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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lle Oct 26. 2023

낙엽, 그 찬란함에 대하여

  따뜻한 햇살에 시원한 바람. 살에 닿는 느낌이 좋다. 감촉에 취해 하늘을 올려다보는데 탄력 잃은 나뭇잎들이 내려앉는다. 푸르던 잎색이 변하는 건 빛을 잃은 걸까 색을 찾은 걸까. 검색해 봤더니 잎이 엽록소를 계속 만드는데 그 엽록소를 태양열을 통해 에너지로 바꿔서 나무가 자라게 돕는 거란다. 가을에는 기온이 떨어져서 잎이 그 일을 그만두면, 남아있는 엽록소는 분해되어 본연의 색을 드러내는 거라고. 그렇다면 잎의 원래의 색은 녹색이 아닌 건가. 그래도 잎으로 지내는 세월의 대부분을 초록으로 보내는데 그렇다면 초록이라고 봐야 하는 건가. 괜히 이상한 생각에 꽂혀서 또 하루가 다 간다. 


  이렇게 맨날... 허구한 날 이렇게 살면, 허구한 날 보내는 이 날들의 기록이 곧 나의 모습이자 그것이 결국 나의 정체성이 되는 걸까? 애초에 나로 산다는 건 의미가 없는 건가? 가을이 아름다운 이유는 초록이던 잎이 빨갛고 노랗게 변하기 때문인데, 그게 원래의 색으로 돌아가는 거라니. 초록이었던 이유가 사회생활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니. 사회생활을 끝낸 저무는 청춘의 아름다움이었다니. 문득 인생도 그렇게 살아야만 하는 건가 싶은 생각이 든다. 내가 나인채로 사는 게 중요하지만,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자신의 역할을 다하는 것이 그것과 무관하지 않을 것만 같다는 느낌.


  모두가 초록일 땐 그냥 푸르구나 싶지만, 초록을 벗고 자신이 되었을 때 비로소 빨갛고 노란 잎 하나하나를 들여다보게 되는 것처럼, 인간도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활동을 하고 나서야 자신으로서의 의미를 아름답게 지닐 수 있게 된다는 생각이 스민다. 사회가 건강하게 성장하는 것에 나의 에너지를 쏟는 것이, 내 청춘을 그렇게 바치는 것이 그저 나를 소진하는 것만은 아니라는 느낌. 어딘가 서럽기도 하지만 맘 한 구석에 위안이 되기도 한다. 이렇게 살아가는 하루하루들도 의미가 있는 거구나 싶어서. 바람에 실려 나뒹구는 낙엽의 바스락거림이 온통 찬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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