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10. 10.
페북에 뜬금없이 '0년 전의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과거의 사진들이 소환되곤 한다. 지인의 페북에 8년 전의 추억으로 내 사진이 소환되었다면서 그 사진을 톡으로 보내왔다.
- 이게 벌써 8년이 됐대. 엊그제 같은데...
엊그제는 아니겠지만 그렇다고 8년이 실감 나지도 않는다.
- 엊그제도 너 커피 내리긴 했잖아 그치?진짜 너도 참 안 변해. 저기까지 가서 커피를 갈아서 내리겠다고 한 너도 참 대단하다 싶었는데 이제 진짜 추억이 됐네. 근데 니 옆에 저기 무릎만 나온 사람 보여? 저 청바지 입은 사람. 누구니?
아무리 들여다봐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역시 기분과 기억은 다르다. 8년 전 일을 엊그제처럼 기억할 수는 없나 보다.
1년에 한 번씩만 만나는 지인들이 있다. 영화를 좋아해서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열심히 영화를 보다가 몇몇 씨네필들과 친분이 생겼다. 가을바람이 불어오면 생각나는 그들과의 인연이 벌써 10년이다. 내 숙소에 놀러 온 이들과 술을 마신 다음날 아침, 핸드드립하는 나를 사진에 담아줬는데 그 사진이 오늘 뜬 거다. 사진 귀퉁이에 무릎 한쪽 나온 이는 누구인지, 레깅스를 신은 이는 누구인지... 나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이럴 때, 아~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을 또 하게 된다.
- 쓰고 싶다 쓰고 싶다 하지 말고 그냥 써. 쓰고 싶다는 말을 내가 지금 몇 년째 듣고 있냐?
8년 전 청바지 무릎이 5년 전쯤 목소리와 함께 사진 밖으로 튀어나왔다.
- 몇 년째? 내가 몇 년째하고 있어 이 말을?
- 매년 한 거 같은데. 적어도 3년은 했을 걸? 천일 동안 썼으면 뭐라도 썼겠다. 그만 좀 하고 그냥 써.
5년 전쯤 영화제가 끝나고 토요일 아침 해장국 한 그릇씩 먹고 나와 역으로 향했다. 반듯하게 접어간 옷가지들이 후줄근해져 담긴 캐리어를 달달 끌며 따뜻한 햇살과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들었던 말이다. 그때도 청바지를 입었던 것 같다. 흰색 티셔츠에 베이지색 점퍼를 입고, 곱슬머리를 날리며 미간에 세로 주름을 잡고서 말만 하지 말고 뭐라도 좀 쓰라고, 쓰면 될 걸 왜 말만 그렇게 하는지 이해가 안 된다고. 그렇게 말했던 것 같다. 그 뒤로 글 쓰고 싶단 말을 입 밖에 내진 않은 것 같다. 지긋지긋하다. 일기라도 쓰자 좀. 써둬야겠다 싶으면 쓰면 될 일인데 뭐가 그렇게 허구한 날... 나도 정말 징글징글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