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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이스 Aug 06. 2018

결코 싱글맨이 될 수 없는 남자

영화 <A Single Man> (2009)

팝가수 알라니스 모리셋(Alanis Morissette)의 노래 '아이러닉(Ironic)' 중에 이런 가사가 있다.

An old man turned ninety-eight

He won the lottery and died the next day

Isn't it ironic...

[98세가 된 노인이 복권에 당첨됐는데 다음 날 죽었어요, 정말 아이러닉 하지 않나요..]



  대학교수 조지 팔코너(콜린 퍼스)는 매일 아침, 남자 친구 짐(매튜 구드)이 없는 세상에서 눈 뜨는 게 고역이다. 16년 간 함께 한 애인의 사고 소식을 들은 후 세상은 잿빛으로 변했고, 삶은 의미 없는 시간 낭비일 뿐이다. 집안 어딜 봐도 짐과의 추억만 떠오른다. 그는 고독의 무덤으로 변한 생을 끝내기로 결심하고 차분히 주변을 정리하며 하루를 시작한다.  


고독한 싱글맨 조지 팔코너


  1962년 미국은 이념 대립과 핵 공포로 비정상적인 두려움에 떠는 사람이 많았다. 학교에서 만난 동료 교수는 조지에게 핵전쟁에 대비한 방공호 얘기를 하며 경각심을 일깨우지만, 조지에겐 무의미한 사설에 불과하다. 그가 진정으로 두려워하는 건 핵이 아니라 사랑하는 이가 사라진 세상, 그가 없는 삶을 살아야 하는 기약 없는 생이다.


짐과 조지


  마지막 수업은 자유토론을 하며 솔직한 냉소로 장식한 조지에게 제자 케니(니콜라스 홀트)가 다가온다. 대담하면서도 순수한 젊은이는 주변을 정리하는 조지를 예의 주시한 듯 어디로 떠나냐고 물으며 주위를 맴돈다. 조지는 이 버거운 청춘을 담담하게 대하며 시간에 몸을 맡긴다. 저녁엔 유일한 여자 친구 찰리(줄리안 무어)와 함께 한다. 그녀는 상실감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조지에게 하룻밤을 제안하지만 무참히 거절당한다. 그 무엇도 짐을 대신할 수 없고, 짐 없는 세상을 떠나겠다는 그의 결심을 막을 수 없다. 이 고독하고 덤덤한 남자 앞에 느닷없이 또 케니가 나타난다. 그 어떤 욕망에도 흔들리지 않고, 두려움에도 굴복하지 않던 조지는 케니의 순수하고 무모한 관심 앞에서 서서히 무장해제된다. 그와 알몸으로 바다 수영을 한 후 함께 집에 온 조지는 자살이 임박한 순간에 닥친 이 반전 같은 상황을 어찌할지 몰라 망설인다.


순수한 젊은이 케니


  조지는 상실감에 휩싸인 고독한 싱글이다. 16년 동안 함께 한 애인을 세상에 떳떳이 드러내지 못해 싱글맨으로 살았다. 그 또한 세상에 인정받지 못한 건 마찬가지다. 앞으로 사는 내내 싱글맨일 것이다. 영국인으로 고향을 떠나 미국에 정착했지만 여전히 이방인이다. 안 죽을 이유가 없을 만큼 처절하게 고독한 이 남자에게, 젊은 제자는 선생님이 걱정된다며 서슴없이 다가와 말한다. 우리는 '보이지 않는 사람(invisible man)'이라고. 동성애자 대학교수인 조지는 '보이지 않는 사람'으로 살아온 자신의 생을 공감해준 이 한 마디에 마음이 움직였을지도 모른다.


드물지만 진실로 다른 사람과 교감하는 순간만이 외로움을 잊게 한다.


  자살을 위해 준비해둔 권총을 숨긴 채 잠든 케니를 보며, 조지는 살아야겠다고 결심하다. 그리고 그 순간, 그의 심장이 멈춘다.




  끝내 세상에 드러나길 거부한 이 보이지 않는 남자는 서서히 멈추는 심장을 의식하며 왠지 미소 짓는 듯한 얼굴로 눈을 감는다. 그가 생을 기꺼이 받아들인 순간 들이닥친 죽음은 또 다른 문이고 기회였던 것일까. 평생 시달린 절절한 욕망과 상실에서 해방되어 홀가분했던 것일까. 그의 마지막 순간을 장식한 장난 같은 아이러니는, 상처마저 우아하게 감춘 사람의 마지막답게 유머러스하면서도 처절하다.  


케니와 조지


  세계적인 디자이너 톰 포드 감독이 보여준 피사체들은 탄식이 나올 만큼 매력적이다. 콜린 퍼스의 날카로운 젠틀함, 매튜 구드의 부드러움, 니콜라스 홀트의 순수함이 가득 찬 화면은 그 자체로 축복이다. 그들은 '보이지 않은 사람'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그들 자체는 안 볼 수 없게 만드는 비주얼과 분위기로 보는 이를 압도한다. 이 또한 이 영화가 말하는 아이러니가 아닌가 싶다.   


  젊음을 드러내는 두 남자 앞에서도 '콜린 퍼스 is 뭔들..'이란 감탄이 절로 나올 정도로 콜린 퍼스의 매력은 압도적이다. 세상은 그를 결코 싱글맨으로 놔두지 않는다. 그도 모르는 그의 애인을 자처하는 여인들이 세상에 포진해 있는 한, 그는 한순간도 싱글맨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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