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생태계 설계 원칙: 리스크 밸런싱 for 로컬

2025 소셜임팩트챕터(SIC) 기록

by 롤라

지난 목요일 신촌 에피소드 캠퍼스에서 열린 '2025 Social Impact Chapter' 컨퍼런스에 다녀왔습니다. 'Balance of De-Risk & Re-Risk for Local'이라는 주제로 지역 비즈니스 생태계의 핵심 딜레마를 정면으로 다룬 행사였는데, 로컬 스타트업 생태계에서 일하는 사람으로서 많은 것들을 배우고 느낀 시간이었습니다.

처음으로 MYSC 소속이 아닌 외부인으로 참석한 MYSC 행사ㅎㅎ 친정집에 온 기분!

이번 소셜 임팩트 챕터(SIC)는 첫 번째 핵심 키워드 De-Risk는 생활 인프라 구축, 재정 및 행정적 신뢰 형성, 문화 및 환경 보존 등 지역이 지속가능하기 위해 필요한 안전망을 세워 리스크를 최소화하는 전략을, 두 번째 키워드 Re-Risk는 신산업 실험, 청년과 외부인재 유입, 유휴자원 활용, 글로벌과 도시의 연결, 거버넌스 혁신 등 지역재생과 확장을 위해 새로 시도하며 의도적으로 리스크를 마주하는 전략을 다루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지역이 지켜야 할 것들을 지키면서 동시에 성장할 수 있을까?에 대한 답을 고민하고 행동하는 사람들이 모여 지속가능성을 위해 위험을 줄이되, 생동감을 위해 위험을 감수하는 로컬의 지혜를 함께 나누었습니다.

이번 행사를 주최한 임팩트투자사 MYSC에서 서울/경기/인천 외 비수도권 지역에 투자한 건이 전체 포트폴리오의 약 40%나 된다고 해요. 지역에 진심인 MYSC! (그중 제가 일조한 투자 건들도 있다는 게 조금은 뿌듯하기는 하고..�)



1. 청도의 실험: 정책 융합과 생태계 설계

첫 순서로 경북시민재단 우장한 대표님이 경북 청도의 사례를 통해 지방 소도시가 직면한 정책 단절 문제의 해법을 제시해주셨습니다. 늘 문화도시 사업, 도시재생 사업이 끝나면 건물만 남고 사람은 떠나는 악순환을, 청도에서 행안부, 고용부, 문체부, 교육부, 국토부 사업은 물론 개발공사, 금융지주, 지방소멸대응기금까지 하나의 그릇에 담아내며 '정책 융합'으로 풀고 있습니다.


수도권 출신 인재들이 겪는 주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일자리와 일거리를 파생시키는 창업, 주거, 커뮤니티, 문화가 융복합된 형태의 사회적 주택 모델을 만들어 지역활력타운 사업으로 확장시키고, MYSC와 조인트벤처를 설립해 새로운 도전들을 해나가고, 펀드 출자까지 이뤄낸 청도의 행보는 단순한 정책 사업이 아닌 생태계 구축의 좋은 예라고 생각합니다.

현재 이들이 머무는 공간이 청도에서 기존에 버스정류장으로 활용되던 공간이라고 하는데요. 시골에서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외국인 노동자, 청소년, 할머니들은 주로 지역 정책에서 소외된 분들이 대부분인만큼, 이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전달할 수 있는 공간을 혁신의 시작점으로 설정했다는 이야기가 인상적이었습니다.


다부처 사업을 수행하고 영리와 비영리를 넘나들면서, 어떻게 하면 주민 주도로 지역 변화를 만들고 지역의 어려움을 기반으로 새로운 기회를 만들 수 있을 지 고민하는 경북시민재단의 앞으로의 행보가 기대되는 발표였습니다.


2. 로컬 비즈니스의 재정의: 서피비치의 통찰

서피비치 박준규 대표님의 발표는 로컬 비즈니스에 대한 근본적 질문을 던졌습니다. 로컬 비즈니스는 지점(장소) 이해가 기반이어야 하는데, 대부분 시점(트렌드) 이해만으로 접근하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합니다.


박 대표님이 제시하는 지역 소멸 해결 방법은 3단계로 나뉩니다. 1) 존재: 기존 자영업자/소상공인이 버틸 수 있어야 함 -> 2) 유입: 새로운 사람들이 들어옴 -> 3) 발전: 지속 가능한 성장. 대부분의 정책은 2단계(유입)에만 집중하는데, 1단계가 무너지는 문제부터 해결해야 함을 강조합니다. 실제로 양양 서핑샵의 60%가 올해 문을 닫았다고 합니다.

국가 경제와 사회가 돌아가기 위한 뼈대 역할을 하는 산업을 기간 산업이라고 하는데, 기간 산업으로 정의되어야 지역에서 해당 사업체들을 지원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강원도와 같은 로컬의 경우 1차 산업(농수축산) 뿐 아니라 6차 산업, 여행 산업 등을 기간 산업으로 지정해야 이들이 지역의 지원을 받으며 지속가능하게 사업을 이어갈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3. 중기부의 정책 진화: 라이프스타일 비즈니스의 발견

중소벤처기업부 이청수 사무관님의 발표는 정부 정책의 패러다임 전환을 보여줬습니다. 2020년 50억 규모로 시작한 로컬크리에이터 사업이 현재 1,200억원까지 성장했다고 하는데요. 실제로 미국의 각 지역을 대표하는 기업의 64%가 테크 기업이 아닌 라이프스타일 비즈니스(스타벅스, 나이키 등)인 만큼, 국내에서도 라이프스타일, 로컬 비즈니스에 대한 관심과 지원이 높아지고 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이제는 산업단지 → 대기업 공채 → 일자리 단계로 대표되는 산업화 시대 모델을 지나, 창의적 스몰 브랜드 → 주변 상권 형성 → 일하고 즐길 환경 → 산업 유입 → 브랜드 탄생의 새로운 발전 모델이 등장해야 한다고 합니다. 우리는 스몰 브랜드를 과소평가하지만 수출 데이터를 보면 국내 수출 기업 중 절반 이상은 소상공인·스몰 브랜드이며, 특히 뷰티, 패션, 라이프스타일 소비재 영역에서 한국 브랜드가 해외에서 굉장히 선두주자로 자리잡고 있음을 설명했습니다.

AI 덕분에, 과거라면 수억 원이 들었을 촬영, 마케팅, 교육이 이제는 개인 단위에서도 가능해졌습니다. 기술은 대기업만의 무기가 아니라, 오히려 작은 팀에게 더 큰 기회를 주고 있습니다. 이에 앞으로의 정책 방향도 테크 스타트업과 로컬 창업을 분리하지 않고, 두 축으로 동시에 키워나가도록 설계되었다고 합니다.

글로벌 소상공인 사업, 스케일업 립스, 상권 사업, 소규모 골목상권, AI 활용 혁신 소상공인 사업(신설) 등의 지원사업을 통해 지역의 앵커스토어를 만들고, 골목 상권을 키우고, 나아가 글로벌로 확장할 수 있게 만든다고 하니, 앞으로 우리 로컬 브랜드들이 아웃바운드(해외 진출)와 인바운드(유입)를 동시에 만들며 전국으로, 세계로 뻗어나갈 것이 더욱 기대됩니다.


4. 1부 패널토의 : 안전한 혁신의 판을 짜는 사람들

1부 패널 토의에서 인상적이었던 질문 중 하나는 "로컬 생태계에서 과대/과소평가된 요소는?"이었습니다. 박준규 대표님은 로컬 제품이 도심이 원하는 최고의 것(친환경, 무농약)을 담고 있는데 '촌스럽다'는 편견에 가려져 있다는 점을 언급하며, 로컬 프리미엄 가치가 과소평가되고 있음을 이야기해주셨습니다.


이청수 사무관님은 로컬 크리에이터의 지역적 가치(글로벌하게 사람을 끌어모을 콘텐츠)가 과소평가되어있고, 과대평가 되어있는 부분은 그들의 수익적 가치(지속 가능성은 생각보다 낮음)인 것 같다고 말씀해주셨습니다. 우장한 대표님은 '위험의 크기'에 대한 오해를 말했습니다. 지역에서 감수해야 할 위험은 과소평가되고, 보상/패턴은 과대평가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뛰어난 창업가가 올 만한 환경이 부족해 현재는 개인의 선의와 희생으로 사례가 만들어지고 있다는 점을 지적했습니다.


또, 안전한 판을 만드는 최소 조건으로 언급된 "꺾이지 않는 마음가짐", "주거·교육·돌봄 인프라를 사회연대경제 방식으로 해결", "교육(사업 기획안 쓰는 법, 소비자 이해)" 모두 공감되는 부분이라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들었던 것 같습니다.


5. 지자체의 Re-Risking: 보은군의 펀드 실험

충북 보은군 김남훈 팀장님의 발표로 2부 Re-Risk 세션이 시작되었습니다. 기초지자체 공무원으로서 팀장님은 펀드라는 낯선 용어, 실패에 대한 두려움으로 어려움을 겪었지만, 기존 지원사업과의 비교를 통해 내부를 설득하는 과정을 거쳐 결국 성과를 만들어낸 사례를 들려주셨습니다. 보조사업은 일회성 예산이지만 펀드는 회수되어 재투자 가능하고, 공무원이 직접 운영하는 대신 전문 운용사가 맡으며, 무엇보다 기업 성장 생태계(컨설팅, 네트워킹, 후속 투자)가 자동으로 붙는다는 점을 강조하셨다고 합니다.


"도전하는 건 두렵지만 새로운 걸 만들려면 도전해야 합니다. 실패를 피하면 아무것도 배우지 못합니다"라는 팀장님의 말은 지역 공무원의 용기가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주었습니다. 실제로 보은군은 아시아 최초로 군 단위에서 펀드에 출자한 지자체가 되었고, 기업 유치 공간과 지원금을 함께 설계하며 진짜 생태계 조성을 위해 애쓰고 있다고 합니다.


6. 금융의 통역사: 사회가치연대기금의 역할

한국사회가치연대기금 김종훈 본부장님의 발표는 8년간의 지역 투자 여정을 압축해서 보여주었습니다.

투자자들은 거리가 멀고, 출장비가 많이 들고, 사이즈가 작은 지역 투자를 흥미로워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경남 임팩트 펀드로 투자를 받은 기업들이 지금은 원금 회수가 확실시되며 지속 가능성을 입증하고 있습니다. 강원 펀드에 투자한 서피비치는 양양을 대표하는 로컬 크리에이터 브랜드가 되었고, 개인 투자자 20명이 함께 참여한 이 펀드 역시 원금 회수가 예정되어 있다고 합니다.

전주시와의 2년 간의 여정도 인상적이었습니다. 2023년 2월 포럼에서 처음 만난 이후 조례 개정, 전략 수립, 기금 규모 설정, 위원회 구성의 모든 과정에 함께했고, 공무원 인사이동으로 처음부터 다시 설명하는 좌절도 겪었지만, 결국 2024년 첫 투자 기업이 탄생했습니다.


경남(2020), 강원(2021), 경북(2021), 전주(2024)로 이어진 지역 펀드 조성 과정에서 본부장님이 강조한 것은 '통역'이었습니다. 금융 언어와 지역 생태계 언어 사이의 간극을 메우는 것이 LP 투자자로서 가장 중요한 역할이었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7. 플레이어의 관점: 온세까세로의 성장 전략

투자 유치 기업의 생생한 현장 이야기를 들려주신 원주의 온세까세로 김준우 이사님의 발표가 마지막으로 이어졌습니다. 온세까세로가 2018년 법인 설립 후 2020년 9,700만원 매출에서 2024년 45억원까지 성장할 수 있었던 비결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가장 먼저 이들은 지역에 매몰되지 않고 전국(CU, GS 편의점 등)을 거래 타겟으로 했습니다. 그리고 못난이 농산물 활용, 강원 우유 100% 사용, 황금알밀 계약재배로 농가 판로 책임을 지며 사회적 가치를 중요시했고, 유통비용을 제거하고 월 1회 공장 내 마켓을 열어 재구매율 90%를 달성하는 등 직영 플리마켓을 운영하는 시도를 해오고 있습니다.


특히 인재 리스크 해결 방식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지역에 인재가 없다"는 불평 대신, 동종 업계보다 30-40만원 높은 급여, 성과급, 해외여행 등으로 이직률을 낮추고 직원들의 애사심을 키웠다고 합니다. "인재는 우리가 만드는 것"이라는 이사님의 말씀이 기억에 남습니다.


8. 2부 패널토의 : 위험을 감수하는 혁신가들

두 번째 패널토의에서는 지역 투자는 흔히 ‘위험하다’는 말로 시작되지만, 그 본질은 위험 회피가 아니라 불확실성을 감수하는 선택이라는 점이 와닿았습니다. 위험(Risk)보다는 잘 모르는 상태(Uncertainty)에 가깝고, 그 불확실성 속에서 경험과 기회를 만들 것인가가 핵심이라는 김종훈 본부장님의 이야기가 기억에 남습니다. 지역에서 이 불확실성을 감수하며 펀드 출자하는 사례가 나오고 있지만, 단순히 ‘펀드를 만들었다’는 행정 성과가 아니라 기업이 실제로 들어와 머물 수 있는 공간, 관계, 추가 자원을 함께 설계할 때 비로소 생태계가 작동한다는 점도 공감됩니다.


지역 기업을 바라보는 투자 기준도 분명히 제시됐습니다. 단기적으로 10배, 20배 성장을 기대하기는 어렵더라도, 지역에 깊이 착근하고 공동체의 지지를 받는 기업은 쉽게 무너지지 않습니다. 동네 맛집처럼 대체 불가능한 역할과 상징성을 가진 기업은 2~3배 성장만으로도 회수와 선순환 사례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기업의 입장에서 ‘좋은 위험’은 존재하지 않지만, 위험을 함께 견뎌주는 사람이 있을 때 지역 기업은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습니다.


9. 투자는 확률의 게임인가, 실력의 게임인가

행사 말미 MYSC 김정태 대표님의 클로징 키노트는 15년간 281개 스타트업에 투자하며 얻은 통찰을 명확히 제시해주었습니다. 투자자들은 대부분 'A폴더'(누가 봐도 멋진 아이템, 현재 최적화 팀)에만 집중하지만, 정작 극단적인 멀티플은 'C폴더'(이게 될까 싶은 모델, 미래 최적화 팀)에서 나온다는 것입니다. 트레쉬버스터즈는 다회용기 세척이라는 개념조차 생소하던 시절 투자받아 현재 66배 멀티플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는 벤처 투자가 평균 분포가 아닌 멱함수 법칙을 따른다는 본질적 이해에서 출발합니다. 투자자들은 손실 회피 성향 때문에 본능적으로 C폴더를 만들기 꺼리지만 진짜 포트폴리오는 De-Risking(A폴더)과 Re-Risking(C폴더)의 균형에서 나옵니다. 시간이라는 변수를 넣으면, 지금 최적화된 것은 평균으로 회귀하고, 지금 바닥인 것은 상승할 여지가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함을 다시 한번 깨닫는 시간이었습니다.


10. De-Risking과 Re-Risking, A폴더와 C폴더의 균형

로컬의 안전한 판을 짜고, 혁신을 감수하는 사람들과

로컬에서 서울식 성장 공식(매출 10배, 직원 100명, IPO)을 강요하는 순간, 지역 창업가들은 실패자가 되고 맙니다. 지역에는 지역만의 시간, 지역만의 관계, 지역만의 가치가 있습니다. 준규 대표님의 표현대로 로컬에서는 "1년에 120일만 일하는 삶"을 인정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어떻게 하면 더 많은 돈을 벌고, 빠르게 엑싯을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서울/수도권의 창업가들과 달리 지역의 창업가들은 엑싯을 원하지도 않고, 엑싯이 뭔지도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들이 원하는 건 지역에서의 라이프스타일을 지속하는 것, 지역에 필요한 제품과 서비스를 공급하며 삶이 유지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결국 지역 혁신 생태계의 핵심은 '균형'이라고 생각합니다. De-Risking과 Re-Risking, 존재와 유입, 수익적 가치와 사회적 가치, A폴더와 C폴더. 어느 하나만으로는 생태계가 작동하지 않습니다. 나는 앞으로 어떤 폴더를 만들고 싶고, 그 폴더 안에 누구의 이야기를 담을 것인지 고민하게 되는 귀한 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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