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월초파일, 예로부터 부처님 오신 날이 되면 사람들은 절에 가서 탑을 돌며 기도를 드렸다. 과거에는 밤 새 탑을 돌았다고 하는데, 요즘에는 해가 진 후 잠시 하는 정도이다. 탑돌이의 역사는 상당히 길다. 이 땅에 불교가 들어올 때 함께 들어왔으니, 천년이 훨씬 넘었다. 민중들에게는 이 것이 불교 의례라기보다 오래된 축제였을 것이다. 삼국유사에도 탑돌이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신라 원성왕 때 '김현'이라는 사람이 흥륜사에서 탑돌이를 하다가 여인의 모습을 한 호랑이와 눈이 맞아 관계를 맺었다. 사람을 잡아먹는 호랑이를 잡아오면 벼슬자리를 주겠다는 왕실의 포상이 걸리자 호녀는 자결하여 자신의 주검을 바쳐 김현이 벼슬자리에 오르도록 하였다. 벼슬에 오른 김현은 호원사를 지어 호녀의 넋을 기렸다. - 삼국유사 5권 '김현감호(金現感虎)'
옛날이야기지만 탑돌이를 하다가 젊은 남녀가 눈이 맞았다는 점이 흥미롭다. 사실 될 놈 될이라고, 될 사람들은 어떤 상황이든 눈이 맞을 수는 있다. 그런데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의 설명에 따르면 '사월 초파일 또는 큰 재(齋)가 있을 때 사찰에서 거행하는 불교의식 또는 성인남녀놀이. 불교의식 · 민속놀이'라 설명한다. 성인남녀놀이라니, 김현과 호녀와 같은 일들을 기대했을 젊은이들이 꽤나 있었을 법도 해 보인다.
이야기가 좀 새긴 했는데, 한국의 탑돌이의 유래를 찾아보면 인도의 '파리크라마(Parikrama)'에 이른다. 파리크라마란 신성한 존재를 중심에 두고 시계방향으로 돌면서 기도를 하는 인도의 종교의식이다. 석가모니 부처님 생전에 부처님께 인사를 올리고 시계방향으로 세 바퀴 돌면서 예를 표했다고 한다. 불교뿐 아니라 힌두교, 자이나교에서도 파리크라마를 행했다. 힌두교에서는 신들마다 돌아야 하는 횟수를 달리하는 등 종교적으로 의식이 더욱 세분화되어 있기도 하다. (가네샤 1 or 3 바퀴, 비슈누 3 or 4바퀴 등... )
탑돌이를 하는 방향도 흥미롭다. 신성한 존재를 오른쪽에 두고 도는데, 인도에서는 오른쪽을 신성한 쪽으로 여기기 때문일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북반구에서 소용돌이치는 것들은 지구 자전방향에 의해 자연스럽게 시계방향으로 돌기 마련이다. 즉, 탑돌이 방향은 자연의 섭리를 따르는 것으로 볼 수 있다.(죽음과 관련된 마지막 행사에서만 반대방향으로 돈다고 한다. 그래서 탑돌이 방향이 반대로 설계된 앙코르 왓이 왕의 묘라는 설이 여기서 기인한다.)
탑돌이를 위한 요도가 명확한 산치 스투파
탑돌이가 보편적이었던 만큼 인도 종교에서는 탑돌이를 위한 장치가 많았다. 이는 종교 건축물에도 다양하게 반영되어 있었는데, 스투파에도 탑돌이를 위한 통로가 만들어졌다. 이를 요도(繞道)라고 부른다. 한국의 탑에서도 탑돌이를 위한 시설들을 볼 수 있지만, 간다라의 스투파에서는 요도가 명확하게 배치되어 있다. 보통 스투파 옆으로 기단이 확장되어 있는데, 이를 상부 요도라고 부르고, 기단 아래로 또 다른 요도가 있는데, 이를 하부요도라 한다. 아마도 주요 인물들이 상부요도를 일반 대중들은 하부요도를 돌면서 탑돌이를 했을 듯하다.
(좌로부터) 다르마라지카 스투파, 망키얄라 스투파, 발랄톱 스투파의 탑돌이길
탑돌이는 성지를 가운데에 두고 크게 도는 성지 순례의 형태로도 확장된다. 인도의 성산 카일라스 산을 도는 순례길, 그리고 바라나시 순례길, 아루나찰라 언덕 순례길, 쿠루쿠세트라 순례길 등 다양한 순례길이 전해진다. 순례길에 대해서는 다음 기회에 이야기하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