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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lle Nov 10. 2023

그 남자가 피워 올린 한 모금

고흐를 그렇게 만나게 될 줄이야 (1)

  고흐가 마지막으로 살았던 곳은 '오베르쉬르우아즈'라는 작은 마을이다. 파리에서 기차로 가면 한 시간 정도 거리에 있다. 10년 전에 파리에서 보름 정도 머물었는데, 하루 날 잡아 그곳에 갔다. 중간에 기차를 한 번 갈아타고 갔는데 워낙에 작은 마을인 데다 오가는 사람도 많지 않은지 역에 내려도 사람이 없었다. 확인받지도 못한 기차표를 손에 들고, 나는 해바라기 그림을 마주하면서 그곳이 고흐의 숨결이 서려있는 곳임을 느꼈다. 마을로 들어가는 초입에 사람만 지나는 작은 터널 같은 곳을 지났던 것 같은데, 앨리스가 된 듯한 기분에 사로잡혀 한껏 설레었다.


  팸플릿을 들고 마을을 쭉 따라 걸으며 여기저기 구경했다. 고흐의 작품 속 풍경이 여기저기 펼쳐져 있었다. 마을 자체가 고흐 박물관 같았다. 공원에는 깡마른 고흐가 화구통을 메고 있는 전신상이 있었고, 마을 여기저기 어딜 가도 고흐의 그림이 함께 걸려 있어, 저걸 보면서 이걸 그렸구나~ 알 수 있었다. 고흐의 마음이 흠뻑 담겨 실제의 모습과는 사뭇 다를 것만 같은 그 건물들은 소름 끼치게 똑같다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특히 오베르 성당 앞에 고흐의 작품이 걸려있는데 건물은 그림과 똑같이 일렁이고 있었다. 낮게 내려앉은 흐린 가을 오후의 오베르 성당은 묵직한 우울 그 자체였다. 


  마을을 돌아보고 <오베르 성>에 갔다. 소박하고 예쁜 성이었다. 성 안으로 들어가 보고 싶었는데 하필 문을 닫는 날이어서 성문은 잠겨있었다. 잠긴 성문을 두드리다 돌아서는데 빨간 폴라티에 청바지를 입은 한 흑인 남자가 성벽 난간에 훌쩍 뛰어올라 앉았다. 흠칫 놀라 바라보니 그 남자는 마치 제자리인양 편안히 걸터앉았다.  멍하게 앉아있는 모습에 그가 바라보는 풍광에 호기심이 생겼다. 잠긴 성문에 기대서서 남자의 뒷모습과 그 남자가 바라보는 풍경을 함께 바라보았다. 이르지만 노을이 살포시 내려앉은 작고 낮은 마을의 가을 풍경은 내 호흡을 가라앉히고 내 마음을 들뜨게 했다.


  풍광에 취한 건지 남자의 뒷모습에 취한 건지 나는 한참을 멍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남자는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 꼼지락거리고 있었다. 잎으로 무언가를 말고 있었는데 담배인지 대마인지 알 수는 없었다. 아주 천천히, 꼼꼼한 손놀림으로 한참이나 말았다. 내려앉는 노을에 피어오르는 연기는 예술이었다. 냄새가 올 거리가 아니어서 더 예술적으로 느껴졌을지도 모르겠다. 그때는 옆에서 한 모금 빨고 싶다는 충동도 살짝 들었던 것 같다. 피어오르다 녹아버리는 연기를 내뿜으며 남자는 풍경화 속에 담겨 있었다. 피어오르던 연기가 허물어질 때 내 마음속 무언가도 녹아내리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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