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사카 여행에 가장 기대되는 코스 중 하나가 톤보리강 재즈보트다. 그런데 예매좌석이 매우 한정적이고, 당일 매표소 오픈해서 티켓팅이 시작되므로 난 일단 하루 오전을 그 보트를 티켓팅하는 것으로 짰다. 그게 오늘이다. 해 질 녘 도시의 야경 따라 흐르는 라이브 재즈의 선율! 일본을 떠올릴 때 착 붙는 풍경은 아니지만 어딘가 생경한 그 느낌 때문에 더 궁금한 것도 사실이다. 도대체 몇 시에 가야 할지 감을 잡을 수 없다. 티켓 박스 오픈은 두 시인데 열몇 번째여도 원하는 시간에는 탈 수 있을 것 같다. 한 타임에 한 스무 명 정도는 타는 것 같고, 여러 타임이 있으니까 가장 원하는 타임이 아니어도 적당히 되지 않을까 싶다.
선글라스와 모자를 준비했지만 너무 땡볕이다. 11시에 도착했는데 나보다 먼저 온 사람은 고작 3명. 이럴 줄 알았으면 일찍 오지 않아도 될 뻔 했나? 네 번째로 섰다. 나를 힐끔힐끔 쳐다보며 노란 양산을 든 여자가 말한다. 한국 사람인가? 나풀거리는 청바지를 입은 여자가 굳은 입술로 말했다. 야 조용히 해. 들릴 수도 있어. 그러자 나머지 한 명이 물어왔다. 한국 사람 맞으시죠? 순간 경계심이 올라왔다. 네!라고 했다가는 두 시까지 저들의 수다에 강제 참여되야 할 것만 같았다. 선글라스에 흔들리는 동공을 가리고 멀뚱멀뚱 있었다. 조용히 책을 보며 기다리고 싶었는데 망한 느낌이 들었다.
그들은 딴청부리는 나를 그냥 두지 않았다. 하이~ 웨얼아유프롬? 영어로 말하면 딱 걸릴 것만 같아서 나는 아~ 봉주흐~ 제쉬프항세~(프랑스 사람이예요) 야야!! 프랑스프랑스. 봉쥬르라자나. 야 머리 까만데? 프랑스 머리 까만 사람도 있어! 야 바바. 한국사람 같아. 야 프랑스 입양 간 사람 많아. 그래! 난 한국에서 입양된 프랑스인이다. 맘 속으로 되뇌었다. 캔유스픽잉글리시? 난 엄지와 검지로 짧은 간격을 만들며 말했다. 엉쁘.(쬐끔) 아임 코리안. 나이스투미츄. 아~ 예! 암코리안투 암..아돕떼.(입양됐어) 머래머래! 발음 이상한데? 입양됐단 거 아니야? 프랑스애들 영어 원래 이상해.
아슬아슬한 방식으로 그들과의 대화는 계속되었다. 대화를 하고 싶지 않아서 제2외국어를 끄집어냈지만 난 프랑스어도 잘 못하고 영어도 잘 못한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들도 영어는 잘 못했다. 그렇지만 질문은 멈추지 않았다. 몇 살 때 입양이 되었니, 부모님은 부자니, 한국은 가 본 적 있니, 바로 옆인데 이번 여행 때 가 보면 어떻겠니, 부산에 오면 자기들과 또 만나자느니, 적당히 못 알아듣는 척하며 시간을 끌고 머릿속 바쁘게 이야기를 지었다. 그들은 두 명은 휴가를 썼고, 한 명은 아임 컴퍼니 퀵! 했다고 했다. 야! 야! 킥 아니야? 퀵은 빠른 거자나. 야 잘린 거 파이어 아니야? 파이어? 불?
내가 못 알아들을 거라고 생각하며 자기들끼리 편하게 나누는 대화에 터지려는 웃음을 간신히 참았다. 표정관리 하려고 땅만 봤다. 웃는 입이 걸리면 신분이 탄로 날 것 같았다. 야 I인갑따. 나나라. I들은 모르는 사람이 자꾸 말 거는 거 싫어해. 잠시 후 한 명이 무릎 담요를 내밀었다. 야 이거 하나 주자, 우리 같이 앉고. 우리끼리 앉아있기 쫌 글타아니가. 앉는 액션을 크게 하며 바디 랭귀지로 다시 말했다. 나는 메흑시.. 아 땡큐 라고 하고 따라 앉았다. 맨다리를 내놓고 무릎을 세우고 앉아있으니까 양산을 다리에 씌워줬다. 유어렉 핫핫! 파이어~ 하고 자기들끼리 한바탕 웃으면서 내 눈치를 봤다.
그리고 한국도 좋으니까 꼭 한국을 가보라고 했다. 너 진짜 한국인이라 해도 믿을 거 같다 하다가 아 맞다 한국인이지 했다가 아 국적은 프랑슨가? 했다. 그러면서 진짜 한국을 꼭 가보라고 다시 말했다. 엄마에 대한 기억이 있는지, 어느 도시에 있었는지도 자꾸 물었다. 아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한국인이라 할걸. 이쯤 되니 그냥 내가 저들을 기만한 거 밖에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너무 미안했지만 되돌리기엔 너무 멀리 왔다. 내가 한국인이라고 하면 저들은 굳어버릴까 더 말랑해져 버릴까 잠시 고민도 했지만, 고백할 용기가 나에게 없었다. 마치 은촛대를 선물 받은 도둑 같은 마음으로 난 이야기를 지었고, 그들의 대화를 본의 아니게 계속 엿들었다.
나에게 어느 타임을 예약할 건지 물었고, 자신들이 아는 정보들을 어설픈 콩글리시를 만들며 알려주었다. 마음이 무거웠다. 친해졌다면 좋을 뻔했다는 생각도 들었다. 밥이라도 한 끼 하면 좋겠단 생각도 들었다. 3년 동안 곗돈을 모으면서 매년 생각만 하고 실행하지 못했던 여행을 한 명이 회사 잘리는 바람에 속상한 맘 달래주려고 실행하게 된 모양이다. 마음 어딘가 몽글몽글해지는 기분이었다. 내가 더울까 봐 부채를 쥐어줬다 손풍기를 들려줬다 하면서 살폈다. 셀카봉도 자랑하며 같이 찍자고 했지만 거절했다. 나는 두 시까지 핸드폰도 책도 꺼내지 못했다. 땅만 바라보는 벌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