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에 살면서 미술관이나 박물관은 원 없이 다닐 수 있겠지, 막연한 기대를 했던 적이 있었다. 그 기대는 마치 내 삶의 근본이 현대 도시인으로서 교양을 쌓을 수 있는 가능성으로 채워졌다는 착각과 함께 왠지 모를 뿌듯함이 가슴속에서 차오르며 괜스레 설레기도 했었다. 물론 착각은 오래가지 않을 뿐만 아니라 곧이어 망각의 단계로 넘어가버린다. 게다가 다른 차원의 세계와 마주하면 곧바로 충격에 빠지고 내가 속한 세계에 대해 신랄한 평가를 서슴지 않게 된다.
프랑스와 현대 도시인의 교양에 대한 맥락 없는 연결에 대한 착각과 망각 사이 어디쯤에서 런던에 갈 기회가 생겼다. 남편의 출장길 동행으로 떠난 런던 여행은 파리와 비교해 런던에는 어떤 교양(?)이 존재하는지에 대한 궁금증 해소에 맞추어졌다. 그리고 나는 여행 기간 동안 런던의 미술관과 박물관들을 순례했다. 프랑스 박물관과 미술관은 26세를 넘긴 성인의 경우 입장료를 지불해야 하고 나는 무료에 해당하지 않는 나이의 성인으로서 이웃나라인 영국도 당연히 같을 거라고 생각했었다. 그 당시만 해도 온라인에서 티켓을 예매하기보다 현장에서 구매하는 것이 보편적이어서 나는 순수하게 평소 가보고 싶었던 런던의 박물관과 미술관 이름과 주소만 리스트업을 하고 순례를 시작했다. 그리고 첫 방문지였던 내셔널 갤러리에서 티켓 창구를 찾아 헤맨 끝에 런던의 거의 모든 박물관과 미술관이 무료입장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벌써 10년도 훨씬 지난 시절의 추억이고 이제는 부끄러움도 잊고 그 추억을 소환할 수 있지만 그 당시 나는 적잖이 놀랐다.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영국의 국립 미술관이 입장료 한 푼 안 받고 그 많은 관람객을 입장시키다니… 자본주의 시스템에 길들여진 나로서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무료라는 건 내용이 별 볼 일 없고 그런 이유로 인기가 없다는 것과 동일하게 해석해 왔는데, 런던을 방문하는 이라면 누구나 들리고 싶어 하고 들려야 마땅한 곳이라 여기는 미술관이 입장료를 안 받다니.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기분으로 수많은 인파에 떠밀려 전시를 관람하고 나오며 난 손으로 머리를 한대 쥐어박고 싶었다.
출구 구역에 투명한 재질의 모금함이 놓여있고 관람을 마친 이들이 기꺼운 얼굴로 동전이며 지폐를 넣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래, 바로 이거였다. 세계 최고 수준의 작품을 내가 원하는 때 언제든 무료로 관람하게 되면 그 누구라도 자신의 주머니 사정이 허락하는 선에서 자발적으로 후원금을 내게 되는 거다. 나도 그 어떤 내적 갈등을 느끼지 않고 순순히 입장료에 준하는 후원금을 모금함에 넣었다. 그때 나는 그전까지 경험해보지 않았던 명성이 높은 미술관의 자유 관람과 현대 도시인의 교양이 연결되어 있는 것이 아닐까 잠시 생각했던 것 같다. 그리고 흔히들 얘기하고 쉽게 인정하는 문화의 중심지는 파리가 아니라 런던이 아닐까, 라는 의구심도 가지게 되었다.
런던 여행 이후 프랑스의 박물관과 미술관 유료 입장에 대해 불만을 가지게 되었고 프랑스 거주와 현대 도시인의 교양을 직접적으로 연결 짓는 것에 대한 (어쩌면 무지에 가까운) 착각과 망각이 단지 나의 책임만은 아니라는 억지스러운 결론도 내렸다. 그리고 런던은 나에게 어떤 형이상학적인 교양(?)으로 가는 길목의 한 지점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문화와 예술은 다른 영역과 달리 오랜 시간 반복적으로 노출되고 경험하는 과정을 통해 체득화되고 삶의 일부로 받아들여지게 된다. 내 인생에서 모짜렐라 치즈가 잔뜩 뿌려진 피자를 처음 먹어본 30년 전, 이게 도대체 뭐가 맛있다고 돈 내고 사 먹나, 어이없어했는데, 이제 피자는 간식으로도 좋고 주식으로도 좋은 나의 최애 메뉴 중 하나가 되었다. 낯설고 생경하기만 했던 치즈와 피자가 30년이란 세월을 거치며 삶의 일부가 된 것이다.
파리에는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아는 크고 유명한 미술관과 박물관들이 여럿이다. 그리고 그 미술관과 박물관들은 해마다 유명한 기획 전시를 준비하고 홍보에 열을 올린다. 이번 기회를 놓치면 크게 후회할 거라고, 다시는 이런 기회는 없을 거니까 늦기 전에 티켓을 구매하고 관람하라고 유혹을 한다. 나도 그런 홍보물을 접할 때마다 왠지 꼭 가야 할 것 같고, 안 가면 교양이 부족하고 유행에도 뒤쳐지는 현대 도시인이 될 것 같다는 착각에 종종 빠지긴 한다. 하지만, 동시에 나는 그 유례없이 특별하고 의미 있는 전시를 한 번 본다고 해서 갑자기 내 교양이 올라갈까라는 다소 회의적인 시선에 기껏 시간을 내어 전시회를 봤는데 티켓값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면 어쩌나 하는 자본주의적인 자세를 취하게 된다.
남들이 미리 정해 놓은 기준에 따라 멋지다, 좋다는 것이 나에게는 별로일 수 있고, 남들이 별로다 하는 것이 반대로 나에게는 의미가 있고 특별할 수 있다. 그렇게 나에게 멋지고 특별한 것을 발견하고 찾으려면 자주 보고 오래 보아야 알 수 있다.
세계적으로 명성이 자자한 프랑스의 박물관과 미술관들도 영국처럼 제한 없이 무료 관람할 수 있다면 좋겠다. 남들이 좋다는 것을 무조건적으로 따라가지 않고 오직 자신의 의지와 감각으로 느끼고 구축해나가는 교양을 위해서 말이다.
*작품
작가: André Derain
작품명: le sechage des voiles 돛 말리기 (19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