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적으로 바라보는 세상은
온몸에 화상을 덴 듯
따끔한 세상이다.
언어, 나이, 성별, 직위,
수많은 차이는
현실적으로
차별을 불러온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을
알고도
혹은 모른 채
희화화되어 자연스레
스며든다.
그렇게 스며들면
익숙해지고
아무렇지 않아 진다.
누군가는 굳은살을 벗겨내어
따끔한 치료를 해주고
원래의 탱탱한 살결을 찾아줘야 한다.
부드러운 외면을 단단히 지탱하는
강렬한 내면의 정신력은
탈피를 하는 바닷가재처럼 가끔씩
허물을 벗겨줘야 한다.
인간은 외면과 내적 모두를 갖춘
양립적 존재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매일 옷을 갈아입듯
매일 내면의 혼돈을 잠재울 순 없어도
자의적이던 타의적이던 한 번씩은 내면의 속삭임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하지만 탱탱하다는 의미와
따라오는 칭찬의 말은 한때이다.
단순한 탱탱의 말이 이름이 돼버린
탱탱볼조차
시간이 지나면 탄력을 잃는다.
우리는 이것에 익숙해져야 한다.
선망의 반대편에 익숙해져야 하고
이러한 절망을 절망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아기가 태어날 때 어머니는 괴로웠고
태아 또한 괴로웠다.
그와 동시에 환희와 기쁨이 따라왔다.
우리가 첫걸음마를 뗐을 때
부모들의 기쁨과 함께 당신의 발에는 엄청난 부담이 따랐으리.
바다가 울렁이는 것은 아무렇지 않은 것이다.
파도가 크든 높던 바다는 움직이는 것이 당연한 것.
바다는 파도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개개인의 위대한 별 볼일 없이
투명하게
납작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은
내면의 파도를 매일 일상이라 생각하며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