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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이스 Aug 03. 2018

세상에 쉬운 남자는 없다!

영화 <거꾸로 가는 남자> (2018)

몸에 제모를 한다. 다리가 드러나는 정장으로 몸매를 드러낸다. 술집에선 반나체로 이성 앞에서 봉댄스를 춘다. 부르카를 착용하면 식당에서 거부당하기도 한다. 배우자가 축구 경기를 볼 동안 쿠키를 구우며 친구와 수다 떤다. 생체 시계가 째깍대는 이상, 애를 원하지 않는 이성친구와 미련 없이 헤어진다. 거만하고 우월주의에 빠진 상사에게 상냥한 미소로 차를 갖다 준다. 애인이 자신을 진지한 파트너가 아닌 사냥감으로 대한 걸 알고 분개하여 깽판 친다. 배우자의 외도에 부르르 떨며 친구에게 상담한다. 티셔츠와 청바지만 입어도 멋진 20대는 지났으므로 처진 몸매를 끌어올리기 위해 영혼까지 잡아당긴다.


흔한 지구 여자들에 해당되는 얘기지만, 이 문장들을 고스란히 지구 남자들에게 적용시키면 어떨까. 남녀가 전복된 세상을 그린 프랑스 영화 『거꾸로 가는 남자 JE NE SUIS PAS UN HOMME FACILE』(원래 뜻은 '난 쉬운 남자가 아니에요')는 남녀의 역할과 위치가 바뀐 세상을 보여준다. 


모바일 마케팅 회사의 앱 디자이너 다미앵은 잠시도 쉬지 않고 여자를 유혹하는 바람둥이다. 길에서 경미한 사고를 겪고 잠깐 기절했다 깨어난 그는 남녀가 뒤바뀐 세상에 충격받는다.

절친 크리스토프는 육아와 살림을 하고, 그의 아내는 축구경기를 보며 외도까지 하는 '바깥양반'이 되어있다. 물론 축구 선수 모두 여자다. 여자들은 제모를 하지 않고, 소변도 서서 본다. 심지어 아이도 서서 낳는다. 돈 많은 여자들은 남자 친구에게 명품백을 사주며 스포츠카를 몰고 다닌다. 문을 열어주는 것도 여자고, 청소용역이나 구급대원 등 남성이 다수였던 직종엔 여자들이 종사한다. 여자들이 브래지어를 착용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고, 웃통 벗고 조깅하는 광경도 흔하다. 직장에선 여자 상사가 군림하며 그가 개발한 성관계 횟수를 카운팅 하는 앱을 까버린다. 항의하다 해고당한 다미앵은 남성 연대의 지원을 받아 직장 내 남성 차별에 대응하라는 친구의 조언을 듣는다.


알렉상드라와 다미앵


실업자가 된 그에게, 아내의 출산으로 육아휴직을 하게 된 크리스토프가 소설가 알렉상드라의 비서 자리를 제안한다. 그녀는 예전 세상에서 소설가인 크리스토프의 개인비서였던 여자다.


모든 것이 뒤바뀐 세상에 혼자만 제정신(?)인 다미앵은 살아남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현실 같지 않은 현실에 적응한다. 몸 구석구석을 제모하고, 미니 스커트에 버금가는 핫팬츠 정장을 갖춰 입는다. 거리에서 여자들 추파를 받는 건 덤이다. 알렉상드라는 대담하고 자신만만한 여성 우월주의자다. 이전 세상에서 잘 나가던 시절 다미앵과 비슷하다. 그녀는 다른 남자들과는 뭔가 다른 다미앵에게 흥미를 느끼고, 그가 얘기하는 남성 중심의 세상에 소설가의 촉을 발휘해 작품을 구상한다.


이다음 전개는 뻔하다. 남녀가 바뀌었다는 흥미와 놀라움은 잠깐이고, 주도권을 잡은 젠더가 하는 역할은 거울처럼 이전 세상과 똑 닮은 판박이다. 우위를 점령한 '성'이 다른 '성'을 지배하려다 마음대로 안되자 '너 같은 남자(이전 세상에선 '여자')는 처음이야!' 하며 급격하게 빠져든다. 이제 관계의 주도권을 잡은 건 차별받고 멸시당했던 '성'이다. 다미앵에게 빠진 알렉상드라는 그를 소재로 쓴 소설에 가책을 느끼며 괴로워한다. 다미앵은 자신의 바람둥이 전사를 깨뜨릴 만한 이 관계에 몰입하지만, 그녀 역시 예전의 자신과 마찬가지로 이성을 사냥감으로 수집하는 '못된 성인'이라는 걸 알고 실망한다.


신도 여성으로 바뀌었고, 카드게임에서도 퀸이 킹보다 우월하다. 다른 세상을 알고 있는 다미앵도 점점 바뀐다. 그는 여성 위주의 사회에 적응이 덜 되어 본연의 모습을 드러내자 남성 주의자라는 오해를 받는다. 파티에서 만난 출판사 사장(물론 여자다)이 그에게 "남성주의가 취미라고 들었어요. 혁명의 날엔 우리(여자들) 머릴 자를 건가요?"하며 빈정거린다. 다미앵은 치마 입은 여자들이 그립다며, 끈팬티 대신 사각팬티 입을 권리를 운운하며 맞받아친다.




부조리한 이 세상과 한치도 다르지 않은 이 데칼코마니 코미디는, 그러나 딱 거기까지다. 비교적 남녀 성평등이 보장되고 차별이 적다는 프랑스에서 이런 시도를 한 건 유쾌하지만, 이 영화가 남녀의 뒤바뀐 현실을 세밀하게 보여주기만 했다는 것이 아쉽다. 여자가 단지 바지 정장을 입고 과격한 운동으로 힘을 길러서 우위에 선 것은 아닐 것이다. 몸치장을 열심히 하는 여자들이 열등한 게 아니듯이.


사실, 남녀 성 역할이 바뀔 수밖에 없는 필연적인 원인 따윈 없을지도 모른다. 태생적으로 남자보다 체구가 작고 힘이 약한 여자가, 출산을 비롯해 전적으로 2세 생산의 결정권을 갖는 사회가 되면, 요즘 같이 전 세계적으로 저출산이 문제인 세상에서 그녀들의 파워가 더 올라갈 가능성은 있다. 아마조네스나 모계 중심의 사회처럼. 그렇다고 해도 여자가 꼭 남자보다 힘세고, 제모를 안 하고, 갑질을 해야만 하는 건 아니다. 어떤 성이 반드시 제모를 해야 한다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제모를 하든 안 하든 기겁하고 소스라치게 놀라지 않는 성숙한(?) 의식이 남녀 사이에 흐르는 사회가 진정 평등하고 아름다운 사회가 아닌가.


다미앵과 알렉상드라는 동시에 경미한 사고를 당하고 다른 세상에서 깨어난다. 다미앵이 익히 알고 있는 여자가 치마를 입고 화장을 하는 이전 세상이다. 당연히 알렉상드라는 적응 못하는 눈빛으로 당황한다. 그러나 그녀도 다소 힘들어하겠지만 다미앵처럼 곧 익숙해질 것이다. 남녀의 역할과 의식은 궁극적으로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위에서 군림하느냐 밑에서 당하느냐, 그 엎치락뒤치락은 일상생활에서 얼마든지 전복하고 다시 뒤집는 게 가능한 사적인(?) 영역일 때가 많다.


세상에 쉬운 남자는 없다. 쉬운 여자가 없듯이. 존중받아 마땅한 성향이 다른 개인들이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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