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리고 천천히 요리해 먹는 몬테네그로 소울 음식
#로이스_몬테네그로_평화봉사단_이야기
#AI는_일하고_인간은_산다
2월 19일
한 달 반 정도 한국 음식 없이 지냈다.
아직까지는 괜찮다.
"비상약"처럼 챙겨온 불닭소스는 뚜껑도 안 딴 채 책상 위에 올려져 있다. 조기를 천장에 매달아 놓고 밥 한 숟갈 먹을 때마다 한 번씩 쳐다보며 반찬 값을 아꼈다는 ‘자린고비’처럼, 지금은 바라보는 것만으로 위안이 된다. 괜히 한 번 열었다가 “이제는 돌아갈 수 없다” 모드가 될까 봐 아껴두는 중이다^^
호스트맘이 해주는 몬테네그로 음식이 생각보다 입에 잘 맞는다. 그래서인지 한국 음식 없이도 버틸 만하다. 내가 사는 동네에는 패스트푸드점이 하나도 없다. 동네 수퍼와 빵집은 있지만 우리나라식의 편의점은 없다. 그러다보니 ‘간편하게 한 끼 해결’이라는 개념은 이곳에서 그리 일반적이지 않다. 물론 레스토랑은 있지만 아주 특별한 날에 가는 곳이고, 대부분의 가정에서는 매일 저녁 직접 요리를 한다.
몬테네그로 가정에서 해먹는 그 요리들이 참 느리다. 30분 만에 뚝딱 만드는 샐러드도 있지만, 주요리는 대부분 두 시간 이상 불 위에 올려져 있다. 호스트맘이 자주 하는 초르바(čorba)라는 스프 겸 스튜가 있다. 국물요리이지만 건더기가 많아서 한 그릇 먹으면 배가 든든하다. 비가 잦은 겨울, 배를 따뜻하게 데워주는 이곳의 소울푸드다. 소고기나 닭으로 육수를 한 시간 이상 낮은 불에 우려내고, 그 위에 감자, 당근, 셀러리 같은 채소를 넣어 또 한 번 푹 끓인다. 내가 학교에서 돌아오는 오후 다섯 시쯤이면 이미 냄비에서는 뭔가가 조용히 끓고 있다. 집 안에는 국물 우려내는 냄새가 가득하다.
우리집 저녁은 보통 오후 일곱 시쯤 시작한다. 호스트맘은 혼자살기에 저녁 시간은 나와 호스트맘 딱 두 명이다. ‘먹고 끝’이 아니라, ‘먹고 이야기하는 시간’이 시작된다. 식사를 하며 두 시간 가까이 이야기를 나눈다. 오늘 학교에서 있었던 일, 동네 소식, 손자 이야기, 어떨 땐 노래까지. 주말에는 맥주나 와인도 함께 하며 저녁을 먹는다. 전혀 급하게 먹지 않는다. 둘만 있어도 음식은 배를 채우는 수단이 아니라, 관계를 유지하는 시간의 매개처럼 느껴진다.
몬테네그로의 이런 "느린" 요리들이 주로 여성(엄마들)의 시간을 많이 차지하는 것은 마음 한켠이 걸리긴 한다. 여기서는 아주 현대적인 젊은 커플이 아니면 대체로 여성들이 요리를 하고 설거지까지 맡는다. 직장을 다니는 여성도 예외는 아니다. 이 부분은 따로 한 번 써보고 싶다.
어쨌든 나는 매일 한 끼를 이렇게 만들어진 ‘느린 음식’을 먹고 있다. 효율만 따지면 비경제적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느림 속에 들어 있는 정성 때문인지, 속이 따뜻해지고 마음까지 덩달아 따뜻해진다. 천천히 익은 국물은 성격도 조금 천천히 만들어주는 것 같기도 하다. 한국 음식 없이도 지낼 수 있도록 해주는 진정 소울푸드다.
어제는 내가 요리를 맡았다. 한국식 뇨끼라고 소개하며 감자수제비를 만들었다. 소금으로만 간을 했는데, 어쩜 그렇게 맛있던지. 호스트맘도 엄청 좋아했다. “Very simple, but very good!”라며 몇 번이나 더 떠갔다. 한국 양념 없이 가능한 한국 요리를 찾기 위해 요즘 유튜브를 엄청 뒤지고 있다. 다음번에는 야채 부침개와 폭탄계란찜을 도전해볼 생각이다.
이곳에서는 음식이 단순히 ‘칼로리 섭취’가 아니다. 음식을 중심으로 하루가 정리되고, 관계가 확인되고, 가족이 모인다. 한국에서는 바쁜 날엔 각자 먹고 끝날 때도 많았는데, 여기서는 함께 앉아 있는 시간이 기본값이다.
불닭소스를 몇 개월째 열지 궁금하다 ㅎ 아직은 이 느린 국물 속에서, 조금 더 살아보고 싶다.
P.S. 브런치 독자분들 중 한국 양념 없이 만들 수 있는 요리 추천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사진
1) 호스트맘이 해주었던 초르바. 닭다리를 한 시간 이상 낮은 불에 끓인 국물로 만들었다. 간단해 보이는 음식이지만 시간과 정성이 많이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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