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꽃이 내렸다.

by 로라see

신기하기도 하여라.

길쭉하고 바삭 마른 실뱀처럼 생긴 밤꽃에서 동그랗고 반들반들 윤이나는 밤이 열매를 맺다니.


밤꽃이 제 몫을 다하고 지구의 중력을 이겨내지 못한 채 이토록 처량한 모양새로 땅 위로 나리면 뾰족뾰족한 밤톨 안으로 반들반들 토실한 알밤이 들어차기 시작하겠지.





간밤에 낙하한 밤꽃들이 이른 아침 한적한 골목길 위로 인간이 만들어낸 문명의 이기에 따라 가지런히 정렬되어 있다. 그 모양새가 하도 애처롭고 고달파 나는 잠시 멈추어 서성인다.




이제 여름 초입인데 바삭 마른 밤꽃들을 보고 있자니 벌써 가을이 그리워진다. 가을이 오면 속이 꽉 찬 밤송이들이 또다시 중력을 견디지 못하고 자유 낙하를 하겠지.


우두두둑 두둑 두둑 밤송이들은 한 여름에 밤꽃이 떨어진 바로 그 지점으로 굴러 떨어지겠지.


토실한 밤을 품고 입을 벌린 채 밤송이들이 자유 낙하하기 시작하는 어느 가을날, 나는 조용히 아침 산책에 나서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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