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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lle Dec 01. 2023

프랑스인이 되지 말 걸 그랬습니다

  오사카 여행에 가장 기대되는 코스 중 하나가 톤보리강 재즈보트다. 그런데 예매좌석이 매우 한정적이고, 당일 매표소 오픈해서 티켓팅이 시작되므로 난 일단 하루 오전을 그 보트를 티켓팅하는 것으로 짰다. 그게 오늘이다. 해 질 녘 도시의 야경 따라 흐르는 라이브 재즈의 선율! 일본을 떠올릴 때 착 붙는 풍경은 아니지만 어딘가 생경한 그 느낌 때문에 더 궁금한 것도 사실이다. 도대체 몇 시에 가야 할지 감을 잡을 수 없다. 티켓 박스 오픈은 두 시인데 열몇 번째여도 원하는 시간에는 탈 수 있을 것 같다. 한 타임에 한 스무 명 정도는 타는 것 같고, 여러 타임이 있으니까 가장 원하는 타임이 아니어도 적당히 되지 않을까 싶다. 


  선글라스와 모자를 준비했지만 너무 땡볕이다. 11시에 도착했는데 나보다 먼저 온 사람은 고작 3명. 이럴 줄 알았으면 일찍 오지 않아도 될 뻔 했나? 네 번째로 섰다. 나를 힐끔힐끔 쳐다보며 노란 양산을 든 여자가 말한다. 한국 사람인가? 나풀거리는 청바지를 입은 여자가 굳은 입술로 말했다. 야 조용히 해. 들릴 수도 있어. 그러자 나머지 한 명이 물어왔다. 한국 사람 맞으시죠? 순간 경계심이 올라왔다. 네!라고 했다가는 두 시까지 저들의 수다에 강제 참여되야 할 것만 같았다. 선글라스에 흔들리는 동공을 가리고 멀뚱멀뚱 있었다. 조용히 책을 보며 기다리고 싶었는데 망한 느낌이 들었다.


  그들은 딴청부리는 나를 그냥 두지 않았다. 하이~ 웨얼아유프롬? 영어로 말하면 딱 걸릴 것만 같아서 나는 아~ 봉주흐~ 제쉬프항세~(프랑스 사람이예요) 야야!! 프랑스프랑스. 봉쥬르라자나. 야 머리 까만데? 프랑스 머리 까만 사람도 있어! 야 바바. 한국사람 같아. 야 프랑스 입양 간 사람 많아. 그래! 난 한국에서 입양된 프랑스인이다. 맘 속으로 되뇌었다. 캔유스픽잉글리시? 난 엄지와 검지로 짧은 간격을 만들며 말했다. 엉쁘.(쬐끔) 아임 코리안. 나이스투미츄. 아~ 예! 암코리안투 암..아돕떼.(입양됐어) 머래머래! 발음 이상한데? 입양됐단 거 아니야? 프랑스애들 영어 원래 이상해.


  아슬아슬한 방식으로 그들과의 대화는 계속되었다. 대화를 하고 싶지 않아서 제2외국어를 끄집어냈지만 난 프랑스어도 잘 못하고 영어도 잘 못한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들도 영어는 잘 못했다. 그렇지만 질문은 멈추지 않았다. 몇 살 때 입양이 되었니, 부모님은 부자니, 한국은 가 본 적 있니, 바로 옆인데 이번 여행 때 가 보면 어떻겠니, 부산에 오면 자기들과 또 만나자느니, 적당히 못 알아듣는 척하며 시간을 끌고 머릿속 바쁘게 이야기를 지었다. 그들은 두 명은 휴가를 썼고, 한 명은 아임 컴퍼니 퀵! 했다고 했다. 야! 야! 킥 아니야? 퀵은 빠른 거자나. 야 잘린 거 파이어 아니야? 파이어? 불?


  내가 못 알아들을 거라고 생각하며 자기들끼리 편하게 나누는 대화에 터지려는 웃음을 간신히 참았다. 표정관리 하려고 땅만 봤다. 웃는 입이 걸리면 신분이 탄로 날 것 같았다. 야 I인갑따. 나나라. I들은 모르는 사람이 자꾸 말 거는 거 싫어해. 잠시 후 한 명이 무릎 담요를 내밀었다. 야 이거 하나 주자, 우리 같이 앉고. 우리끼리 앉아있기 쫌 글타아니가. 앉는 액션을 크게 하며 바디 랭귀지로 다시 말했다. 나는 메흑시.. 아 땡큐 라고 하고 따라 앉았다. 맨다리를 내놓고 무릎을 세우고 앉아있으니까 양산을 다리에 씌워줬다. 유어렉 핫핫! 파이어~ 하고 자기들끼리 한바탕 웃으면서 내 눈치를 봤다.


  그리고 한국도 좋으니까 꼭 한국을 가보라고 했다. 너 진짜 한국인이라 해도 믿을 거 같다 하다가 아 맞다 한국인이지 했다가 아 국적은 프랑슨가? 했다. 그러면서 진짜 한국을 꼭 가보라고 다시 말했다. 엄마에 대한 기억이 있는지, 어느 도시에 있었는지도 자꾸 물었다. 이럴 알았으면 그냥 한국인이라 할걸. 이쯤 되니 그냥 내가 저들을 기만한 밖에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너무 미안했지만 되돌리기엔 너무 멀리 왔다. 내가 한국인이라고 하면 저들은 굳어버릴까 말랑해져 버릴까 잠시 고민도 했지만, 고백할 용기가 나에게 없었다. 마치 은촛대를 선물 받은 도둑 같은 마음으로 난 이야기를 지었고, 그들의 대화를 본의 아니게 계속 엿들었다. 


  나에게 어느 타임을 예약할 건지 물었고, 자신들이 아는 정보들을 어설픈 콩글리시를 만들며 알려주었다. 마음이 무거웠다. 친해졌다면 좋을 뻔했다는 생각도 들었다. 밥이라도 한 끼 하면 좋겠단 생각도 들었다. 3년 동안 곗돈을 모으면서 매년 생각만 하고 실행하지 못했던 여행을 한 명이 회사 잘리는 바람에 속상한 맘 달래주려고 실행하게 된 모양이다. 마음 어딘가 몽글몽글해지는 기분이었다. 내가 더울까 봐 부채를 쥐어줬다 손풍기를 들려줬다 하면서 살폈다. 셀카봉도 자랑하며 같이 찍자고 했지만 거절했다. 나는 두 시까지 핸드폰도 책도 꺼내지 못했다. 땅만 바라보는 벌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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