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일기장

흐린 날의 꽃씨

2025년 7월 18일 비오다 흐림

by Elle

INFJ.

나는 이유 없이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걸 싫어한다. 나가야 할 일이 생기면, 반드시 계획을 세워 움직인다.

이를테면 원두를 사러 카페에 가야겠다고 마음먹는 순간, 나는 묻는다.

"또 나갈 일이 뭐가 있지?”

올리브유가 떨어져 가니 마트도 들러야겠고, 가는 김에 과일도 사 와야지. 은행에 들러 현금도 찾아오면 좋겠다.

차에 앉아 주유가 필요하단 사실을 알게 되면, 그것까지 포함해 최적의 경로로 움직인다.

누군가 갑자기 전화해서 만나자고 하면, 나는 잠깐 고민한다. 하지만 결론은 늘 같다.
나가 있는 도중, 동선 안에서 만날 수 있다면 가능하다.
하지만 이미 집에 들어온 뒤라면, 준비를 다시 하고 나가는 일은 웬만하면 하지 않는다.
물론, 약속의 무게에 따라 예외는 생기겠지만.


그런 내가 요즘은 매일 집을 나선다. 카페에 가 글을 쓰겠다는 명분으로.

하지만 가까운 카페를 가지 않는다. 한 시간쯤 되는 거리는 아무렇지도 않다.

왕복 두 시간, 글만 쓰겠다고 달려가는 길로는 꽤 먼 여정이다.

바다가 보이는 곳, 도시를 내려다볼 수 있는 자리, 혹은 공원을 마주한 창가에 자리를 잡는다.
어차피 글을 쓰겠다면서, 왜 그렇게 창밖 풍경을 고집할까.
사실, 나도 잘 모르겠다.

그거라도 있어야 덜 초라할 것 같기 때문이려나.

오늘은 한 시간 넘게 걸려 을숙도에 왔다.

강과 바다가 만나는 묘한 경계.

어디까지가 강이고, 어디서부터가 바다인지.

잿빛을 품고 흐르는 물살을 눈으로 훑다가, 문득 우울감이 밀려든다.

어디에도, 누구에게도 매이지 않아 자유롭게 떠돌 수 있다는 사실이 문득,

외로움으로 읽힌다.

보통 내 나이쯤이면 단단한 뿌리를 땅에 박고, 튼튼한 줄기를 세워, 한껏 가지를 뻗는다.

누군가는 꽃을 피우고, 누군가는 열매를 맺고, 누군가는 새에게 몸을 내어주기도 한다.


그런데 나는—
이 나이에 나는, 민들레 홀씨 같다.

후— 하고 불면 날아가고

이리저리 바람에 실려 떠돌다
어디에도 닿지 못한 채

아무것도 되지 못한 채

그저 부유하는 꽃씨.


글은 못 쓰고 책만 들여다보다가, 목 한 번 펴려고 고개를 든다.

통창 너머 풍경이, 마음 깊숙한 곳까지 스며든다.

감정의 테두리가 너무 또렷해서, 그 처연함을 찍어두려고 노트북을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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