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식구

나의 해방일지

by 로라see

13회를 기다리는 일주일이 길게 느껴졌다.


지난 일요일 12회 마지막 장면에 미정이 뒤로 엠뷸런스가 모래 바람을 일으키며 지나갈 때 가족 중 누군가에게 변고가 있나 보다 짐작은 했지만 13회 마지막 장면에서 엠뷸런스를 탄 주인공을 공개할 줄이야.


13회 전체 이야기 흐름이 유독 엄마를 따라갔다. 그래서 그런지 보는 내내 나의 엄마가 떠오르고 내 마음을 대변하는 것 같은 엄마의 한풀이 같은 대사를 들으며 격하게 공감했다.


창희가 밥 탄다고 소리소리를 지르며 돌아누워 자고 있는 엄마를 흔들어 깨우는 순간, 흡, 심장이 멎는 것 같았다.


" 염병, 논두렁에 꼴아 박히고 나서도 밥을 안쳐야 하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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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건 뭐, 빨간 날이 있기를 해, 뭐가 있기를 해, 365일 매애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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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 이제 교회 다닐 거예요! "


하루도 쉬지 않고 공장으로 밭으로 남편을 따라다니며 일손을 보태고도 집에 돌아와 박박 슥슥 쌀을 씻어 밥을 안치고 또각또각 야채를 썰어 된장찌개를 끓여내야 했던 엄마가 독백 같은 도전장을 내민다.


미정이네 가족은 밥 먹을 때가 아니면 서로 얼굴을 마주하지 않았다. 엄마가 밥 차렸으니 밥 먹으라고 소리를 질러야 그제야 식탁으로 모이고 식사하는 동안 일절 말이 없다. 가족 모두 밥알을 꼭꼭 씹고 국을 후루룩 들이키고 반찬 접시 위에서 전투적으로 젓가락질하는 것에만 오로지 집중한다. 그들이 밥을 먹는 걸 보고 있자면 나도 숟가락 젓가락 들고 그들 틈에 앉아 있어도 전혀 이상할 것 같지 않다.


사실 이쯤 되면 가족이라기보다 식구에 가까워 보인다. 공장에서 일하는 구씨와 창희의 동네 친구도 식구의 밥상머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존재들이다. 구씨와 창희 동네 친구가 함께 밥을 먹을 때면 특별한 대화가 없어도 왠지 편안해 보인다. 엄마가 갓 지은 쌀밥에 시원한 오이냉국으로 차려낸 식탁 풍경은 가족의 경계를 넘어 함께 허기를 때우는 식구로 확장된다.


그런데, 이제 더 이상 식구에게 따뜻한 밥을 차려줄 엄마가 없다. 그리고 삼 남매는 태어나 자란 산포를 떠나 서울로 갔다.


젠더의 개념으로 엄마가 아니라 식구들 주린 배를 채워주는 존재로서 엄마는 그동안 삼 남매가 산포를 떠나지 않은 이유였던 것이다. 고단한 하루 일과를 마치고도 허리 한 번 펴보지 못하고 쌀을 씻고 밥을 안쳤던 엄마가 없는 산포에서 삼 남매는 살아갈 용기와 힘을 얻지 못한 게 아닐까.


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끼니를 때우는 매일의 식사를 함께하는 식구는 '엄마'가 없으면 애초에 존재할 수 없는 구성단위다. 혼밥, 혼술, 혼행... 뭐든 '혼'을 붙일 수 있는 요즘 우리 삶의 모습에서 엄마는 어떤 존재일까.


부부와 외자녀 단출한 3인 가족 구성에서도 나는 매일의 끼니 해결이 때론 버겁고 힘들게 느껴졌는데 나의 해방일지의 엄마를 보며 식구들 입에 부지런히 모이를 넣어 주는 어미새의 심정으로 가끔은 박박 슥슥 쌀 씻는 손에 애정을 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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