밝은 빛과 함께 꽃비가 내리고(神花) 천상의 음악(天樂)을 들었다는 사람들이 있다. - 현장스님, 대당서역기 3권
탁실라로 들어오는 관문과도 같은 발랄톱 스투파, 옆으로 난 길은 고대에도 사용되었다.
간다라의 고대도시 탁실라 북측의 높은 언덕 위에는 발랄톱(Bhallar Tope)이라는 스투파가 놓여있다. 이 곳은 탁실라의 북측을 동서로 가로지르는 하로(Haro)강 건너편으로, 탁실라로 들어오고 떠나는 길의 입구에 해당한다. 홀로 우뚝 선 스투파의 모습은 마치 긴 항로를 안내하는 등대와 같다.
탁실라 주요 문화유산 지도
이 탑은 분명 예로부터 탁실라로의 안내를 도맡아 왔음이 틀림없다. 진리를 위해 구법의 길을 떠나온 동아시아의 승려들, 무역을 통해 거금을 손에 쥐고자 했던 실크로드의 거상들, 어떤 이유에서라도 죽음의 길이라 알려진 실크로드를 떠나온 자들 중 두렵지 않은 자가 있었을까? 그 만큼 이 스투파는 그 길을 힘겹게 건너온 자들에게 긴장의 끈을 놓게 만드는 감사의 존재였을 것이다. 그래서 서두의 현장스님이 이 스투파에 대해 남긴 기록과 같이, 사람들이 이 스투파에서 꽃비 등과같은 환상을 보지 않았나 싶다.
저녁 무렵 빛을 받아 더욱 성스럽게 느껴지는 발랄톱 스투파
실제로 이 스투파는 탁실라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스투파라고 한다. 잔존하는 높이는 기초로부터 약 13미터에 이르는데, 원래는 이보다 훨씬 높았을 것이다. 외장 또한 지금 보이는 모습은 당시와는 전혀 달랐을 것이다. 보통 스투파는 대부분 회반죽으로 벽면을 치장하고, 곳곳에 불교와 관련된 조각상들로 장엄한다. 지금 보이는 부분은 스투파의 골조에 지나지 않지만, 일곱 층으로 구분된 원통형 부분과 그를 덮은 원구형 구조를 바탕으로 화려하게 조성되어 있었을 모습을 상상하면 사뭇 다른 느낌이 든다.
발랄톱 스투파의 입지, 산에서 툭 튀어나온 언덕의 넓은 구릉 위에 떡하니 자리잡고 있다.
스투파의 조금 옆에는 어마어마한 규모를 자랑했을 것이 분명한 대형 승원이 땅에 묻혀있다. 지금은 승원의 정문과 한측 벽체만 드러나 있는데, 거의 40~50m에 이른다. 간다라 시대의 승원들은 정방형 구조이며, 입구는 중앙에 위치한다. 이 형태를 생각하면 대략 100m에 이르는 정사각형 건물이었음을 짐작해 볼 수 있다. 이는 다른 승원에 비해서도 확실히 큰 규모이다. 아마도, 먼 길을 떠나거나 돌아온 사람들의 넉넉한 기진에 꽤나 부유한 승원이 되었지 않았나 싶다. 실제로 이 승원에는 당시 최고라 불렸던 쿠마라라타라는 스님이 기거하며 집필작업을 했던 곳이라고 전해지고 있다.
또한 이 곳은 석가모니 부처가 전생에 찬드라프라바왕으로 태어나 위대한 보시를 행한 곳이라고 전해지고 있다. 찬드라프라바 왕은 악독한 브라만 라오드락샤의 무리한 보시 요구를 받아들여, 스스로의 머리를 잘라 내어놓았다고 한다.
불교가 융성했던 간다라 지역은 사실 석가모니 부처님이 생전에 다녀간 적이 없던 곳이다. 하지만 간다라의 사람들은 이 지역을 불교와 연관성을 만들고자 했다. 그래서 이렇게 자타카 이야기(본생담)와 엮어서 불교 성지를 만들어 내는 경우가 많다. 발랄톱 스투파도 그런 장소 중 대표적인 곳이다.
발랄톱 스투파와 관련된 흥미로운 이야기가 하나 더 있다. 이 스투파는 다른 스투파들에 비해 항상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다. 그 배경에는 이런 이야기가 있다. 옛날 문둥병에 걸린 여인이 스투파가 더럽혀져 있는 것을 보고, 매일 같이 찾아와 오물을 치우고, 스투파 바닥에 꽃을 까는 일상을 보내기 시작했다. 그러자 점차 여인은 문둥병에서 나아갔고 외모도 아름다워졌으며, 몸에서는 꽃향기가 나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지금도 이곳에 방문하는 사람들은 사원 주변에서 쓰레기를 주우면서 기도를 올린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