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에 대해 생각하다 하게 된 생각

by Elle
생각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한다


프랑스 소설가 '폴 부르제(Paul bourget)'가 했다는 이 말은 아주 많은 곳에서 인용된다. 이 말에 대해 한참 생각했다. 아니 그럼 사는 대로 생각하는 건 나쁜 건가? 나쁜 생각을 하거나, 혹은 더 좋은 생각을 하고 있지 못할 때 우연히 한 어떤 선택은 나의 생각보다 더 좋은 결과를 가져올 때도 있는데 그런 건 다 무시한 건가? 대체 저게 무슨 소리야? 극 J의 계획성을 강조하는 그런 말인가? MBTI, P들에게 반발하라고 외치고 싶은 그런 맘이 든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좋은 말이라고 많이 인용하는 데에는 내가 깨닫지 못한 의미가 있겠지 싶어 원어로 찾아보았다.


Il faut vivre comme on pense, sinon tôt ou tard on finit par penser comme on a vécu.


네이버 사전을 찾아가며 해석해 보면 '생각대로 살아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머지않아 결국 우리가 살아온 대로 생각하게 될 것이다' 오~ 뭔가 살벌한 느낌이 온다. '사는 대로'라는 말과 '살아온 대로'라는 말은 비슷한 것 같지만 뭔가 다르다. 사는 대로 산다는 건 과거에서 현재로 오고 있는 지금 이 방향 대로 살아가게 된다는 말 같지만, 살아온 대로라는 말에는 왠지 미래로 나아가지 못할 것이라는 한계가 담겨 있는 느낌이 든다. 게다가 'tôt ou tard'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조만간. 언젠가는'이라는 뜻인데 그 느낌을 반영한다면 지금까지 살아오던 방향이 깨져버리고 무너져버릴 것 같은 위기감도 느껴진다.


아무튼 이 문장을 해석해 보면서 우리말의 '생각'과 생각하다로 해석되는 프랑스어의 'penser'가 조금 다른 느낌이 말이란 생각이 든다. 우리말의 '생각'에는 영감이나 아이디어, 상상의 영역도 자연스럽게 포함된 느낌인데, 프랑스어 'penser'에는 의도나 목적을 가지고 있는 것에 대해 뭔가를 결정하고 판단한다는 느낌으로의 생각이 강조된 느낌이다. 물론 이건 사전을 뒤적이며 드는 나의 생각이므로 사실인지 아닌지에 대해서는 판단할 수는 없다. 그리고 그렇다는 가정을 하면 저 문장은 매우 자연스럽게 삶의 방향성을 설정하라는 의미가 선명해지는 것 같기도 하다.

생각대로 살지 않으면, 결국 자기가 살아온 대로밖에 생각하지 못하게 된다.

내 느낌을 반영한다면 이렇게 말해보는 게 좀 더 선명한 느낌이 든다. 그런데 의미를 선명히 이해했다는 기분이 드는 순간 또 장애물이 생긴다. 생각이라는 것은 내 안에서 하는 것인데, 내가 살아온 대로 말고 그 이상의 것을 내가 할 수 있는 건가? '나'라는 사람이 할 수 있는 생각은 결국 '나'라는 사람의 한계에 갇혀있을 텐데 무슨 생각을 어떻게 해서 내가 살아온 틀 밖으로,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말이지? 그렇다면 결국 나의 영역을 뛰어넘을 만한 삶의 지향을 세워두지 못하면, 결국 우물 안 개구리처럼 나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는 삶을 살고 말 것이라는 뜻이라는 거다.


나는 어떻게 살고 있지? 나에게 삶이 지향이 있나? 하루하루 되는대로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에 주눅이 든다. 그게 아니라고 말하고 싶은 충동에 내 기억과 생각들을 헤집다가 뭔가 떠올랐다. 올해 초, 2024년 1월 중순쯤 나는 처음으로 '피정'이라는 것을 가보게 되었다. 하루 피정이었는데, 영성관에 가서 강의를 듣고 서로 묵상도 나누고, 점심도 같이 먹고 미사도 드리고, 기도도 하는 그런 일정이었다. 그날 미사는 나에게 아주 특별했다. 결코 잊을 수 없는 일이 그날 있었기 때문이다. 신부님께서 올해 첫 피정이니 오늘은 안수를 해주겠다고 하셨다. 미사 중에 안수를 받아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모두 장괘틀에 무릎을 꿇고 기도하고 있으면 신부님께서 다니시며 머리에 손을 얹고 안수를 주시겠다 했는데 나는 그날 아주 간절히 기도했다. '저에게 지금 필요한 것을 꼭 주세요' 왜 그렇게 간절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너무 간절히, 아주 애타게 나는 그렇게 기도하고 있었다. 그런데 신기한 일이 일어났다. 신부님께서 내 머리에 손을 얹으시는 순간에 뭔가 레이저 바늘로 정수리 한가운데를 날카롭게 찌르는 느낌 같은 것을 받았는데 그 레이저 바늘 끝에는 "늘 깨어 기도하라"는 말씀이 달려있었다. 뭔가 번쩍 하며 "늘 깨어 기도하라"는 말씀이 나에게 들어왔다. 처음 느껴보는 일이었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영성관 피정은 한 달에 한 번 있었다. 지인의 권유로 거의 억지로 간 거나 마찬가지였는데 그 느낌 때문에 나는 다음 달에도 가고 싶다고 생각했다. 다음 피정 때까지 나는 늘 깨어있지도, 기도하지도 못했다. 그에 대한 죄책감 같은 어떤 무거운 마음이 들었지만 그런 채로 2월 중순에도 피정을 가게 되었다. 그 피정에서 다른 것들은 생각나지 않는다. 영성관에 도착하면 말씀을 써 둔 종이를 뽑고, 그 말씀을 묵상하도록 하는데, 그날 뽑은 말씀이 죄책감 같은 무거운 마음을 덜어주고 내 마음을 가뿐하게 해 주었다는 것만 기억난다. 내가 뽑았던 말씀은 이거다. "나는 착한 목자다. 착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내놓는다"


그리고 그날 밤에 신기한 일이 있었다. 자려고 누웠는데, 잠들기 직전, '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 님 기뻐하소서...' 하면서 내가 왜 성모송을 외지? 하며 잠들었다. 그리고 다음 날 눈을 딱 뜸과 동시에 '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 님 기뻐하소서 여인 중에 복되시며 태중의 아들 예수님 또한 복되시나이다.' 하다가 어! 내가 왜 눈 뜨자마자 이걸 하지? 했다. 평소에도 묵주기도를 잘하지 못했고, 레지오 활동보고용으로 억지로 억지로 하루 5단 겨우겨우 하고 있던 중이었다. 게다가 나는 잠들기 전에, 일어나자마자 성모송을 외워야지?라는 생각을 하지도 않았다. 그런 내가 왜 갑자기 이러는 거지? 싶었다.


아무튼 그것이 계기가 되어 나는 당장 그날부터 묵주기도를 20단 이상씩 했다. 매주 100단은 기본으로 했고, 많게는 200단까지도 했던 것 같다. 주로 운전을 할 때 묵주기도를 했던 것 같은데 참으로 바보 같아 보이겠지만 묵주기도를 하려고 운전을 일부러 많이 했다. 가까운 길도 멀리 돌아가고, 일부러 멀리 다니면서 왕복 2시간 이상 만들어서 기도를 많이 하려고 애를 썼다. 나는 딱히 목적도 없었고, 빌고 싶은 간절한 무엇도 없었다. 처음에는 운전하며 수첩을 열고 묵주기도를 할 수도 없고, 묵주기도 순서도 잘 몰라서 유튜브에서 묵주기도를 찾아 들으며 했던 것 같다. 그야말로 그냥 마구마구 했다.


묵주기도를 하면서 나는 많은 것들을 알게 되고 깨닫게 되었다. 성모송의 의미를 깨닫게 되었고, 묵주기도의 신비들에 대해서도 뭔가 깨달았다. 묵주기도 중간중간에 하는 구원송에서 감동을 받기도 하고, 그러면서 내 삶을 돌아보며 나아갈 방향을 세우게 되기도 했다. 결국 기도를 하며 나는 내 삶의 등대를 세우게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늘 깨어 기도하라'는 말은 '기도하는 것이 깨어 있는 것이다'라는 말로 느껴진다. 또 깨어있어야만 내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깨달을 수 있다고도 생각한다. 다시 말하면 나에게는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이라는 말은 "늘 깨어 기도하지 않으면..."으로 바꿔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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