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들면 글만 쓰며 살 줄 알았다. 그렇게 될 수 있을 줄 알았다. 나이가 들면, 적당한 때가 오면, 실력도 저절로 쌓여서 척척 써질 줄 알았다.그런데 생각만 하다가 나이를 먹었다. 그리고 나이를 먹고서도 여전히 생각만 한다. 문득, 이러다 죽을 때까지 글은 한 줄도 못 쓰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2025년이 되자마자 썼다. 매일 몇 시간씩, 뭘 쓰는 지도 사실 잘 모르면서 썼다. 내가 뭘 쓰는지 나도 잘 모르면서 다른 사람에게는 어떻게 읽힐지 궁금했다. 아무리 읽어도, 다른 사람들에게는 어떻게 읽힐지 가늠할 수가 없었다. 답답한 마음에 합평 모임에 들어갔다. 기성 작가의 작품을 함께 읽고, 서로의 글을 나누며 생각을 주고받는 일은 즐겁다. 배우는 것도 많다. 솔직히 배우는 만큼 내 글에 다 반영하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충분히 거름이 된다.
지난 모임 때 글을 한 편 냈다. 그리고 함께 낸 다른 사람의 글을 읽고 충격을 받았다. 탁월한 구성, 균형 잡힌 문장, 그리고 무엇보다 그만의 시선이 놀라웠기 때문이다. 그의 글에는 애도에 대한 자기만의 태도가 있었다. 그가 말했다. 친구를 떠올리며 쓴 글이라고. 그 말을 듣는 순간, 내 안이 뜨겁게 타올랐다.
그때 깨달았다. 내가 부족했던 건 플롯이 아니었다. 무엇을 쓰느냐보다 왜 쓰느냐가 더 중요한데, 내겐 그 이유가 없었다. 물론 “쓰고 싶어서”라는 말로 설명할 수는 있겠지만, 그보다 더 근원적인 이유— 내가 왜 글을 통해 누군가에게 말을 걸고 싶은가—를 잊고 있었다.
나는 늘 “누군가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글을 쓰고 싶다”고 말해왔다. 그건 진심이었다. 그런데 정작 글을 쓰면서는 그 ‘누군가’가 누구인지,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나는 발설만 했지, 전달하지 않았다. 그러니 독자의 시선이 느껴지지 않았던 것이다.
부끄러웠다.
그래서 다시 해보려 한다. 내 안에 있는 찌꺼기들을 뱉어내는 것 말고, 누군가의 마음을 들이마셔, 그를 위한 글을 써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