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해방일지
요즘은 볼만한 드라마가 없는 것 같아, 최근 넷플릭스 구독 해지 후 헛헛한 마음에 괜히 볼멘소리를 해본다.
넷플릭스는 코로나가 절정에 달했을 때 가입하여 한국 드라마와 영화 몇 편 정도 챙겨 본 뒤 풍요 속의 빈곤을 느끼며 얼마 전 구독 해지했다. 리모컨을 들고서 검색만 하다가 시간이 흘러가기 일쑤였다. 월 구독료도 모자라 아까운 시간과 감정만 낭비하고 있다는 걸 느끼고 나서다.
오징어 게임을 보고 D.P. 를 보고 지옥도 봤지만 구독 해지 후 기억에 남는 건 '나의 아저씨' 뿐이었다. 어쩌면 두 번 봐서 그럴 수도 있다. 그런데 두 번 보고 싶었던 것도 '나의 아저씨' 뿐이었다. 어릴 때 키다리 아저씨를 읽고 그 어린 마음에도 현실 세계에 키다리 아저씨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그런데 '나의 아저씨'는 나의 어린 소녀를 현재로 소환했다. 키다리 아저씨는 없을지 몰라도 '나의' 아저씨는 있을 수도 있다고.
그리고 '나의 해방일지'를 보게 됐다. 처음엔 해방일기인지 해방일지 인지도 잘 몰랐다. 그냥 '나의'라는 소유격을 보며, 내 것이라는 거네, 뭔지 몰라도 우선 안심이다. '너의'도 아니고 '우리의'도 아닌 오롯이 내 것이라고 하니까 왠지 마음이 놓였다.
첫 회를 보고서 내가 요즘 볼만한 드라마가 없다고 생각한 이유가 뭔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그리고 '나의 아저씨'와 같은 작가 작품이라는 것도 알게 됐다.
계절이 바뀌어도 일상이 바뀌지 않는 우리의 삶. 숨이 막힐 만큼 매일 반복되는 일상을 살아가는 나와 너, 그리고 그들에게 보내는 따뜻한 위로를 담은 시선은 대사가 비워진 영상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작가의 시선이 머무는 곳은 언제나 변두리 인생이다. 자신이 백조 인지도 모르고 화려한 날개를 꼭꼭 숨기고 성장하는 미운 오리 새끼처럼 내 안의 숨은 보석을 찾아보라고 얘기한다.
이제야 제목이 한눈에 들어온다. '나의 해방일지'는 나의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우리 모두의 이야기이다. 우리는 모두 각자 '나'라는 주체이고 '나'라는 주체들이 모여 각자의 '일기記'를 모두를 위한 '일지誌'로 기록하는 것이다. 일기는 나만 보고 나만을 위해 쓰는 거라면 일지는 나를 넘어 우리 모두를 위해서 쓰는 거니까.
모든 성장과 발전은 분명 '나'로부터 시작한다. 하지만 나의 성장과 발전의 텃밭은 '우리'가 사는 세상과 맞닿아 있어야 한다. 그래야 건강하고 풍성한 열매를 맺을 수 있다.
나의 해방일지는 이야기의 중심축을 이루는 삼 남매와 식구, 동료들 뿐만 아니라 동네 슈퍼 아주머니까지 주인공으로 만들어 버리고 돋보이게 만든다. 슈퍼 창 밖으로 목을 길게 쭉 빼고 호기심 어린 눈길로 미정과 구씨를 볼 때, 소주를 계산하려는 미정에게 구씨는 저런 것도(위스키) 좋아하던데라고 말할 때, 와... 진심이구나... 작가는 진심으로 쓰고 있구나, 그러니까 우리에게 진심으로 '나의 해방일지'를 쓰라고 말하고 있구나, 그렇게 작가 본인은 일지誌 같은 글을 쓰고 있구나.
記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