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수종교를 믿는 사람들도 법정 휴일 인정하는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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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20일 금요일
“츠르네고레, 츠르네고레~”
평화봉사단의 일원으로 내가 머물고 있는 몬테네그로 호스트 집에서 자주 듣는 노래이다. 50대 중반의 호스트맘도 청소하면서 늘 이 노래를 흥얼거린다. “츠르네고레, 츠르네고레~”가 후렴구인 듯 하다, 츠르네고레(Crne Core)는 ‘몬테네그로’라는 뜻이다. 우리로 치면 “코리아”가 아니라 “대한민국”. 이 노래를 부를 때 호스트맘에게는 몬테네그로 나라에 대한 자부심이 느껴진다.
어제는 평화봉사단 동료들과 함께 몬테네그로 역사를 다룬 영상을 보았다. 몬테네그로의 역사는 순탄하지 않았다. 종교와 제국, 주변 국가들과의 갈등 속에서 오랜 시간을 버텨왔다. 그런데 영상 속에서도, 그리고 주변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면서도 공통적으로 느낀 건 하나였다. 호스트맘에게 느꼈던 나라에 대한 자부심이다.
그리고 특히 이런 표현을 자주 듣는다.
“우리는 완전히 지배당한 적이 없고, 누구도 침략하지 않은 나라다.”
역사적으로 외세의 영향과 정치적 결합은 분명 존재했다. 하지만 몬테네그로 사람들 사이에서는 산악 공동체의 자치 전통을 오래 유지해왔다는 기억이 그 서사의 중심에 있는 듯하다. 완전한 제국도 아니었고, 완전히 흡수된 적도 없었다는 정체성을 갖고 있다. 또 그 어떤 나라도 침략하지 않았다는 사실에도 자부심을 느낀다. 900번 이상의 외세 침략속에도 다른 나라를 침략하지 않았던 우리나라 역사가 떠오르는 지점이기도 하다.
몬테네그로는 국토의 대부분이 산악 지형이다. 70~80% 이상이 산과 고원. 그리고 그 중 상당 부분이 해발 1,000미터를 넘는다. 진정 산악 국가다. 이런 험준한 산악 지형은 생활을 어렵게 만들었겠지만, 반대로 외세의 완전한 통치를 어렵게 했던 것 같다. 오스만 제국의 영향권 아래 있었던 400년이 넘는 시기에도 산악 부족 중심의 자치 전통이 유지되었다고 한다.
몬테네그로의 공식 기념일 중 가장 크게 기념하는 날이 “국가의 날(Dan državnosti)” 독립일이다. 7월 13일이고, 법정공휴일로 이틀을 쉰다. “1878년 베를린 회의에서 몬테네그로의 독립이 국제적으로 인정된 날. 오스만 제국으로부터의 독립이 공식화된 역사적 순간이다.
몬테네그로는 2006년, 세르비아와의 연방을 국민투표로 해체하고 현대적 의미의 독립을 이루었다. 2006년 독립일보다 1878년 독립일을 훨씬 중요하게 생각한다. 2006년이 현대 정치사의 사건이라면, 1878년은 “우리는 원래 독립 국가였다”는 기억을 확인하는 날처럼 느껴졌다. 새로 만들어진 나라라기보다, 오래전부터 존재해온 나라였어, 라고 강조하는 듯 하다.
그리고 또 하나 인상 깊었던 건 몬테네그로의 종교 문화다.
몬테네그로 인구의 약 72%는 동방정교(그리스정교 포함), 약 19%는 이슬람, 약 3%는 가톨릭 신자다. 다수는 정교도이지만, 소수 종교 신자도 자신의 종교 절기에 유급 휴가를 사용할 수 있다. 무슬림 동료가 이슬람 명절에 휴가를 쓰는 것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진다. 다수 종교가 있지만 소수의 절기를 제도적으로 인정해주는 제도. 이 부분은 정말 부러웠다.
한국에서는 성탄절과 부처님 오신 날이 법정 공휴일이다. 하지만 이제 우리도 인구의 약 5%, 즉 20명 중 1명이 외국 국적자이고, 다문화 가정과 다양한 종교를 가진 사람들이 빠르게 늘고 있다. 언젠가는 각자의 신앙 절기를 제도적으로 인정하는 방식도 고민해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형식은 사고를 만든다. 제도가 다양성을 선언하면, 우리들의 생각도 조금은 따라오지 않을까.
지금까지 몬테네그로의 역사와 종교는 지난 한 달 남짓 관찰한 나의 첫인상이다. 역사와 정체성의 문제로 깊게 들어가면 종교는 여전히 중요한 요소로 작동하는 듯 보인다. 신앙 그 자체라기보다, 오랜 시간 쌓여온 기억과 공동체의 서사가 종교라는 틀에 남아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2년을 몬테네그로에 있을테니, 앞으로 더 배울 기회가 있을 것 같다. 호기심을 잃지말고, 귀를 열고 마음을 열어 놓자고 자신에게 말한다.
아래는 몬테네그로의 종교와 정체성을 이해하기 위한 간단한 역사 정리
오스만 제국 지배와 항쟁의 역사 (15세기 후반–1878년)
15세기 후반부터 발칸 지역 대부분은 오스만 제국의 지배 아래 들어갔다. 몬테네그로 역시 영향권에 있었지만, 험준한 산악 지형 덕분에 완전한 통치를 받지는 않았다. 오랜 기간 오스만과 싸우며 사실상 자치적 전통을 유지해왔고, 1878년 베를린 회의에서 국제적으로 독립을 인정받는다. 이 시기는 “우리는 쉽게 굴복하지 않았다”는 집단 기억의 근거가 된다.
정교회 중심의 산악 자치 공동체 전통 (17–19세기)
몬테네그로는 오랜 기간 ‘주교-통치자(prince-bishop)’ 체제로 운영되었다. 종교 지도자가 정치 지도자 역할을 겸하던 구조였다. 정교회는 단순한 종교 기관이 아니라 공동체 결속과 저항의 상징이었다. 그래서 지금도 정교회는 종교 이상의 역사적 의미를 갖는다.
세르비아와의 역사적·문화적 연결 (1918년 이후)
제1차 세계대전 후인 1918년, 몬테네그로는 세르비아와 합병되어 이후 유고슬라비아 왕국의 일부가 된다. 언어·종교·문화가 유사한 만큼 두 지역은 긴밀하게 얽혀 있었고, 오늘날에도 정체성 논쟁 속에서 이 연결은 중요한 요소로 남아 있다.
유고슬라비아 해체 (1990년대)
1990년대 초 유고슬라비아가 해체되면서 발칸 지역은 큰 정치적 변화를 겪는다. 몬테네그로는 세르비아와 함께 ‘세르비아-몬테네그로 연방’을 유지했다. 이 시기는 민족·종교·국가 정체성이 다시 한 번 정치적 이슈로 떠오른 시기였다.
2006년 독립 국민투표
2006년 5월 21일, 국민투표를 통해 세르비아와의 연방을 해체하고 독립 국가가 된다. 이것이 현대적 의미의 독립이다. 하지만 사람들 사이에서는 2006년보다 1878년의 국제적 독립 인정(7월 13일)을 더 깊은 역사적 자부심의 근거로 여기는 분위기도 느껴진다.
사진)
어느 일요일 방문한 옆 도시인 바(Bar)에 위치한 한 정교 성당. 멀리서 기도하는 사람이 호스트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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