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망또를 걸친 한 무리의 사람들이 웅성웅성 성당 뜰로 들어왔다. 선명한 진홍의 겉옷 밖엔 '그리스도 왕'의 모습이 보인다. 왕관을 쓰고 그에 어울리는 봉을 들고 위엄을 갖춘 전형적인 절대왕정 시대 유럽군주의 모습을 하고 있고 얼굴은 전형적인 유럽인의 모습이다. 중동에서 나신 그리스도의 모습은 아니다. 이 한 무리의 사람들은 폴란드 사람들이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나라에서 온 이들은 깃발을 나부끼며 이 나자렛의 '수태고지 성당'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온 우주의 왕으로 오신 그분을 기리며 또 그분의 오심을 가브리엘 대천사가 성모님께 알리던, 즉 '수태고지'의 성지 바로 그 자리로 순례하며 그분의 오심을 기리는 것이다. 한적했던 갈릴레아의 마을 처녀였던 마리아에게 일어난 이 인류구원사의 대소식은 이제 세상의 모든 이가 아는 사실이 되어버렸다. 발터 벤야민이 말했듯이 '뉴스(news)'와 '이야기(story)'의 차이점이 기억났다. 뉴스는 듣는 순간 바로 그 가치를 잃어버리지만 이야기는 번역으로 또 재해석으로 계속 그 가치를 생산해 낸다는 사실이다. '수태고지' 즉 인류의 구세주 탄생 뉴스는 이제 뉴스가 아닌 사실이 되어버렸고 뉴스로서의 가치를 상실했지만 갈릴레아의 처녀 마리아에게 일어난 '수태고지'의 이야기는 계속해서 그 가치와 의미를 가지고 있다. 우리 순례자는 그 이야기의 한 부분이 되기위해 또 그 이야기 '재-창조'의 일부가 되기위해 순례를 하는 것이다. 나, 동방의 순례자가 성모님처럼 가브리엘 대천사의 소식을 직접 들으려 멀리 이곳까지 온 것이다.