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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동희 Jan 28. 2024

파키스탄 3대 보물, 라호르 박물관의 고행상

간다라 이야기 #6

파키스탄에는 삼대 국보라 불리는 유물이 있다. 인더스, 간다라 지역에서 출토된 수많은 유물 중 우열을 가린다는 것에 큰 의미는 없지만, 그래도 흥미차원에서 살펴볼 만하다.



파키스탄 삼대 보물


삼대 보물 중 하나는 모헨조다로 출토 사제왕 흉상으로 인더스 문명의 상징과도 같다. 석회암으로 된 이 흉상은 기원전 2천 년 전후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카라치 박물관에 소장 중이다.


다른 하나는 카니슈카 대탑에서 출토된 사리장엄구이다. 카니슈카 대탑으로 추정되던 곳을 발굴할 때 출토되어, 대탑의 진위 증명하였다. 또한 사리함에 조각된 명문, 사리함 속에서 확인된 세 조각의 진신 뼈사리까지 모두 중요다. 사리함은 현재 페샤와르 박물관에 소장 중이다.


모헨조다로 출토 사제왕 상(출처: 위키) / 라호르 박물관 소장 고행상 / 페샤와르 박물관 소장 사리함


마지막 하나는 라호르 박물관에 소장 중인 고행상을 꼽는다. 이번 글에서는 이 고행상에 대해서 자세히 살펴보려 한다.



싯다르타 고행상


라호르 박물관의 상징이자 간다라 미술의 마스터피스라고 불리는 유물, 그리고 전 세계 불상 조각 중에서도 최고의 작품 중 하나로 말해지는 '고행상(Fasting Buddha)'이다.


라호르 박물관의 대표 유물, 싯다르타 고행상


고행상은 19세기말, KP주의 시크리 유적에서 출토되었다. 재료는 편암이고, 불상의 규격은 높이 84cm, 폭 53cm, 깊이 25cm로 등신 대비 조금 작다. 고행상은 신체표현을 극도로 현실적으로 보여주는 헬레니즘의 조각 양식과 인도의 불교문화가 결합되어 탄생한 간다라 미술의 전형이다.


불경(보요경 제5권, 맛지마니까야)에 따르면 고행의 결과 싯다르타의 몸은 뼈와 살가죽만이 남아 배와 등이 달라붙었고, 손으로 배를 만지면 등뼈에 닿았다. 또한 손으로 팔다리를 문지르면 뿌리가 썩은 몸의 털들이 떨어져 나갔다고 기록하고 있다.


고행상 세부 모습


고행상은 경전에 묘사된 싯다르타의 모습을 경전 이상으로 잘 표현하고 있는 듯하다.


상반신을 보면 갈비뼈와 어깨뼈가 앙상하게 드러나 있다. 눈은 움푹 파여있는데, 눈동자는 잘 보이지 않는다. 수염은 영양을 섭취하지 못해 푸석푸석하여 금방이라도 떨어질 듯하다. 배도 등이랑 말라붙어 있음을 잘 표현하고 있는데, 말라서 접힌 주름이 표현되어 있다. 치골이 다소 높은 위치에 올라와 있기는 하지만 어색하지 않다. 전체적으로 영양이 결핍되어 죽어가는 듯한 자의 모습을 실제와 같이 잘 표현하고 있다.


한편, 몸 전체로 핏줄이 눈에 띄게 튀어나와 있다. 결가부좌를 틀고 선정인을 하고 있는데, 자세가 매우 올곧다. 금식 수행을 하고 있는 수행자의 맑게 유지되고 있는 정신을 보여주는 듯하다. 자세는 살짝 좌측으로 기울어 있는데, 이 또한 자연스러운 느낌을 준다.


 


싯다르타의 고행과 고행상의 의미


싯다르타 태자는 출가 후 깨달음을 얻기 위해 당시에 유명했던 수행자들을 찾아다니며 가르침을 청하였다. 여러 수행자들은 싯다르타에게 자신의 깨달음을 가르쳤지만, 어떤 것도 싯다르타가 원하는 것이 아니었다. 결국 싯다르타는 극한의 고행을 통해 깨달음을 얻고자 하였다. 하루에 쌀 한 톨, 깨 한 알을 먹으면서 극도로 양분 섭취를 제한하였다. 그 결과 위의 고행상과 같은 모습이 된 것이다.


극도의 고행을 통한 수행을 이어가던 싯다르타는 고행이란 몸을 괴롭힘에 대한 집착이자, 스스로에 대한 괴롭힘일 뿐 지혜를 얻기 위해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결국 6년간 이어오던 고행을 중단하였다. 그 후 어린 소녀인 수자타의 타락죽(우유죽) 보시를 받고 건강을 회복하였고, 보리수나무 아래에서 깨달음을 얻게 된다.


고행상은 깨달음을 얻기 위해 다방면으로 노력하던 싯다르타 태자의 모습을 그린 조각이다. 깨달음을 얻기 전의 모습이기 때문에 정확히 말하자면 부처상이 아니라 보살상으로 분류하기도 한다. 팔상도의 다섯 번째 장면인 설산수도상에서 고행하는 모습이 그려지지만, 고행상의 모습을 조각으로 나타낸 경우는 많지 않은 편이다. 아마도 부처님 본인이 고행은 깨달음을 얻는 길이 아니라고 말하였기에, 고행상이 후대의 신도들에게 크게 유행하지 않았는지도 모르겠다.


고행상 아래쪽에 조각된 공양하는 스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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