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당에서 카페 봉사를 하면서 맘이 삐뚤어진 어느 날에
카페 쉘부르. 내가 처음으로 커피에 눈 뜨게 되었던 곳이다. 스물세 살 봄이었다. 고등학교 때 좋아했던 선생님을 찾아뵀을 때, 식사를 하고 나서 선생님께서 저기 가서 커피 한 잔 하자며 데려가셨다. 다양하고 생소한 이름의 커피들이 많았다. "어떻게 골라요?" 하고 선생님을 쳐다봤는데, 선생님께선 머쓱해하시며 "그냥 대충 읽어보고 있어 보이는 걸로 골라~" 하셨다. 그래서 고른 커피가 '킬리만자로'라는 이름의 커피였는데 그 커피에 반했다. 그때의 맛이나 향이 정확히 남아있지 않지만, 그 매력에 푹 빠졌던 것 같다.
2023년 2월 말 경부터 성당에 다니기 시작해서 7월 말에 세례를 받았다. 그리고 8월부터 '레지오 마리에'에 입단했다. 대모님께서 신앙을 알아가고, 신앙생활을 적응하는 데에 도움이 될 거라고 한 번 해보면 좋겠다고 추천해 주셨다. 레지오 단원들은 매주 활동보고를 하게 된다. 묵주기도를 얼마나 했는지, 신앙과 관련된 활동들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얼마나 했는지를 항목별로 헤아려 보고한다. 처음에 나는 묵주기도도 할 줄 몰랐고, 다른 신앙활동도 별로 없어서 지구를 살리는 환경과 관련된 작은 실천들을 보고하고 있었다.
그러다 성당 카페에 앉아 있던 추운 어느 날, 카페봉사를 하시는 한 분께서 젊은 사람이 카페 봉사 해주면 좋겠다며 나를 바라봐주셨다. 함께 계셨던 대모님께서도 봉사활동을 하면 레지오 활동 보고도 할 수 있으니 한 번 해보는 것도 좋겠다고 권해주셨다. 카페는 자율적으로 운영하고 있어서 크게 어려울 건 없었다. 기부금을 정산한다거나 머신을 깨끗하게 관리하고 원두를 보충해 주는 정도의 역할만 하면 되는 거라 나도 기꺼이 하겠노라 대답했다. 커피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카페봉사를 하는 일이 즐거웠다.
봉사를 시작하고 한 두 달 지났나? 누군가 커피머신을 성당에 기증을 하고 사용법을 가르쳐주겠다고 나섰다. 커피를 좋아하시는 신부님께서도 흔쾌히 허락하셨고, 그 분위기에 나도 번쩍 손을 들며 배우겠다고 자처했다. 일단 아메리카노와 카페라떼를 판매할 계획으로 우리는 에스프레소를 추출하는 법과 라떼 스팀 내는 법을 배웠다. 나는 그게 재미있어서 아예 학원에 나가 바리스타 자격증도 따면서 적극적인 태도로 뛰어들었다. 배운 것들을 활용하면서 나는 이 봉사활동이 너무 즐거웠다.
무엇 때문이라 딱 말할 수는 없지만 어쨌거나 나는 한 학기 동안 일을 쉬면서 커피를 배우고 봉사를 하였다. 바리스타 2급, 1급을 따고 라떼아트나 센서리, 브루잉, 로스팅까지 아주 작심하며 커피를 배웠다. 그리고 총무까지 맡으며 봉사도 더 열심히 하게 되었다. 사람들은 그런 나를 보며 이게 다 주님의 뜻이라고 했다. '이렇게 젊은 사람이 와서 성당에서 이런저런 봉사를 해주니 얼마나 감사하냐, 카페 봉사 누가 하냐고 그렇게 걱정하더니 이 봐라 주님께서 다 알아서 보내주신다' 하시며 눈만 마주치면 예뻐해 주셨다.
카페봉사자는 다섯 명이다. 한 손안에 쏙 들어오는 적은 인원 같지만 우리 다섯 명은 모두 다른 이유와 생각으로 이곳에 모여 각자의 욕망을 실현하고자 노력하고 있는 듯하다. 서로 생각을 공유하고 같은 생각을 가지기 위한 노력을 단 한 번도 하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갑자기 생긴 커피 머신으로 급하게 필요한 것만 배워서 일을 시작한 까닭에 우리는 일에 대해 서로 잘 모르고 각자 배정받은 시간에 각자 일을 하면서 각자 생긴 요령으로 각자의 방식으로 나름 열심히 일을 하고 있기 때문에 더 그렇다.
커피추출하는 방법을 배우고 스팀을 배워 라떼를 만드는 그 과정은 우리 모두에게 대단히 유익했다. 학원에서 비싼 돈을 내야 배울 수 있는 과정이란 것을 알기에 더 열심히 배웠다. 또 앞치마를 입고 커피를 내리고 스팀을 쳐서 라떼를 만들면 사람들이 멋있다고 해주고 신기하게 바라봐 주기도 하니까 얼마나 뿌듯한가. 하지만 그 뒤에는 재고정리도 해야 하고, 기계세척도 해야 하고, 설거지도 해야 한다. 스팀행주는 자주 삶아야 하고, 그라인더 세팅도 해야 한다. 원두며 우유며 얼음을 필요할 때마다 구입하고 채워둬야 한다.
여기에서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더 깔끔하게 정리하자는 누군가의 의견에 대해 바쁜 와중에 봉사를 하는 건데 이런 거까지 잔소리를 들어야 하냐며 불만을 토로했다. 친분에 따라 돈을 안 내고 먹는 사람들이 있다는 얘기가 돈다는 말에 대해 '내가 장사꾼이냐, 장사하러 온 게 아닌데 왜 장사를 강요하냐. 돈을 안 내는데 어떻게 돈 내라고 말을 하냐'며 돈 받는 것에 신경 쓰면서까지 봉사하고 싶지는 않다며 차라리 그만두겠다고 하였다. 여름이니 스팀행주를 삶아야겠다는 얘기에, 자신은 절대 못하겠다고 나 몰라라 했다.
이렇게 뭘 많이 해야 하는지 몰랐는데 할 일이 너무 많다, 그러니 거기서 또 더해라 더해라 부추기지 말라며 서로의 의견들을 잔소리로 치부하며 회의에서 나오는 얘기들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 그러면서도 맛있게 먹던 사람들이 어느 순간부터 맛이 이렇다 저렇다 하며 컴플레인을 건다며 푸념을 했다. 그래서 우리의 실력에 한계는 있겠지만 적어도 잘못 내리거나 실수로 내려둔 커피는 뒀다가 팔지 말자고 하였는데, 원두가 아깝다, 재료가 아깝다는 이유를 들며 그 말조차 무시해 버렸다.
뭘 어째야 할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내 입장에서는 하기 싫다는 다른 일들을 내가 감당하면 된다는 생각인데, 내가 해결하지 못하는 부분들에 대해서는 스트레스를 받았다. 누가 봐도 제대로 만들지 못한 메뉴들을 돈이 아깝다는 이유로 팔아버리거나, 친한 사람에게 돈 내라고 말 못 해서 웃으며 그냥 줘버리는 문제들에 대해 내가 뭘 어쩐단 말인가. 이렇게도 말해보고 저렇게도 말해보고, 부탁도 해보고 사정을 해봐도 아무 소용이 없다. 대답은 알겠다고 하면서도 바로 돌아서면 똑같은 상황이 반복된다.
그러다 나는 터져 버렸다. 이렇게는 못하겠다 싶었다. 왜 이렇게 단 한 명도 서로의 말을 듣지 않고, 무조건 자기 고집대로만 하겠다고 하는 거냐, 하기 싫은 것도 해야 하는 일에 포함되어 있으면 가리지 말고 하는 거지, 죽어도 행주를 못 삶겠다고 하면 행주만 안 삶겠다고 할 게 아니라 그냥 이 봉사 자체를 못하는 거지, 돈을 못 받겠으면 돈을 내고 팔아야 하는 이곳에서는 봉사를 하면 안 되는 거지, 본인이 손님인데 이런 커피를 주면 기분이 좋겠냐고. 내 카페도 아니면서 모두 다 내쫓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정말 내 딴엔 참을 만큼 참았다. 글로 쓰기도 짜증 날 정도의 무례한 태도들을 그냥 참아 넘겼고, 궂은일도 당연히 내 일인 양 했다. 자신들은 일을 하며 봉사를 하니 일을 하지 않는 네가 하나라도 더 하는 게 당연하지 않느냐는 태도고, 자신들은 가족을 돌보며 봉사를 하고 있으니 돌볼 가족 없는 네가 내가 할 일까지 더 많이 하는 게 당연한 게 아니냐고 대놓고 말하기도 한다. 본인이 감수하는 건 없으면서 이것도 해라 저것도 해라 네가 얼마나 제대로 하는지 하나하나 체크하겠다 하는 태도로 이런저런 요구와 간섭도 많다.
도저히 참을 수 없어서 그만두어야겠다 생각했다. 커피를 다루는 이 일이 너무나 즐겁고 기쁘지만 이 사람들과 내가 뭘 해보겠다는 건가 싶어 회의감이 들었다. 회의 때 나누는 서로의 얘기에 잔소리로만 치부하고 자신의 요구들만 말하기 바쁘고, 서로가 내놓는 매번 같은 제안에도 그냥 네네~! 하고는 각자 마이웨이였다. 하기 싫은 것에 대해서는 절대 못한다고 세게 말하면서도 절대 봉사를 그만두겠다는 말을 하지는 않았다. 그럴 거면 차라리 그만 두지. 나는 참 이해되지 않았다. 물론 지금도 마찬가지다.
수녀님께서 이런 상황을 눈치채셨는지 그런 말씀을 해주셨다. 뭐든 처음 시작하면 삐걱거리고 문제도 많고 탈도 많다, 하지만 그 시간을 잘 견디면서 묵묵히 지나다 보면 다 양분이 되어 성장한다는 거다. 위안이 되기도 하고, 답답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견진성사를 받을 때 나는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는 곳이라면 어디든 주저 않고 가서 뭐든 내게 허락하시는 일을 하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이렇게 화합되지 못하는 곳에서 이렇게 엉망진창인 이곳은 주님께서 허락하신 곳이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어디든 가겠다던, 뭐든 하겠다던 나는 온데간데없다. 거룩할 것 같은 그 태도와 마음가짐은 엿 바꿔 먹은 지 오래다. 눈 뜨면 카페에서 짜증 나는 일들이 떠오르고, 입만 열면 그 불만들이 터져 나온다. 이럴수록 기도하고 마음을 다잡아야 하는데 기도도 하기 싫다. 성체조배를 하러 성당에 가도 날씨가 너무 더워 땀이 줄줄 흐르니 앉아있기도 힘들고 그래서 가기도 싫다. 이런 모습의 내가 견딜 수 없이 싫다. 이게 원래 나인건지 아님 그냥 화나서 이렇게 된 건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너무도 싫다.
예전에 친구가 누가 자꾸 착한 척하는 게 맘에 들지 않는다며, 자기가 언제부터 착했다고 저러냐고 너무 재수 없지 않냐 했을 때 나는 이렇게 말했다. "태어나면서부터 걷는 인간은 한 명도 없지만 인간이 직립보행한다는 말에 반박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다. 뭐 누구 사기 쳐 먹으려고 하는 착한 척이 아니라 그냥 평소에 착하지 않으면서 자꾸 착한 척하는 저런 건 그냥 착한 사람 되려는 연습이라 생각해 주자. 그러다 정말 착한 사람이 될 수도 있잖아." 내가 한 말이지만 좋은 말이다. 지금 나에게 적용해야 한다는 것만 빼면.
신앙인으로 자라나는 과정도 결국은 그런 것 같다. 인정하고 싶지 않은 나의 나쁜 본성들이 튀어 올라올 때 그 모습대로 그냥 살아버리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깨닫고 그 옷을 벗고, 깨끗한 신앙인의 옷을 다시 잘 챙겨 입는 것. 또 어느 순간 스멀스멀 나의 본성들이 삐져나와도 그 시간을 길게 두지 않고 얼른 재빠르게 다시 신앙인의 옷으로 잘 갈아입는 것. 재빠르게 재빠르게 옷 갈아입는 연습을 하다 보면 갈아입은 그 옷이 원래 그 사람의 옷이겠지 하게 되겠지.
지나가는 말로 신부님께 푸념한 적이 있다. "견진성사까지 받고서도 예전의 나나 지금의 나나 다를 바가 없이 살아가려는 제 모습이 너무 실망스럽고 한심하게 느껴져요." 신부님께서는 신앙 안에서 받은 것이 아무리 많아도, 하느님의 은총을 많이 받는다고 해도 그걸 갈고닦는 건 결국 자신의 몫이라 하셨다. 하루아침에 뭐가 짠~ 하고 이루어지진 않는다고, 좋은 것도 싫은 것도 하느님께 내어드리고 내 뜻대로 되는 일이 없음을 받아들이고 하느님께 의지하는 삶을 배워 가는 것은 많은 연습이 필요한 일이라 하셨다.
그래 맞지. 다 옳으신 말씀이지. 하지만 싫다. 그냥 싫다. 그러면서 맘 한 편에선 결국 수긍하고 내 마음을 다스리려 하게 될 것이라는 걸 믿고 있다. 이런 나쁜 상태를 얼마나 오래 지속하다 돌아서느냐가 결국 나의 신앙상태의 척도가 되리라는 것을 알기에 결국은 가다듬게 되겠지. 생각해 보면 그렇다. 기분이 좋을 때 뭐가 되겠다느니, 어떻게 하겠다느니 하는 다짐 같은 건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다. 지금 내가 딱 그렇지 않은가. 나 좋은 것 앞에서나 주님의 뜻이란 말이 감사하지, 나 싫을 땐 그 말도 그저 가스라이팅 같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