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다라의 불상은 한 마디로 잘빠졌다. 한국에서 볼 수 있는 머리가 크고 통통한 불상과는 사뭇 다른 외관이다. 뚜렷한 이목구비에 훤칠한 신체 비율, 모델이 부럽지 않다. 불상이 잘생기면 염불도 잘 된다던데, 왜 간다라에서 불교가 흥했는지 알듯하다.
간다라 불상의 탄생
불상은 불교가 세상에 등장한 시점보다 많은 시간이 흐른 뒤에 탄생했다. 불교의 창시자 석가모니는 기원전 624년에 태어나 기원전 544년에 열반하였다. 불교에서는 석가모니가 돌아가신 해를 불기(佛紀)의 원년으로 잡는다. 하지만 종교로서의 불교는 석가모니가 열반에 들기 이전그의 가르침을 따르는 제자들이 집단, 승가를 이룬 시점부터로 보는 것이 맞을 듯하다. 경전의 제작은 석가모니 열반 직후에 시작되었다. 석가모니의 가르침을 직접 들었던 500여 명의 제자들이 그의 말씀을 남기기 위해 한 자리에 모여 논의를 하고 정리했는데, 이를 1차 결집이라 부른다. 반면 불상이 나타난 것은 기원후 1~2세기 경이다.부처가 열반에 든 이후, 부처의 모습을 직접 표현하는 것은 금기와 같이 다뤄졌다. 불상이 등장하기까지 약 600년 동안은 부처가 깨달음을 얻은 보리수 나무나, 부처의 말씀을 표현한 진리의 수례바퀴, 부처님의 발자국 등 간접적으로 표현하였다. 이 기간을 무불상시대(無佛像時代)라고 부른다.
무불상시대의 부처를 상징하는 방법들
부처를 간접적으로 표현하는 것에 답답함을 느꼈을까? 부처 열반으로부터 6세기가 지난 시점에 불상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그중 하나가 간다라 불상이다. 간다라에서 불상이 탄생한 배경은 무엇일까? 혹자는 그리스 헬레니즘 문화의 영향을 받은 것을 원인으로 꼽는다. 간다라 지역에는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침공 이후 그리스 문화가 깊이 침투해 있었고, 그 영향이 불교와 결합하여 불상이 이곳에서처음 만들어졌다는 이야기이다. 실제로 간다라의 불상은 곱슬곱슬한 머리카락과 깊은 눈, 오뚝 솟은 코를 비롯하여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해부학적 표현이 적극 반영되어 있다. 이는 그리스 혹은 로마에서 발달한 극 사실주의적 조각 양식과 유사하다. 또한 그리스는 다신교로 다양한 신들을 인간의 모습으로 표현하는 예술이 발달했다. 신의 모습을 직접 표현하는 관습이 불교와 결합하여 불상의 탄생에 영향을 주었을 수도 있을 듯하다.
인도 지역에서 출토된 서방의 예술품들(좌 아프로디테, 우 아폴론)
마투라 불상의 존재
간다라의 불상이 불상의 시초라고 단정 지을 수 없다. 간다라에서 동남쪽으로 1,000km 떨어진 마투라 지역에서도 동시대인 기원후 1세기 경에 불상이 탄생했다. 조금 먼 거리로 볼 수도 있지만, 상호 문화적 영향을 주고받기에 충분히 가까운 거리이다. 다만 두 지역에서 나타난 불상의 모습이 너무 다르기 때문에 어느 한쪽의 영향을 받았다기보다 시대적 요구에 의해서 각각 불상이 탄생한 것으로 보는 것이 합당하다.
간다라(빨강)와 마투라(노랑) 위치(출처: www.sutori.com)
마투라의 불상은 간다라와 달리 전체적으로 둥글둥글하고 친근한 느낌으로 표현된다. 간다라 불상이 서방의 영향을 받았다고 본다면 마투라의 불상은 인도의 지역색이 강하게 반영되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결국 4세기쯤 되면 마투라의 불상과 간다라의 불상은 결합하여 굽타 불상이라는 빼어난 양식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좌 마투라 양식 불상, 우 굽타 양식 불상(출처 위키피디아)
간다라 불상의 제작
간다라 불상의 제작은 페샤와르 분지를 중심으로 기원후 2세기부터 5세기에 걸쳐 집중적으로 이루어졌다. 수백 년에 걸쳐서 제작되었기에 시대에 따른 양식 차이가 있다. 전문가들은 4~5개의 양식으로 구분하는데, 초기인 2~3세기 경의 불상이 가장 뛰어나다. 반면 후대로 갈수록 퇴행한다. 신체 비율이 무너지며, 양식의 단순화와 형식화가 보인다.
페샤와르 박물관의 간다라 불상
간다라 불상이 2세기경에 가장 뛰어났다가 점차 퇴행하는 것은 쿠샨왕조의 융성과 관련이 깊어 보인다. 쿠샨왕조는 1~4세기 경에 간다라 지역을 중심으로 성장하였는데, 그중에서도 2세기 경을 최고의 전성기로 꼽는다. 특히 제2의 아쇼카 대왕이라고도 불리는 카니슈카 대왕(120~144)의 불교 후원이 있었기에 간다라 불상이라는 독보적인 예술 작품들이 태어날 수 있었을 것이다.
선정인, 설법인, 시무외인
간다라 불상은 다양한 모습으로 조성되었다. 크게 서있는 형태인 입상과 앉아있는 형태인 좌상으로 구분할수 있다. 그리고 손 모양에 따라서도 구분이 가능한데, 세 가지 손동작이 특히 많이 사용되었다.
간다라 불상의 좌상과 입상(페샤와르 박물관)
첫 번째는 선정인(meditation)으로 지난 6편에서 다룬 라호르 박물관의 고행상의 수인이 여기에 해당한다. 주로 결과부좌를 틀고, 양손을 가운데에 가지런히 모으고 있는 상태이다. 선정인은 자세의 특성상 좌상에서만 볼 수 있다.
두 번째는 설법인(preaching)으로 말 그대로 설법을 하는 모습이다. 주로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은 후, 사르나트(녹야원)에서 처음으로 설법을 한 장면(초전법륜)에서 많이 사용된다. 이 자세도 좌상에서 주로 보인다.
좌로부터 선정인, 설법인, 시무외인
마지막으로 시무외인은 양 손바닥을 내어 보이는 모습인데, 주로 오른팔을 들어 올리고, 왼 팔은 내린 형태로 표현되는 경우가 많다. 이 수인은 보는 이로 하여금 긴장을 풀 수 있도록 한다. 입상에서 많이 보이나, 좌상에서도 보인다. 그 외에 발우를 들고 있는 모습 등 특이한 형태도 간혹 관찰된다.
좌 페샤와르 박물관, 우 라호르 박물관
간다라의 불상은 이른 시기부터 제국주의 국가들에게 수탈되어 전 세계에 흘러갔다. 심지어 한국의 중앙박물관에서도 아름다운 작품들을 볼 수 있다. 그럼에도 가장 많은 불상을 볼 수 있는 곳은 간다라의 중심지인 페샤와르 박물관과 라호르 박물관일 것이다. 두 곳 모두 방문하기는 쉽지 않겠지만, 간다라 불상에 관심이 있다면 두 박물관의 컬렉션들을 실견해 보기를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