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글레기통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Elle Nov 17. 2023

고흐의 숨결이 내 안에 들어와

고흐를 그렇게 만나게 될 줄이야(2)

  황홀한 풍광을 뒤로하고 고흐의 묘지로 향했다. 테오와 함께 나란히 묻혀 있다는 그곳에 가보아야 오베르쉬르우아즈의 여행이 마무리될 것 같았다. 묘지는 마을에서 밀밭 쪽으로 넘어가는 경계 어디쯤 있었다. 그런데 묘지를 향하는 내 기분이 아주 묘했다. 언제부터 어떻게, 왜인지 알 수는 없지만 내 안에 슬픔이, 우울감이 차곡차곡 차올랐다. 묘지를 향해 다가갈수록 게이지가 차오르는 게 눈에 보일 것 같은 그런 느낌으로 슬픔과 우울이 물을 깊이 삼키는 듯이 벌컥벌컥 밀려들었고, 울고 싶은 기분까지 들었다. 혹여나 깨닫지 못한 슬픔이 나의 어딘가에 있는 것은 아닌지 내 온 맘을 훑어보려 애썼다. 아주 가끔이긴 하지만 예지몽을 꾼다거나 감이 아주 좋을 때가 있다. 혹시 그때가 지금인 건가, 내 주변 누군가가 지금 큰 슬픔을 겪고 있는 것은 아닌가, 누군가에게 연락이라도 해보아야 하나 싶은 생각도 잠시 들었다. 하지만 그런 것과는 뭔가 다른 느낌이었다.


  묘지는 아담했다. 산책하기 좋았던 파리의 다른 묘지와 사뭇 다르게 휑한 느낌이었고, 우리나라 공원묘지 미니어처 같은 느낌에 가까웠다. 입구에 들어서는데 트럭이 한 대 들어왔다. 사람이 내리길래 '봉주흐~' 하고 다가가자, 그 남자는 '저쪽으로 끝까지 쭉 간 다음에 거기서 몇 번째야.'라고 했다. '네?' '너 고흐 무덤 찾아온 거 아니야?' 너무 익숙한 듯이 내뱉는 안내에 감사하단 인사도 잊었다. 안내대로 벽까지 쭉 들어갔더니 고흐의 무덤은 티가 났다. 그런데 무덤 앞에서 내가 뭘 하지? 절을 할 수도 없고. 무덤을 다가가는 동안에도 슬픔은 차올랐다. 내쉬는 호흡에까지 묻어 나오는 감정을 나는 계속 꾹꾹 눌렀다. 울컥울컥 솟구쳐 쏟아질 것 같은, 나의 것도 아닌 것 같은 그 무언가는 잘 눌러지지도 않았다. 무덤 앞에 닿았고, 그 앞에 두 발을 모아 섰다. 한 발을 내딛고 다른 발을 땅에 갖다 대는 순간, 정말 딱 그 순간, 비가 쏟아졌다. 


  발이 땅에 닿자마자 비가 퍼붓고, 나를 적신 비가 흘러내릴 때 눈물이 빗물인양 흘러내렸다. 출처를 알 수 없는 눈물에 너무 당혹스러웠다. 비일 거라 생각해보려 해도 눈물이 아닌 것은 아니었다. 내 마음이나 감정과는 상관없이 솟구치는 눈물에 나는 어찌해야 할 바를 몰랐다. 하지만, 사실 그보다 더 당황스러운 건 무방비상태에서 쏟아지는 비였다.  머플러를 풀어 비를 막아보려 해도 머플러만 잔뜩 더 적실뿐이었다. 비 먹은 머플러를 손으로 꼭 쥐어짜면서 비 맞는 강아지처럼 쫄랑쫄랑 이리로 저리로 뛰어다녔다. 커다란 나무라도 한 그루 있다면 그 아래에 서있을 텐데, 그곳엔 비를 피할만한 아무것도 없었다. 세워진 트럭에라도 올라탈 수 있을까 싶어 그쪽으로 바라봤는데, 남자는 마치 나에게 위치를 알려주기 위해 여기에 들어섰던 사람인 것 마냥 뭘 하는 것 같아 보이지도 않았는데 트럭을 타고 슝~ 가버렸다. 잡았다면 태워줬을까?


   뭘 어쩌지도 못하는 사이 나를 흠뻑 적신 비는 멎었고, 나는 고흐 미술관을 마지막으로 오베르쉬르우아즈를 마무리하고 싶었다. 팸플릿 약도를 보고 미술관 방향으로 걷는데 눈앞에 밀밭이 펼쳐졌다. 잘못 들어선 건가 싶었지만 고흐의 밀밭 그림이 이젤로 서 있었다. 역시나 그림과 풍광은 소름 돋게 똑같았다. 고흐는 인상파 화가가 아니라 극사실주의 화가가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나도 모르게 차오르던 슬픔은 비와 함께 쏟아졌지만 너무 쏟아져 비우지 않아야 할 것들도 비워진 탓인지 나도 모르게 내딛는 발걸음에 마음은 바람처럼 황량히 휘적여졌다. 평소 나라면 누구라도 붙잡고 두 번 세 번 아니 열 번이라도 묻고 또 물으며 길을 확인할 텐데, 사람이 없기도 했지만 이렇게 막 가도 되는 건가 싶었다. 한 편으론 저 도로까지만 가면 미술관을 못 찾더라도 그냥 파리로 다시 돌아가지 뭐 싶은 생각도 들었다. 


  그 사이 차 한 대가 마주오고 있었다. 차 한 대 지나갈 정도의 폭이라 옆으로 비껴 서면서 저 차를 잡아야 하나 망설였다. 옷이 많이 젖어서 주저하는 사이 망설이는 사이 차는 지나갔다. 한참을 걸은 것 같은데 뒤돌아보면 걸어온 길은 얼마 되지 않아 보였다. 사람도 차도 다니지 않고, 밀도 다 베어버린 황량한 길을 혼자 걸었다. 한참을 걸어도 도로는 멀기만 했다. 아까 그 차를 세웠어야 했다. 이젠 돌이킬 수 없는 발걸음으로 자꾸만 걸었다. 바람에 실린 듯 계속 걸었다. 고흐의 그림에서 살아난 까마귀는 그림처럼 리듬을 타며 날았다. 돌아가야 하는 건가 하면서도 발길은 이어졌다. 사람도 차도 없는 밀밭길을 하염없이 파고들며 어디든 닿겠지. 이 또한 여행이려니 생각했다.  까마귀처럼 날아다니는 마음은 더 어지럽고, 황량하기만 했다. 그즈음 뒤에서 차가 한 대 오고 있었다. 뒤통수로 다가오는 저 차는 꼭 세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답답해하던 남자는 아예 차에서 내렸다. 뭐라 뭐라 하는 말들을 하나도 알아듣지 못하고 나는 씰부뿔레(제발)라고만 했다. 니가 어딜 가든 도로까지만 태워주면 내가 파리 가는 차를 타겠다는데 남자는 머리만 긁적였다. 태워주기 싫은 것 같았지만 차를 놓칠 수 없었다. 실랑이 아닌 실랑이를 하는 동안에 반대편에서도 차가 들어왔다. 코빼기도 보이지 않던 차가 하필 이렇게 마주 들어서나 싶은데 그 차는 옆으로 차가 지나갈 수 있을 만한 적당한 지점에 멈췄다. 아, 포기해야 하나 싶었다. 머리를 긁적이던 남자가 발을 뗐고, 나도 그건 질척여야겠다 생각했다. 남자는 자기 차 문을 열어둔 채로 멈춰 선 차로 갔다. 그 차 운전자와 나를 힐끔힐끔 보면서 대화를 했다. 남자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고개를 내민 운전석에 남자도 한쪽 입술을 귀 끝으로 당기며 가볍게 웃는 표정이 좋아 보이진 않았다. 남자는 나에게 손짓을 했다. 


  운전석에 앉은 남자는 옆 자리 여자와 손을 꼭 잡고 있었다. 뒷자리에 앉은 나에게 여자는 어디에 가냐고 물었다. 고흐미술관에 간다고 했는데 두 사람이 난감해하는 것 같길래 다시 얼른 역으로 간다고 했다. 역에 가서 파리행 기차를 탄다고 했다. 남자는 아, 그렇다면 역으로 데려다줄게~라고 했고, 나는 진심으로 고마워서 고맙다고 했다. 비를 맞은 몸을 다 말리지 못하고 차에 탄 것이 미안했다. 나로선 어쩔 도리가 없었지만 그들에겐 불쾌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젖어서 미안해라고 더듬거리며 말을 했는데 개의치 않아 했다. 역에서 내렸을 때 어딘가 서늘한 느낌이 들었다. 정신이 차려지는 느낌이랄까? 정신이 든다는 생각을 하니까 뒤늦게 공포감이 밀려들면서 소름이 돋았다. 오늘을 절대 잊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무슨 일이 일어났을지는 알 수 없었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수도 있지만, 큰일 날 뻔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 년쯤 지나 같은 계절이 돌아왔을 때 그때가 생각났다. 친구에게 얘기하며 구글맵으로 그곳을 찾게 되었는데 위성사진을 보면서 소름이 돋았다. 사진에 펼쳐진 밑밭이 끝이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로 치면 도시 한 두 개 정도 차지할 정도의 크기였다. 밑밭을 지나 도로까지만 태워달라는 내 청을 들어주지 못한 그 남자의 난감함이 이해가 됐고, 그때 알아듣지 못한 그 남자의 말들도 알아들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도로까지는 온종일 걸어도, 이틀 사흘을 걸어도 닿을 수 없을 것 같았다. 어쩐지 아무리 걸어도 뒤를 보면 걸은 것 같지도 않더라니. 결과적으론 다행이지만, 어딘가 아쉽기도 했다. 좀 더 빨려 들어가 보았더라면 어땠을까. 종잡을 수 없이 밀려드는 감정들을 좀 더 내버려 둬 봤더라면 어땠을까. 그때 130년 전쯤에 고흐가 내쉰 숨 한 조각을 내가 들이마셨던 것만 같은데 그 호흡을 조금만 더 품어보았더라면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매거진의 이전글 그 남자가 피워 올린 한 모금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