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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김정 Aug 20. 2024

자동차의 온기를 느끼며

얼마전 자동차를 중고로 팔았다.

연식도 됐고, 이쯤에서 연비라든지 여러가지 사정을 고려해보고, 마음에 두었던 다른 중고차로 대체하기 위함이었다.               

없어보면 소중함을 안다더니, 물론 그런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떠나보내고나서 그 자동차가 가끔 생각날 때가 있다.     


"이제 가도 되겠습니까?"     

"아, 네."     

중고차 딜러분이 자동차를 운전해 주차장을 나서는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포장도 채 뜯지 않은 채 저 차가 처음 아파트 주차장에 왔을 때라든지, 아이의 카시트를 설치하느라 진땀을 뺀 일이라든지, 차에서 별 중요하지도 않은 일로 아내와 부부 싸움을 한 일이라든지, 한여름 장마 폭우의 도로를 헤맨 일이라든지 벼라별 기억이 난다.        

기어코 아내는 눈물을 찍어냈다.   

             

그러고보면 자동차라는 물건은 무언가의 기억을 쌓으며 우리 곁에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물론 다른 물건도 그런 기억의 퇴적 작용 같은 게 있는데 눈치채지 못할만큼 작은 건지도 모르겠다.

말없는 금속 덩어리라고 해도 추억도 쌓이고, 정도 쌓이고, 화를 내도 잘 받아주고, 무슨 일이 있어도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음, 그렇다.     


예전에 무슨 일인가로 강아지만 옆좌석에 태우고 어둑한 새벽에 혼자서 경부고속도로를 내달렸던 일이 있다.

일요일 새벽이라서 그런지 신갈분기점을 지나는데도 주위의 차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적었다.

내 눈을 의심했다.     

"이렇게 차가 없을 수 있다니."     

그저 자동차와 옆좌석의 강아지와 나만이 도로 위를 달렸다.

가로등은 꾸벅꾸벅 졸고 있었고, 저 먼 하늘 저편 샛별이 파리하게 빛났다.               

음악은 클래식이었다. 바흐의 무반주 첼로였다.

일부러 들으려 했던 건 아니고, 손이 가는대로 cd를 꽂은 것이다. 내게는 자동차전용 cd가 몇개 있다.

그렇게 어둑한 새벽에 바흐의 음악을 들으며 가도 가도 끝없는 도로를 달렸었다.          


그때 나는 돌연 자동차의 온기 같은 것을 느꼈다.

온몸으로 번지는 따스함이었다.     

이게 무슨 말인가 할 것이다.     

자동차 온기.     

자동차 난방 같은 게 아니었다. 때는 따스한 봄이었다. 난방을 켤 리 없었다.

분명 온기 같은 게 전해져왔다.

자동차 안에서 열심히 일을 하는 엔진이라든지, 라디에이터라든지, 그런 것의 온기였을지도 모른다.     

사실 온기의 실체를 정확히 표현할 수는 없다.

그건 마치 어떤 특수한 장소에 어떤 특수한 시간이 더해져 전해져 오는 가상의 교환적인 따스함 같은 것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난 그때 분명 그 온기를 느꼈고, 자동차 안에 들어와있다는 기분을 실감했다.     

'우리는 함께 있다' 라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나와 강아지와 자동차.

자동차란 우리에게 애초에 그런 존재였던 걸까.     


아무도 없는 새벽의 고속도로를 강아지와 함께 단 둘이 타고서 우리 뒤로 관목들이며, 이름 모를 숲이며, 강이며, 새벽 어스름 빛을 받은 구름이며, 함께 쌓아왔던 기억이 지나가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그리고 우리는 바흐의 음악을 들으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달려서 가야 했던 목적도 이상하리만치 없어져버렸다.

어디로 가야 하는지, 왜 가야 하는지 하는 것들.               

마치 내가 인생을 살아왔던 것은 이런 느낌을 만나기 위해서라고 말하는 것만 같았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그런 느낌은 늘 우리 곁에 있었는데 이렇게 불쑥 찾아오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얼마전 회사 지인 장례식에 갔다왔다. 일찌감치 퇴사한 분이라 잊고 있었다.     

이래저래 바쁘다보니 온라인 셀러 일을 한다는 소식만 들었고, 구체적으로 어떻게 사는지 몰랐었다. 수년전에 한번 안부차 통화한 게 전부다.     

아직은 젊지 않나 하는 나이에 돌아가셔서 장례식장은 아무래도 분위기가 가라앉았다.      

부조금만 내고 장례식장을 나오는 길에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는데, 조그만 동네 호프맥주집이 보였다.    

생맥에 노가리나 마른 안주, 골뱅이, 번데기 이런 게 나오는 곳이다. 과일 안주도 아마 없고, 치킨도 없고, 타코 같은 것도 없는 심플한 곳이다.     

그러고보니 젊은 시절 그 분도 술을 참 좋아해서 자리를 빛낸 일이 많았다.     

술을 잘 마셨던 것은 아니다. 사람들과 어울려 술 마시는 분위기를 좋아했던 분이다.     

그래서 늘 마지막까지 남기 일수였다.     

참 징한 분이라 생각했다.      

기어코 맥주에 골뱅이나 노가리 안주가 나오는 허드레 맥주집까지 남아서 주정같은 얘기에 귀를 기울이기도 하고, 꾸벆꾸벅 졸기도 하고 그랬던 모습이 떠오른다.     

나는 정류장 그 맥주집 안에서 그가 앉아있는 실루엣을 본 것 같기도 하다.     

마침 마을 버스가 와서 차에 올라탔다.     

차 안은 좌석이 비어 썰렁하다.     

그런데 빈좌석 하나에 털썩 앉는 순간, 그때도 내게 이상한 따스함이 밀려들어왔다.    

 

마치 내가 이걸 만나기 위해 오랫동안 기다려왔던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그렇게 우리는, 자동차와 나는 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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