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레와 알레
제주도 올레길이 대중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했을 때 나는 제주도 방언인 ‘올레’의 어원은 정확히 모르지만, 왠지 '올래'와 '올레'가 같은 뜻인 것만 같았다. 그러니까 마치 ‘우리집에 놀러 올래?’ 또는 ‘나에게 올래?’같은 질문이 내포된 단어로 다가왔다. ‘올레’는 집에서 바깥길로 연결되는 가장 최소 단위의 ‘길’을 뜻한다. 적어도 제주도에서만큼은 바깥세상과 물리적으로 연결되기 위해 올레가 꼭 필요한 것이다.
프랑스에 와서 처음 살게 된 아파트에서 큰길로 연결되는 길이 allée였다. 그전까지는 프랑스어에서 길은 rue, avenue, boulevard가 전부인 줄 알았는데 '올레'와 발음도 비슷한 allée[알레]가 있어서 놀랐던 기억이 난다. allée도 올레처럼 집에서 바깥세상으로 연결되는 가장 작은 길을 뜻한다. allée는 aller 동사에서 파생된 명사이고 현재위치에서 외부의 어느 지점으로 '가다'라는 행위를 내포한다는 것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그러니까 프랑스어에서 집에서 출발하는 가장 작은 길을 뜻하는 allée도 제주 방언인 올레와 마찬가지로 바깥세상과 연결되는 물리적 최소 단위다.
제주도에서 '우리집에 놀러 올래?'라고 말하고 싶어서(어디까지나 나의 상상) '올레'라는 단어가 만들어졌던 프랑스에서 aller, allez, allée로 활용되는 과정에서 'allée'가 집에서 바깥으로 나는 가장 작은 길을 뜻하게 되었던 모두 물리적 이동을 전제로 하고 있다. 우리가 현재 사용하고 있는 모든 언어는 기본적으로 인간이 신체를 이용해 물리적 행위를 하는 과정에서 생성된 것이므로 어쩌면 너무나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하지만 이젠 '길'이라고 하면 무조건 물리적으로 해석되지 않는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라는 옛 속담을 떠 올려 보면 우리 조상들의 혜안에 절로 감탄하게 된다. 물리적 이동 없이도 실시간으로 시청각 영상을 통해 서로 연결되는 랜선 세계에 살면서 깊고 험한 물속 길을 살피는 것보다 사람의 마음길을 살피고 헤아리는 게 더 어려운 것이다. 그리고 그 살피기 어려운 사람 마음길 중에서도 가장 어려운 길은 바로 '내 마음길'이 아닐까 한다.
코로나가 장기화하면서 세 번째 격리와 해제를 맞이한 작년 봄 어느 날 아침 나는 거실로 쏟아지는 햇살을 맞으며 문득 운동화를 신고 집을 나섰다. 그날 이후 집에서 출발해 매일 아침 왕복 1시간가량 소요되는 거리를 걷는다. 제주도로 치면 올레이고 프랑스로 치면 allée에서 출발하는 셈이다. 나에게 이른 아침 걷기는 땅 위로 나 있는 길을 물리적으로 살피는 동시에 마음속 길을 정신적으로 살피는 시간이다. 길 위에서 온몸으로 공기를 가르고 냄새를 맡고 두 발바닥을 리듬 있게 내려치고 마찰시키는 순간 잠들어 있던 뇌가 깨어나는 감각을 느끼게 되고 어느 순간 나와 대화를 시도하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 그리고 어쩌면 그동안 애써 외면해왔을 '내 마음길'을 들여다보고 살피는 시간을 갖는다.
그 순간이 바로 나에게서 출발하는 ‘물리적 길'과 '정신적 길'이 만나는 지점이며 내가 살아 있는 한 온몸으로 감각하고 사유하고 싶은 시공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