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다라 이야기' 추천의 글

박기준 대사님

by 박동희

‘간다라(Gandhara)’. 오랜 세월 많은 학자의 헌신적인 탐구에도 불구하고, 이 말은 영원히 풀리지 않을 비밀의 대명사처럼 들립니다. 보통 사람들은 은은한 미소의 불상이나 알렉산드로스대왕의 인도 원정, 그리스 조형 예술과 인도 불교 철학의 융합, 혜초의 『왕오천축국전』 등의 단편적인 지식을 떠올리겠지요. 파키스탄에서 2년 남짓 지내면서 많은 유적과 유물을 둘러보았건만, 간다라는 여전히 저에게 불가사의로 남아있습니다.


앙코르와트 등 여러 유적 탐사에 참여해 온 문화유산 전문가인 박동희 박사. 그와 저는 각각 문화유산 공적개발원조(ODA) 사업 실행자와 외교관으로서 파키스탄에서 인연을 맺었습니다. 업무상 동료(同僚)였으나, 저에게 그는 동반(同伴)으로 기억됩니다. 우리는 파키스탄 지리와 인문에 대한 호기심을 공유한 사이입니다. 스카르두(Skardu), 마르단(Mardan), 촐리스탄 사막(Cholistan Desert), 만키알라(Mankiala) 등 지역을 함께 탐방한 우리는 특히 간다라가 궁금했습니다. 여행길에 ‘수천 년 전 이 땅에 사원을 짓고 불상을 만들던 이들은 어떤 사람들이었을까?’ ‘그들은 왜 무수한 불상을 깎았을까?’ ‘화려하게 꽃피웠던 문명은 어떻게 사라졌을까?’ 등 쉴새 없이 떠오르는 질문을 무심히 주고받았습니다. 염소가 배회하고 비닐봉지가 나뒹구는 유적지를 거닐며 우리는 황량한 기분에 젖기도 했었죠.


491417006_18055782476228795_1310918836598122597_n.jfif 박기준 대사님과 답사한 촐리스탄 사막의 Derawara Fort


그런데, 간다라에 대한 그의 열정은 단지 관람과 감상에 머물지 않았습니다. 이 거대한 수수께끼에 도전한 것입니다. 감춰진 진실에 다가가기 위해 험난한 여로를 감수하며 묵묵한 발걸음을 이어갔습니다. 전문가답게 지식과 경험을 동원하여 관찰하고 기록하며 탐구에 몰입했습니다. 그 결과로 이 책 『간다라 이야기: 탁실라에서 본 간다라』를 세상에 내놓았습니다. 그의 여정 일부에 동참했던 사람으로서 마치 제 책을 내는 것처럼 기쁩니다. 돌이켜보니, “불교의 핵심은 공(空)”이라고, 스카르두 ‘만탈 마애불(Manthal Buddha Rock)’ 앞에서 “티벳 불교의 유물로 보인다”고 말하던 그의 목소리가 귓전에 다시 울리고, 허물어진 성채 같은 ‘탁트이바히(Takht-i-Bahi)’의 탑정원(Stupa Court)을 거닐던 그의 뒷모습이 지금도 떠오릅니다.


Lr_Lr_DSC08084.jpg 박기준 대사님과 함께 답사한 Mantal 마애불


지은이는 전작 『앙코르 이야기』에서 보여준 ‘돌을 읽는 남자’로서의 면모와 역량을 다시 한번 발휘했습니다. 그의 예민한 눈이 편암(Schist, 片岩) 조각의 표정과 회반죽 부조의 장면을 일일이 투시하며 반짝였겠지요. 그의 맑은 정신이 역사적 상상과 인문학적 사유를 맘껏 펼쳤을 것입니다. 폐허가 된 유적을 거닐고, 부서진 유물을 살피며 그는 무엇을 읽어내고 어떤 진실과 마주했을지요. 한때 위대했으나 사라져 버린 문명의 허망, 예술의 초월성에 끌린 종교 혹은 종교의 심오함에 반한 예술……. 지은이가 간다라의 실체를 섣불리 규명하려 하기보다는 객관적인 시선으로 개별 유물에 내장된 이야기를 끌어내려고 애쓴 흔적이 보이는 책입니다. 각 스투파에 서린 삶의 희비와 조각으로 형상화된 불심, 유물에 표현된 신과 인간의 애증, 동아시아를 아우르는 문화의 전파와 변용 등은 흥미롭습니다. 고승들의 구법(求法) 드라마와 고고학자들의 집념은 감동적이기까지 하죠. 간간이 섞이는 역사적 사실과 불교 지식도 매우 유익합니다. 세밀한 묘사와 상세한 사료 그리고 풍부한 이미지 덕분에 독자들은 마치 실제로 그 장소에 가본 것처럼 실감 나는 독서를 할 수 있습니다.


이 책으로 우리는 간다라를 들여다보는 작은 창을 하나 얻은 셈입니다. 제대로 된 깊이와 재미를 갖춘 텍스트가 하나 생겼다고 생각합니다. 많은 독자가 이 책을 통해 지적 갈증을 해소할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아울러 간다라에 대한 이해가 유적 소재국인 파키스탄에 대한 관심과 애정으로까지 이어지기를 바랍니다. 한편 ‘탁실라에서 본 간다라’라는 부제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이 간다라 전체를 놓고 볼 때 아쉬움이 남지만, 이는 또 다른 기대감도 의미합니다. 꺼지지 않는 열정이 더욱 다채롭고 오묘한 이야기를 찾아낼 것이라는……. 간다라의 많은 비밀은 아직 땅속 깊이 파묻혀 있습니다. 앙코르에서 간다라로, 문명의 흥망성쇠가 남긴 흔적들을 찾아다니며 이야기의 실타래를 풀어내는 박동희 박사의 다음 여행지는 어디가 될지, 궁금해집니다.


박 기 준

前 주파키스탄 대사


DSC06780.jpg 박기준 대사님과 함께 방문한 촐리스탄 사막의 Derawar Fort 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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