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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lle Sep 15. 2023

뫼비우스의 띠

우리가 뫼비우스의 띠로 돌고 있다고 가정한다면

  바벨탑이 세워지고 인류는 흩어져 언어가 제각각이 되었다는... 그런 유래를 믿거나 말거나 어쨌거나 인류는 다양한 언어와 문자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이 와중에 수없이 오랜 시간이 흐르면서도 숫자의 표기가 세계 어디에서나 동일하다는 점은 신기하다. 어느 나라를 가든 메뉴판을 보고서 메뉴 이름은 못 읽을지언정 가격이 얼마인지는 모를 수 없으니 말이다. 그래서 나는 숫자의 표기, 그러니까 숫자의 모양이 그 모양을 가져야 하는 데에는 필연적인 이유가 있을 것만 같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고, 그래서 숫자는 아마도 세상의 원리나 질서를 설명하는 메시지를 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싶었다. 그 생각을 대학교 1학년 때 철학 과제 리포트로 써낸 적이 있는데 그러고 나서는 머릿속 어딘가에 묻혀 있었다. 그러다가 얼마 전 0에 관해 생각하면서 이 생각이 되살아났다. 그래서 그러한 개념으로 0이 뫼비우스의 띠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좀 더 키워 보았다.


뫼비우스의 띠는 하나의 기다란 끈을 이을 때 한쪽 면을 180도 틀어서 이으면 만들 수 있다. 자~ 이제  뫼비우스 띠에 한 점을 찍고 그 점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자. 그 점은 자신이 서 있는 곳이 그저 넓은 평지일 거라 인식하게 될 것이다. 이어진 어딘가가 꼬여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한 점이 다른 점을 만나고 또 다른 점을 만나면서 그들의 세계가 사실은 원으로 이어져 있다는 점을 통찰해 낼 수도 있을 것이다. 이어지고 이어지다 보면 다시 제자리로 오게 된다는 사실을 알아내게 된다고 쳐보자.



  물론 이 때도 점들은 자신들의 세계 어느 한쪽 끝이 뒤틀렸다는 점을 알아내기는 어렵다. 왜냐면 뒤틀렸다면 뒤틀린 포인트를 짚을 수 있어야 할 텐데 자연스럽게 늘 바로 옆에 있을 다른 점들과 자연스레 소통하며 원으로 이어진 점을 발견하게 될 테니까 말이다. 아무튼 이러한 과정을 오래도록 겪으며 어떤 점이 가도 가도 끝이 없지만 한 직선으로 쭉 긋고 가다 보면 자신이 선 자리로 돌아오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해 보자. 0으로 생긴 타원의 형태로 자신의 세계를 인지하고 각을 잘 맞춰서 면의 양 끝(벼랑)으로 가지 않고 한가운데로 쭉~ 가면 다시 자신이 선 자리로 돌아올 거라고 생각하게 될 것이다. 이걸 생각해 낸 한 점은 수학 천재라서 타원의 원주를 구해냈다고 쳐보자. 그럼 이걸 증명하기 위해 자신은 원주만큼 이동해서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다는 점을 증명하고 싶을 것이다. 그래서 한 점은 특정 포인트에서 출발하여 자신의 계산대로 정확하게 움직이면, 딱 계산만큼 갔을 때 그 점은 자신의 원래 있던 자리를 기준으로 정확히 반대편(겉면에서 출발했다면 안쪽면 반대편)으로 오게 된다. 만들어 본 사람들은 다 알 텐데 다시 원래의 자리로 돌아오려면 한 바퀴를 더 돌아야 한다. 뫼비우스의 띠는 겉면과 안쪽면이 하나로 이어져서 겉면을 지나 안면으로 들어가서 다시 겉면으로 나와서 제자리로 오므로 두 바퀴를 돌아야 하는 셈이다.


  이런 상상을 하면서 나는 뫼비우스의 한 점이 지구라고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뫼비우스의 띠는 보이지 않는 어떤 것, 지구가 태양을 돌고 있는 공전궤도 같은 것이라고 가정해 보았다. 그렇다면 지구가 태양을 뫼비우스의 띠의 궤도로 돌고 있다고 쳤을 때 우리는 그것을 그냥 타원으로 한 바퀴 도는 것이라고 생각할 것 같았다. 단지 궤도에 불과한 보이지 않는 선이라면, 뫼비우스의 띠처럼 안쪽과 바깥쪽을 구분하는 벽이 없을 테니까 한 바퀴를 돌아서 반대쪽 면에 왔다 하더라도 이것이 안쪽인지 바깥쪽인지 알 수 없다면 원래의 위치로 왔다고 믿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또 궁금하다. 만약에 지구가 자전도 공전도 저렇게 한다면 어떻게 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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