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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글레기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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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lle Jul 10. 2023

에라, 모르겠다~

글레기통 저지르기


- 야 너 일기 써? 

- 아니. 

- 야 일기 그거 마법이더라? 

- 응? 

- 너도 일기 써 봐. 넌 쓸 줄 알았는데 아니구나. 

- 예전엔 썼지...

- 내가 1년 동안 일기를 써 봤는데 내가 꿈꾼 것들이 진짜 실현되고 있어. 

- 뭐가? 

- 내가 문화센터에서라도 강의 하고 싶었거든? 근데 비슷하게 시작할 것 같아. 

- 아 그래? 오~ 축하해. 무슨 일인데?  

- 아니 그보다 나도 그냥 한 번 써 본 건데 진짜 이루어지더라. 내가 특강을 들었는데..... 



친구는 어느 특강에서 일기를 쓰면서 하루를 기록하고 자신의 바람을 적어가다보면 그 바람을 이루게 되는 기적을 만나게 된다는 얘길 들었고, 그걸 이루고 있다는 얘기를 나에게 하고 있다. 나는 어디선가부터 자존심이 상했다. 친구는 좋은 경험을 나누려고 한 말일뿐인데, 그림 그리는 친구에게 너도 나처럼 일기 한 번 써 보라는 말이 뭔지 모르게 기분이 팍 상했다. 무시한다는 기분이 들었는지, 글을 안쓴다는 걸 인증해서인지 정확히는 모르겠다. 뭐가 어찌되었건 내가 뭔가 꼬여도 많이 꼬여서 느낀 감정이란 건 안다.  


글을 쓰며 살고 싶었다. 어릴 때부터. 일기처럼 끄적이는 글들을 꽤 열심히 썼던 기억이 나는데 글을 안 쓰며 살아온 시간이, 글 쓰며 살던 시간보다 더 길어져버리기 시작하고부터는 글 쓰는 것이 두려워졌다. 글 쓰고 싶다는 생각은 마치 동화 속에서나 일어나는 환상 같은 걸로 치부해 버리게 되었던 것 같다. 그러면서도 글을 쓰고 싶단 생각은 떨어뜨리지 않고 한쪽 맘에 품고 있는 것 같다. 가끔 누군가 넌 글 써야 돼~라는 말을 던져오면 설레면서도 뭔가 쓰려고 하면 한숨만 쏟아내게 된다.


브런치는 벌써 몇 년 전부터 하고 싶었다. 뒤적거리며 사람들의 글을 읽다가 나도 써야지~ 하는데 선뜻 쓰지 못했다. 혹시 카톡 친구들이 다 읽게 될까 괜히 맘 졸이며 미루게 되고, 써야지 하고 큰맘 먹고 쓰고 보면 진작에 썼어야 했던 글인가 싶은 쿰쿰한 냄새나는 글들이 묵어져 나와 냅다 버리게 된다. 아껴서는 안 되는 것들이었다. 품고 있으면 안 되는 것들이었다. 그래도 이런 걸 다 쏟아내야만 글을 쓸 수 있겠다 싶기는 한데, 다 쏟아낼 자신이 없는 것도 같고, 어디다 쏟아내야 할지도 잘 모르겠다.


예전에 내가 좋아하는 어떤 뮤지션이 라디오에서 자신의 음악을 '감정의 쓰레기통'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이렇게 유쾌하신 분이 음악은 어쩌면 그렇게 우울하냐는 DJ의 질문에 그 뮤지션은 남기고 싶지 않은 감정들을 음악에다 버리기 때문이라고 하면서 그런 말을 했다. DJ는 그래도 당신의 음악을 좋아하는 팬들이 들으면 섭섭할 말 같다고 했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어린 마음에 나는 괜히 섭섭했다. 누가 버린 쓰레기를 붙들고 사는 건가 싶어서. 


물론 지금은 그 말의 의미를 조금 더 깊이 이해할 수 있게 된 것 같다. 그래서 나도 글레기통을 한 번 만들어보려고 한다. 그리고 그걸 브런치에 게시해 보려고 한다. 나 같은 사람이 나만 있진 않을 것 같아서. 누군가 내가 버리는 것들을 보면서 대리만족 할 수도 있고, 또 자신의 것들도 버릴 수 있는 맘이 들 수도 있으니까. 혹시 버리면서 내가 나아지는 것들이 있다면 그런 것들이 동기가 될 수가 있고, 혹 내가 잘못 버려서 망하는 과정을 지켜본다면 또 다른 방법을 찾아갈 수도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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