 때문에 잠시 가출한 정신을 소환해야 했다. 환상적이지만 세속적이고, 신비하면서도 익숙한 B급 아우라가 폴폴 풍기는 이 키치의 향연은 일단 처음 본 나의 오감을 만족시켰다.  


2018.08.28. 캐스트


  가터벨트와 코르셋의 절묘한 하모니, 망사 스타킹과 하이힐의 깜찍한 도발은 야하다기 보단 익살스러웠고, 자웅동체인 프랑큰 퍼터는 개념 상실한 코미디언 같았다.(사실 그는 도덕적 개념이 전혀 없는 외계인이라고 배역 설명에 나와있다) 작품 의도와는 별도로 개인적인 느낌과 해석이지만, 19금 치고는 적절한(?) 수위에 민망함과 아슬아슬함을 웃음과 엉뚱함으로 트랜스퍼한 대사와 연기는 왠지 기특하기까지 했다. 프랑큰 퍼터는 물론이고 자넷과 브래드, 리프라프와 록키까지 (예매할 때) 나름 정성 들여 선택한 캐스트라 어떤 배역 하나 마음에 걸리는 것 없이 유쾌한 공연이었다.  


  다만, 나와 친구의 편애 대상인 리프라프 고훈정 배우가 생각보다 자주 등장해 좋았고, 생각보다 노래를 많이 들을 수 없어서 아쉬웠다. 대신 그의 파워 넘치는 춤은 실컷 봤다. 이 양반, 포르테 디 콰트로의 무대에서 슈트 차림으로 노래하는 단아한 자태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초록색 모발을 흩날리며 음산한 악동처럼 노신다.


리프라프


  물론 우린 <마마 돈 크라이>의 훈 백작을 잊지 않고 있다. 고뇌하는 뱀파이어의 카리스마, 도가니가 걱정될 정도로 커튼콜마다 계단을 훌쩍 점프해주시는 역동성, 세라 춤을 추는 요염한 자태까지. 근데 리프라프는 또 다르다. 그나마 익숙한, 자리에서 일어서라는 명령엔 넵~하며 발딱 일어섰다. 시종일관 복근이 충만한 배를 드러내 놓으시고 그 단아한 몸을 어찌나 격렬히 움직이시는지.  


  그를 눈으로 좇으며 대사 없이 무대 한 구석에 서있을 땐 뭐하나 유심히 봤다. 주로 여동생 마젠타와 붙어있는데, 일단 둘은 작정한 듯 삐딱하게 군다. 그리고 종종 자넷과 브래드에게 깐족거린다. 잠시도 가만히 있지 않고 날다람쥐처럼 여기저기 다니며 뭔가를 하고 있다. 리프라프는 프랑큰에게 채찍으로 처맞고 쓰러지기도 한다. 뜬금없이 록키를 채찍질하며 지나갈 땐 두 남자의 합에 웃음이 터졌다. 엽기적인 리프라프와 마젠타 남매는 절대 웃지 않지만, 그들을 보고 있으면 은근히 웃기다. 사실 이 극은 보면서 소리 내어 웃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공연이다.       


포디콰 형아의 변신. 원래 이런 거 하는 형아인데 포르테디콰트로의 모습이 파격 변신인지도 모르겠다.


  마지막 시퀀스에 등장인물 모두가 가터벨트를 장착하고 나올 때, 설마 리프라프도? 하면서 살짝 긴장했다. 내 마음은 두 갈래로 갈라졌다. 가터벨트 한 리프라프를 보고 싶기도 하고, 그것만은 제발~ 하면서 안 보고 싶기도 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리프라프와 마젠타는 우주복 같은 요상한 의상에 레이저 총을 들고 머리에 뿔 같은 걸 장착한 채 나왔다. (그걸 헤어 디자인이라고 해야 할지 잠시 고민스러웠지만, 그냥 뿔인 걸로!) 아, 이 남매 진짜 엽기 발랄하게 귀엽다. 표정은 못돼 처먹은 중학생 같은데 하는 짓은 미친 초등학생 같다. 연기하는 그들도 보는 사람들도, 우리는 모두 살짝 맛이 간 키덜트가 될 수밖에 없었다.  


  누구나 꿈꿔왔던 일탈, 섹시한 반란의 시작, 모든 억압에서 벗어나 해방과 자유를 느끼라고 이 뮤지컬은 외친다. 신나고 유쾌한 시간은 더없이 즐거웠지만 한편으론 아쉽고 서글프기도 했다. 즐거움은 순식간에 끝나고, 짜릿한 해방과 일탈은 현실과의 낙차를 더 크게 한다. 객석에 내리는 비는 맞아도 그만이지만, 공연장 밖의 비는 지겹다. 파티가 끝나면 허하고, 빈 객석은 휑할 것이다.  


  한 배우에 대한 편애가 아니었다면 이 공연을 패싱 했을지도 모른다. 그 사람 덕분에 다양한 무대를 찾게 되고, 다른 배우의 매력도 알게 됐다. 편애가 만든 파장은 나와 친구의 내연과 외연을 확장시켰다. 우리의 편향된 취향과 감각은 한 배우로 인해 넓어지고 깊어지고 변하고 전복된다. 그의 힘이 어디까지, 언제까지 우리에게 영향력을 행사할지 모르겠지만, 폭염과 폭우를 뚫을 정도로 강하고 뜨거운 것만은 분명하다.


  아름다운 배우, 아름다운 무대, 아름다운 시간은 끝남과 동시에 아쉬움이 되었지만, 한 사람을 편애하는 동안 그의 다른 무대를 찾아다니며 우리는 이 '아름다운 아쉬움'에 점점 익숙해질 것이다.      


PS. 현실에서 리프라프를 만난다면... (누구는 집에 데려간다고 했지만, 그러기엔 좀 음산하다.) 난 일단 탄수화물을 먹일 것이다. 그의 취향을 존중한 메뉴로. 그리고 한 시간 정도 춤추라고 할 것이다. 그런 다음에 노래도 한 시간 정도 시킬 것이다. 비위 맞춰주며 잘 데리고 놀다가 그가 슬슬 지친 기색을 보이면, 쿨하게 너네 별로 가라고 할 것이다. 트랜스섹슈얼 행성 그곳으로. 다음 시즌에 돌아오면 그때 또 보면 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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