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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동희 Jul 27. 2024

남아시아 고고학의 아버지 '존 마셜'

간다라 이야기 #30

존 마셜(John Marshall, 1876-1958)은 남아시아 고고학의 아버지라고 불릴 정도로 인도 고고학에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온 인물이다. 지난 글에서 살펴보았던 알렉산더 커닝엄은 군인임에도 고고학에 관심을 가지고 관련된 업적을 세운 인물이라면, 존 마셜은 어려서부터 고고학도로서 전문적으로 교육받은 이른바 고고학 공자였다. 그는 인도 고고학 조사국(Archaeological Survey of India, ASI)의 제3대 국장으로 부임하여 남아시아 고고학 분야에 체계를 확립하였고, 문화유산의 보존 관리에 공헌했다. 뿐만 아니라 모헨조다로나 하라파의 시대를 규명하여 인더스 문명을 밝혀내는 등 연구 분야에서도 큰 성과를 남겼다. 이번 글에서는 존 마셜의 일대기와 그의 주요 업적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좌) 탁실라 박물관에 걸려 있는 존 마셜 초상화, (우) 존마셜과 가족들


존 마셜은 1876년 영국 요크셔에서 태어났다. 그가 성장한 유년기의 영국은 여전히 제국주의의 정점에 있었다. 존 마셜은 어릴 때부터 역사와 고고학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 그는 이러한 관심사를 살려 덜위치(Dulwich) 대학에서 그리스 고고학 전공을 선택하였다. 또한 그리스 크노소스 발굴 현장에서 저명한 고고학자 아서 에반스(Arthur Evans)로부터 당시 가장 현대적인 고고학 방법론을 수학하며 현장 경험을 쌓았다. 1898년에는 그리스학 연구에 성과를 낸 학자에게 수여하는 폴손상(Porson Prize)을 수상하는 등, 젊은 나이에 장래가 유망한 고고학자로 인정받았다.


이런  고고학자였던 그에게 이른 나이에  기회가 찾아왔다. 1899년 영국령 인도 제국의 총독에 조지 커즌(George Nathaniel Curzon, 1859-1925)이 부임했다. 조지 커즌은 인도 제국의 개혁을 위해 다각도의 행정적 조치를 취했는데, 그중 하나가 방치되어 있던 인도 고고학 조사국(ASI)의 부활이었다. 이를 위해 26세의 젊은 신진 고고학자 존 마셜을 국장으로 임명한 것이다. 이는 ASI 역대 최연소 국장 임명이었으며, 당시 인도와 영국 모두에서 주목받는 사건이었다.


ASI 멤버들과 찍은 사진(1925)

총독의 혁신적인 선택이었던 만큼 반발도 컸지만, 존 마셜은 부임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큰 성과를 내면서 반발을 잠재워 나갔다. 첫 번째로 주목할 성과는 1904년의 고대유물보호법(Ancient Monuments Protection Act) 반포였다. 이 법을 통해 남아시아 문화유산 관리에 체계화를 가져왔다. 이 법은 1970년대까지 사용되었다. 하나 주목할 만한 업적은 1923년에 집필한 보존 매뉴얼(Conservation Manual)이다. 이 매뉴얼은 주로 야외에 노출되어 있는 유적과 같은 부동산 문화유산들을 대상으로 어떻게 관리해야 할지, 방침을 적어둔 정부 지침서이다. 보존 매뉴얼이 대단한 것은 20년간의 현장 경험이 생생하게 반영되어 있다는 점이다. 이 지침서는 100년이 지난 지금도 참고되고 있다.


(좌) 1927년 모헨조다로에서 출토된 제사장 상 레플리카(카라치 박물관), (우) 하라파 발굴조사 사진(1931)


앞서 이야기했던 행정가로서의 업적보다 존 마셜이 세계적으로 유명게 한 업적은 하라파(Harappa)와 모헨조다로(Mohenjo-Daro)의 발굴이다. 하라파의 존재는 존 마셜이 태어나기 이전부터 알려져 있었. 다만 난 편에서 다루었던 알렉산더 커닝엄은 하라파의 유물들이 불교와 관련이 있는 시기의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하지만 존 마셜은 층서학적인 관점에서 하라파의 유물을 다시 살펴 기존의 의견보다 훨씬 거슬러 올라가는 것임을 밝혔다. 지금의 관점에서 서에 따른 시기 구분은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당시에는 고고학적 상식이 많이 달랐듯하다. 결과적으로 존 마셜의 전문적인 식견 덕분에 기원전 2000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인더스 문명이 밝혀질 수 있었다. 인더스 문명의 발견은 인도 고고학에 있어서 혁명적인 사건이었으며, 세계 고고학계에서도 큰 반향을 일으켰다.


ASI의 발굴조사 사진 (좌) 시르캅 유적, 탁실라 1913-1914 (우) 산치 스투파 1917-1919


그 외에도 존 마셜은 탁실라(Taxila), 사르나트(Sarnath), 산치(Sanchi) 등 인도의 여러 중요한 불교 유적지들을 발굴하고 연구성과를 공표했다. 마셜은 매 해마다 놀라울 정도로 많은 발견을 거듭했다. 뿐만 아니라, 손상된 유적들을 복원하고 정비하여 체계적인 관리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조치하였다. 덕분에 지금까지 많은 유적들이 보존될 수 있었다.


이러한 성과를 평가받아 1914년 영국 왕실로부터 기사 작위를 받았으며, 여러 학술 기관으로부터 명예박사 학위를 수여받았다. 그는 1928년 ASI에서 52살의 다소 빠른 나이에 은퇴를 택했다. 그 이유는 그동안 발굴한 유적들에 대한 보고서를 작성하기 위함이었다. 국장직을 내려놓은 뒤에도 ASI에서 보고서 작성을 위한 특별 책임자 직을 부여받았다. 덕분에 'Mohenjo-daro and the Indus civilization(1931)', 'Taxila(1951)', 'Buddhist art of Gandhara(1960)'와 같은 남아시아 고고학사에서 중요한 저서들이 세상에 나올 수 있었다.


존 마셜과 가족 사진 (좌) 낚시 1911-1920, (우) 탁실라에서 1920년대


존 마셜은 1958년 영국에서 사망했다. 고고학 불모지와 다름없었던 남아시아 고고학을 지금의 수준으로 이끈 사람을 단 한 명만 꼽자면 역사를 통틀어 단연 존 마셜일 것이다. 그의 삶은 남아시아 고고학의 발전과 문화유산 보존에 헌신한 삶이었다. 노력과 열정을 갖추었던 천재 고고학자에게 경의를 표한다.



참고자료


John Marshall, "A Guide to Taxila", Calcutta, 1918

John Marshall, "Conservation Manual: A Handbook for the Use of Archaeological Officers and Others Entrusted with the Care of Ancient Monuments", Calcutta, 1923.

John Marshall, "Mohenjo-daro and the Indus civilization", 1931

John Marshall, "Taxila",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51

John Marshall, "Buddhist art of Gandhara",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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